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20대 ① 아버지의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문과 수감기록

▲ 이은탁 / 데모당 당수

‘불온한 상상’ 저자

1950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30리를 걸어서 통학했다. 그해 가을, 수업 마치고 10여명과 같이 귀가하다, 산에서 마주친 할배가 국군과 빨치산이 전투 중이니 피하라고 해 한달음에 정읍에서 순창군 쌍치면으로 내달렸다. 그와 일행은 그날부터 국군과 경찰에 쫒기는 '산사람'이 됐다.

몇 달 뒤 일행과 흩어진 그는, 낮엔 산에서 지내고 밤엔 민가로 내려가 구걸했다. 동행한 고모부의 아들이 병사하자 그가 직접 산에 묻었다. 그렇게 산에서 가을·겨울·봄·여름을 보냈다. 1951년 가을, 그는 추격한 국군에 동무 한 명과 지리산에서 붙잡혔다.

광주포로수용소에서 1년을 보내다, 전주형무소로 옮겨 6개월 동안 재판을 받았다. 형이 확정(국가보안법)돼 경북 김천형무소로 이감, 거기서 5년을 더 살았다.

제일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 형무소에서 주는 보리밥 한 덩어리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어 재소자끼리 ‘밥치기’(순서를 정해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버텼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빨갱이자식 면회 다닌다는 시선이 두려워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단 한 번도 형무소를 찾지 않았다.

그는 58년 겨울에 석방됐다. 8년 만의 하교였다. 같이 붙잡힌 동무와 하굣길에 산으로 몸을 숨긴 이들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아 귀가했다. 산에 묻은 고모부의 아들 시신을 찾기 위해 60년대 초반 몰래 그곳을 찾았지만, 개간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내 아버지다.

올해 90세다. 거동은 물론, 의사소통도 어렵다.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른다. 오늘(2019. 3. 6.) 국가 공인 ‘빨갱이’인 아버지 청춘을 찾으러 국가기록원에 간다.

아버지 정정할 때 했어야 할 일이다. 판결문 보관돼 있길 바란다. 아버지의 ‘그날’은 나의 ‘오늘’이다. '그'를 찾기 위해 오늘 하루 데모 파업한다.

68년 만에 국가기록원에서 45쪽 분량의 아버지 재판(국가보안법), 수감기록 찾았다. 너무 늦게 찾아 아버지께 큰 불효를 저질렀다.

1950년 11월 입산, 1951년 12월 체포, 1953년 2월10일 형 확정, 1958년 1월12일 김천형무소에서 출소. 공원에서 아버지 친필 전향서 읽다 미친 듯이 울었다.

[아버지의 20대 ①] 아버지의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문과 수감기록

오직 아버지만 아는, 이젠 기억과 의사소통이 어려워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20대(21세~29세)를 국가기록물을 통해 복원할 생각이다. 가족과 공유하고, 아버지 돌아가시면 영전에 바치련다.

오늘 판결문(53년 2월 10일)과 수감기록 입수했다. 지난주 국가기록원(서울) 방문했을 때, 상담원한테서 60쪽 분량의 기록물이 국가기록원(대전)에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며칠 뒤 다시 오라 해서 오늘 갔더니 3쪽짜리 판결문밖에 없다고 말을 바꿨다.

판결문이 한자로 작성돼 있는데다 흘려 쓰고, 지금은 쓰지 않는 한자어(금차, 부수, 지실, 봉조, 거군, 누행 등)도 많고, 일본식 표현(100m를 百米로 음차)까지 있어서 해독이 어려웠다. 종로의 허름한 번역소를 찾아가, 80대 어르신의 도움으로 3쪽짜리 판결문을 2시간 만에 겨우 해독했다.

페친 변호사에게 전화로 상황을 전했더니, 수감기록도 찾아보라기에 다시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수감기록(42쪽) 구했다. 민원인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렸다면 기록물 더 있으니 정보공개 요청 추가하라고 알려줬을 법도 한데... 야속했다. 혼자서 해독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오늘 해독한 판결문을 요약(판결문 표현대로)한다. 판결문이 이상하다.

재판 시작한 1952년 아버지 나이를 21세로 적고, 1953년 판결할 땐 “20세미만의 소년이므로 조선소년령 제1조, 제8조에 의하여” 처벌한다고 적었다. 앞뒤가 안 맞다.

“판사가 전보로 인하여 서명 날인 불능”이라고 적혀있다. 판사 3명 중 1명의 서명이 누락된 판결문이다. 근데 아버지가 "부락민에 대해 한글 강의"한 것도 죄가 되나?

<판결문 요약>

당 21년(11월19일생)
피고인은 정읍 호남중학교 제3학년 당시 사변을 맞이한 자인 바

제1.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는 북한괴뢰집단이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금차 6.25사변을 야기하여 불법남침 중 조직된 소위 민청은 우 괴뢰집단에 부수하여 동일한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인 정을 지실(知悉)하면서 1950년 8월 13일 거리(居里) 민청에 가입한 후 9.28 수복당시까지 거리부락민에 대하여 한글의 강의 또 괴뢰정권에 대한 선전을 하여서 자진 봉조하고

제2. 괴뢰군이 패퇴하자 동년 11월 30일 거군 내장산에 도피입산한 후 동소를 점거하고 있는 거군(居郡) 당유격대에 편입되어 동년 12월 초순경부터 1951년 12월 20일경까지의 사이에 전후 13회에 긍하여 동대무장원 30명, 비무장원 50명과 같이 정읍군 북면, 순창군 복흥면 등 산간부락민 등으로부터 불응하면 살해할 위세를 보이여 그 반항을 억압한 후 백미 약10입(入) 맥류 약 3입(入), 정조 5입(入) 기타 부식물 다수를 강취하고

제3. 동년 9월 27일경의 오후 7시경에 동대무장원 약 50명, 비무장원 약 80명과 같이 순창군 복흥면 경찰관지서를 습격하기 위하여 동지서를 향하여 가는 도중 동지서로부터 약1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경찰대에게 발견되어 익일 오전 12시경 동군 쌍치면 장군봉으로 도주.

피고인은 20세미만의 소년이므로 조선소년령 제1조 제8조에 의하여 피고인을 징역에 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