한글날 10월 9일 지정은 계산착오.. 한글날은 창제일 12월 30일로 변경해야

한글의 친일 잔재 청산하고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원상회복해야 김상민l승인2018.10.10l수정2018.10.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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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유래

한글은 우수한 우리 민족의 글이다.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전세계가 경탄하는 문자이다. 세종실록은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기술하고, 세종대왕이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글날의 유래는 한글학자 주시경이 훈민정음을 한글이라 이름짓고 1931년부터 기념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탄압받던 한글은 1945년 독립이 된 이후로 정부에서 10월 9일에 한글날 기념 행사를 진행했으며, 정부가 공휴일로 선포한 것은 1970년 6월 15일에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하면서 부터다.

이후 2011년 4월 11일 개정된 국어기본법에 한글날이 다음과 같이 정식으로 법률로 제정되었다.

국어기본법 제20조(한글날)

① 정부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기념행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잘못된 한글날 계산

한글 창제일은 세종실록에 의하면, 1443년 12월 30일에 제정되었으며,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그런데, 한글날로 정한 10월 9일은 한글창제일도 아니고 한글 반포일도 아닌, 집현전 학자 정인지가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을 쓴 날자를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陽曆)으로,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여 이 역법을 시행했기 때문에 그레고리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는 계산 착오라고 할수 있다.

즉, 1940년 발견된 안동 해례본 서문에는 정인지가 <正統十一年 九月 上澣(상한)>에 서문을 썻다고 되어있다. 당시 음력 9월 상순은, 1446년 9월 21일~30일로 확인된다.

중국 위키백과에 따르면, 명나라 제6대 황제 영종(英宗)의 연호 正統 11년은 서기 1446년이다. ( https://zh.wikipedia.org/wiki/wiki/正统_(年号) )참조 )

또한,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음력에서 양력으로 변환하는 날짜 환산시스템(https://astro.kasi.re.kr:444/life/pageView/8) 에 의하면, 1446년 음력 9월 상한(상순)은 9월 21에서 9월 30일까지를 말한다.

즉, 한글날 10월 9일은 전혀 근거없는 날짜로, 그들 주장대로 한다면 9월 30일이 한글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은 한글창제일로 변경해야

10월 9일 한글날은 한글을 창제한 날도 아닌, 반포한 날도 아닌 날인, 훈민정음 혜례본을 작성한 날도 아닐 뿐만아니라, 그 날짜도 엉터리로 계산된 날짜인 것이다.

사람으로 비교하면, 창제일은 태어난 날이고, 반포일은 출생신고한 날이고, 해례본 정인지가 서문을 쓴 날자는 선생이 초등학교 입학식 기념사를 쓴 특정일을 지정하지 않은 대략적인 날짜이다.

아마도 40년대 초에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는 계산기가 없었기 때문이거나, 조선왕조 실록을 읽어보지 않고 정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어쨌든, 지금의 한글날은 세종께서 친히 만든 과학적인 한글에 대한 모독으로, 지금의 한글날은 사실과도 부합하지도, 세종이 만든 한글 창제일에 대한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한글의 친일 잔재 청산

이러한 엉터리 한글날 제정은, 공무원들의 무능과 무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아마 한글을 시샘한 친일파 한글학자들의 농간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친일파가 한글정책을 맡아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글학회는 완전히 친일파들의 소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에게 대표적인 한글학자로 알려진 이희승과 최현배가 있는데, 이들은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학회의 회원이었는데, 이들이 만든 것이 선 총독부 정책에 순응하여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정신을 말살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말살한 것이다.

세종께서 28자를 지었는데, 조선왕조 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한글 창제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글자(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ㆍ중성(中聲)ㆍ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우리나라의 속된말(俚語이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계해(1443) 12월 30일(경술) -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二終-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25년, 서기 1443년 12월 30일 한글이 창제되었음을 기록한 내용

훈민정음의 원상 회복

세종대왕께서 지으신 한글 28자는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의 철학과 관계가 깊다. 즉 고구려시대부터 내려왔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천구를 동서남북으로 나누고, 각각 7자리의 별자리로 천문을 나누었다.

