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의 이방인 (IV)

꿈꾸는 어느 중년의 이야기 강창대l승인2015.11.17l수정2016.05.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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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의 이방인」을 마무리하면서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은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의 대화는 일목요연하지는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아파트단지 어귀에서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이웃처럼 편안했다. 하지만 큰누나 또는 맏언니 같은 리더십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런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아마도 삶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든 총대를 메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가 그런 삶을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는 자신만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그 삶을 당당하게 맞았을 뿐이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가벼운 농담의 진실: 끝없는 평행선
2. 무모한 선동꾼: 그의 문제의식이 문제였을까?
3. 부초와 같은 운명: 공교로운 계약해지

4. 꿈꾸는 어느 중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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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씨는 「복지관의 이방인」 마지막 편 제목을 계면쩍어했다. 이 제목을 떠올린 것은 이번 ‘임산부 인권침해’ 사건을 취재하기에 앞서 그와 가진 사전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이 사건에 복지관이 보인 대응방식에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이루지 못한 어떤 꿈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했다. 시선은 인터뷰어를 향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대장동 전경이 그림처럼 맺혀있는 것 같았다. 마치 거의 손에 넣었던 잠자리를 눈앞에서 놓친 소녀처럼.

원종종합사회복지관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기 전, 이은주 씨는 노동당 부천 당협(이하 당협)에서 사무국장 겸 부위원장으로 있었다. 당협에서는 유일한 상근자였다. 비록 작은 정당의, 그것도 지역 당협의 상근직이기는 하지만 집행부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런 직책을 맡는 이라면 누구나 거창한 포부 하나 정도는 품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게 포부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동기는 소박했고 우연하게 찾아왔다. 

“2013년 어느 무렵이었을 거예요, 노동당의 전신인 진보신당이 ‘통합과 독자’ 노선을 두고 갈등을 했었죠. 그때 나는 독자를 고수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렇게 진보신당이 쪼개지고 나서 독자 노선을 강하게 주장했던 만큼 책임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책임감. 그게 전부였다. 독자 노선을 고집한 만큼, 떠난 이들을 대신해 당협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무국장과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때부터 그의 답 없는 고민이 시작됐다.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는 당협을 만들 것인가. 젊은 당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할 텐데. 참 많은 고민을 했어요. 뭐, 누구나 많은 꿈을 얘기하지만,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집회에 참가하거나 거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것이 다였어요. 교육이라는 것도 우리끼리 하는 것에 불과했고. 당원들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무엇을 갖고 할지.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그는 스무 살 어느 무렵에 접했던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을 다시 꺼내보며 ‘사회적 경제’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협동조합에 관한 강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거기서 부천시민연합 이사장 백선기 씨와 친분을 쌓게 되었고 학습모임을 시작했다.

“그때 저는 총무와 학습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맡았어요. 협동조합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지역에 산재돼 있는 자원을 결합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을기업은 동네의 자원을 갖고 창출해낸 가치를 다시 그 지역에 환원하는 구조에요. 지역 주민과 접점을 만들어내고 초기 비용만 마련된다면 이상적인 사업이 될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에게 복지관 입사 제안이 들어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복지관에서 맡게 될 사업이 당시 제 고민과 딱 맞아떨어진 거죠. 아마도 다른 상황에서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별로 관심을 안 가졌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복지관에 들어가 대장동의 면면을 조사하면서 큰 애착을 갖게 됐어요. 뭔가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올해 1월 복지관의 요청으로 '신입직원 소개글'로 작성한 글과 사진. 이은주 씨는 첫사랑이 오래 가는 것처럼 정신적이든 종교적이든 "어릴 때 받은 세례가 오래간다"고 했다. 스무 살 시절 접했던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은 오십대를 넘어선 그에게는 여전히 화두다. (사진출처: 페이스북)

“신자유주의, 누구나 욕하지만 대안적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해"

그에게 복지관 생활은 그간 공부모임에서 익힌 이론을 적용하고 꿈꾸던 바를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맡는 게 녹록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업무시간에는 대장동에 나가 마을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업무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기 위해 휴일이나 퇴근 후에도 집에서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 했다.

대장동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하며 그는 벤치마킹을 할 만한 마을을 조사해 마을사람들과 그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을 들인 것은 대장동에 대한 기초조사였다. 

“대장동은 외지에 땅 부자들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기초조사를 해보니까 실제 땅을 갖고 있는 주민은 많지 않았어요. 주민 가운데 원주민 비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원주민 중에 땅을 소유한 사람은 더 희박했어요. 자식들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그러다 보니 땅을 팔 수밖에 없었겠죠. 조사대상의 70% 이상이 대장동에 거주한 지 30년 이상이었어요.”

땅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는 외지의 시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대장동 마을 전체가 개발에만 모든 관심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초조사를 통해 알게 된 주민의 욕구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장동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어 낡은 집을 수리하거나 제대로 된 난방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요. 소원이라고 해봐야 마을에 목욕탕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소박한 것들이 전부였죠. 그러니까 그분들은 개발보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갈 마을을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기 위한 자립 기반도 필요했고요.”

대장동은 부천에 남은 유일한 농촌이라고 한다. 그는 농촌이라는 특수성 즉, 비교적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마을, 공동체성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주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 스스로 자립기반을 만들도록 하고 마을사업을 이끌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도 느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대장동 주민협의회다. 그리고 복지관과 몇몇 지역단체가 주도해오던 생태체험학교의 프로그램 일부를 주민협의회가 맡았다. 

올해 4월 25일에 열린 ‘대장동 할머니와 만드는 조물조물 쑥개떡’체험 행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이 행사를 통해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꿈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쑥개떡을 팔아 수익이 생겼지만 누구도 그 돈을 가져가지 않았어요. 주민들은 그 돈으로 마을 잔치를 열었죠. 보통 강좌가 열리면 강사 한 명에 참가자가 수십 명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할머니 강사가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보다 많았어요. 돈을 줘서가 아니라, 그 일이 즐겁고 아이들이 예뻐서 너도 나도 하고 싶었던 거죠. 옛날에 부자동네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솜씨 좋은 분들이 참 많아요. 밤을 새워 도토리묵을 쑤어오는 분도 있었고. 여기에는 공동체성, 공동체가 가진 호혜성 그런 게 살아 있어요.”

그에게 대장동 사업은 따뜻하고 정겨운 추억과도 같다. 사람들의 흥과 어울림을 복원하면서 주민의 자립 기반도 만드는 일석이조의 사업이 바로 대장동의 마을 만들기였던 것이다. 그는 또, 그곳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문제를 치유하는 힘을 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누구나 다 욕을 하지만 대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아요. 제일 고통스러운 게 일자리, 먹고사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무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이게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돼 버렸어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이런 이데올로기가 내재화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지긋지긋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투쟁을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약자들 혹은 노동의 바깥이나 사회의 그늘에서 그림자로 존재하는 이들을 조직하고 주체로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는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실물’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적 삶이란 꿈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실물이 무엇이냐.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이죠. 그 모습 속에 충분하고 참다운 행복이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해요. 그걸 사람들의 코 밑에 들이밀고 이게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대장동을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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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년 5월 14일~1858년 11월 17일) 영국의 사상가·사회주의자, 영국 생협운동의 창시자.

강창대  kangc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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