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배의 [을의 경제학] 기부 영웅 주윤발과 홍콩의 빈곤

이근선l승인2018.10.26l수정2018.10.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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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배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전) 노동당 정책실장

영화배우 주윤발(저우룬파)의 기부는 기부액만이 아니라 기부를 대하는 태도가 대중의 더 큰 사랑을 받는 듯하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었고 잠시 보관했을 뿐”이라는 발언은 물욕을 벗어던진 이의 깨달음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발언은 그의 인격적 성취를 넘어, 어쩌면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경제사회적 진실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재산을 ‘노력과 재능을 통해 이룬 성과’로 본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이런 관점을 약화시키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빈 톰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도 이런 종류의 연구에 속한다.

보고서는 교육적 성취와 관련한 유전적 재능이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분포되어 있지만, 동일하게 높은 유전적 재능을 물려받은 저소득층 학생은 24%가, 고소득층 학생은 63%가 대학을 졸업한다는 분석을 했다.

유산 상속이나 범죄로 축적한 재산을 제외하더라도, 개인의 경제적 지위를 노력과 재능을 겨루는 순수한 시장 경쟁의 결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1930년대에 노동자 평균임금의 80배였다. 1960년대에 30배로 떨어졌다가 2001년에는 350배, 그리고 2007년에 500배에 달했다.

이들 집단 사이의 경제적 지위의 상대적 변화는 조세와 복지, 노동시장, 금융 규제 등 소득 분배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제도를 고려했을 때에만 온전히 설명된다.

주윤발의 재산 형성에도 그를 둘러싼 경제사회 정책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선 홍콩의 조세부담률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홍콩무역대표부는 홈페이지에서 이를 홍보할 정도다.

홍콩의 빈곤율은 세계 최악 수준이고, 노인 빈곤율은 더욱 그렇다. 지니계수는 0.5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홍콩을 포함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는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불평등이다.

홍콩은 서민들이 겪는 살인적인 임대료와 극적으로 열악한 주거 상태로 악명이 높다. 주윤발의 부동산 투자 수익은 어느 정도 서민 주거복지를 희생시킨 정책 덕을 보았으리라.

조세 및 사회복지의 수준과 기부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기부의 의미를 재음미할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각국 빈곤율 데이터는 시장소득 빈곤율과, 조세와 복지급여 이후(after tax &transfer) 빈곤율을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두 개의 빈곤율 값은 조세와 복지급여가 시장소득 빈곤율을 어느 정도 개선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2015년 한국의 시장소득 빈곤율 17.7%는 조세와 복지급여를 거치고 나면 13.8%로 떨어지는데, 이 빈곤율 개선 효과를 백분율로 구하면 22%다.

영국의 자선구호재단(CAF)은 매년 각국의 기부문화 활성화 정도를 국가별 순위로 발표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는 오이시디 소속 20개국의 빈곤율 개선 효과를 백분율로 표시한 다음, 재단의 국가별 순위를 해당 국가에 대입해 보았다.

[이미지출처 및 보고서 다운로드 url - https://www.cafonline.org/about-us/publications/2017-publications/caf-world-giving-index-2017]

빈곤율 개선 효과가 65%대 이하에 속하는 국가들에서 시에이에프 순위가 10위권 안팎으로 높은 국가가 많다. 시에이에프 순위 5위의 미국(33.1%), 7위의 캐나다(43.9%), 9위의 호주(51.5%), 4위의 뉴질랜드(53.2%), 11위의 영국(62.4%)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빈곤율 개선 효과가 70% 이상인 핀란드(83.1%), 덴마크(77.9%), 프랑스(77.7%), 오스트리아(72.3%), 벨기에(71.5%)의 순위는 37위, 18위, 67위, 26위, 56위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조세부담률과 복지지출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의 국민이 기부 실천에서는 더 열성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부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곤궁한 이들의 구제에 있다면, 기부의 빈곤 개선 효과가 세금과 복지의 효과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부 천국 미국의 빈곤율이 수십년 동안 선두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득권 세력이 세금을 통한 복지 재분배에 집요하게 반대하는 맥락 속에 기부에 대한 찬양을 교묘히 배치해 여론을 성공적으로 호도해 와서다.

시에이에프 순위 25위를 자랑하는 홍콩의 조세와 사회복지 정책이 만약 주윤발이 기부할 수 있는 재산 규모를 절반으로 줄일 정도로 재분배 효과를 가졌더라면, 그만큼 홍콩의 빈곤과 불평등은 현저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주윤발의 인품이라면 이보다 더 나은 기부의 목적을 알지 못할 것이다. 

 

* 이 내용은, 경기도 정치문화웹진 '나와 세상을 이음'(http://2-um.kr/)에도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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