또한 없어진 모음 아래아와 세 개의 자음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지구상의 모든 음운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은 우리말 뿐 아니라, 당시 중국어 등 모든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표음문자로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세종실록에 의하면, 창제된지 삼년쯤 지난 후인 세종 28년 병인(1446) 9월 29일(갑오)에 다음과 같이 반포하였다.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임금께서 한글을 제정하고 말씀하시길,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려 할 뿐이다. (세종실록 113권)

是月, 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昜習, 便於日用耳。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十三終

▲ 조선왕조 실록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에 훈민정음을 반포한다고 되어있다. 정인지는 이때 발간된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을 썼다.

정인지의 해례본 서문과 친일 한글학자의 한글 훼손 정책

세종께서 친히 창제하신 한글은, 한글자 한획도 버릴 수 없는 완벽한 글자임을 정인지가 밝히고 있다. 안동 해례본에 적힌 정인지 서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천하의 모든 왕들을 초월하여, 훈민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앞선 학자(先人)의 가르침도 받으심이 없이 스스로 터득하신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어떤 인위적이고 사적(私的)으로 조작된 것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창조하시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대개 오늘에야 나타났습니다! 정통 11년 (1446년) 9월 상순(양력 9월 21~30) 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 우빈객,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씁니다.

恭惟我殿下 天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

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世子右賓客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집현전 학자 정인지의 서문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의하면, “한글에는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어떤 인위적이고 제멋대로(私的) 조작된 것이 아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세종대왕은 성군 중의 성군으로 어떤 역사상 학자와도 비견할 수 없는 천재성을 칭송하고 있으며, 이는 훈민정음은 천지의 모든 이치를 구비할 정도로 완벽하다고 하여 한 획 한자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창제 후 오백년동안 사용하던 28자중 네글자를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삭제하였다. 이는 일제의 한글에 대한 탄압과 훼손이 들어간 정책이었으므로, 이를 해방후 훈민정음의 창제원리에 따라 복원 되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한글학회는 총독부시절 누렸던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이 한글 맞춤법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립협회와 한글학자의 친일 행각

일제때 대표적인 한글학자로 알려진 주시경은 개화기에 배재학당, 숙명여교, 이화학당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한글학자로 전문적 이론 연구와 후진 양성으로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개척자 역할을 했다고 하나, 주시경은 독립협회의 간부로서 독립협회라는 간판을 붙이고 위선적 친일행각을 벌인 자로 알려진다.

조선말에 서재필등이 독립협회를 결성하였다고 하나, 이 단체는 점차 친일로 기울어간 단체이다.

독립협회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논설 몇 편을 검토해 보겠다. 독립신문 논설들은 나라를 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다음은 독립협회의 기관지 독립신문을 보면 가관이다. 예를들어, 

- 1896년 독립신문 제6호 논설 : 일국이 두 해 전에 청국과 싸워 이긴 후에 조선이 분명한 독립국이 되었으니 그것 또한 조선 인민이 일본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있을 터이나, 조선 인민 중에 일본을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없는 것은 다름 아니라...

- 1896년 독립신문 제44호 논설 : 일본 정부와 일본 인민들이 조선이 진보하는 것만 즐거워하지, 어떤 나라이든지 도와주는 것은 상관 아니 하노라...조선 사람들이 일본이 조선을 위한다는 것을 자세히 모르는 것이다.

- 1897년 독립신문 제144호 논설 : 하나님이 조선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일본과 청국 사이에 싸움이 생겨 못된 일하던 청인 놈들이 조선서 쫓겨 본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것은 조선에 천만 번이나 다행한 일이다.

- 1898년 독립신문 별호 논설 : 조선은 계속해서 일본 돈을 써야 한다. 일본 은전을 여전히 일용한 일로 고시를 하였다 하니 우리는 전국 재정을 위하여 크게 치하하노라.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uid=83&table=c_booking

 

한글의 친일잔재 청산

일제말 친일파들의 소굴이었던 독립협회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글학회는, 일제의 사주에 의해 한글을 훼손한 것으로 의심된다. 실제로 한글학회 우리말 토박이말 사전에는 일본말인 “コム(고무)”나 “カマ(가마)”라는 말이 우리 토박이말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정신적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식민잔재와 역사 적폐청산 차원에서 이제 한글날을 창제일로 기념하고, 세종대왕께서  완벽하게 창제하신 한글 28자를 원상대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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