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 사상 첫 정상회동 판문점(板門店) 회동

개인이나 국가나, 만나고 대화하는 속에서 좋은 변화와 길이 보인다. 김흥순l승인2019.07.01l수정2019.07.0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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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남북미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평화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다. 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은 시작부터 끝까지 역사적 순간들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판문점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다.

판문점은 널문리라고도 한다. 8·15광복 이전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다.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이곳 명칭은 UN측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판문점 서쪽 사천내에 놓여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옛이름:널문다리)’ 부근에는 1976년 8월 18일 북한 경비군에 의한 도끼만행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가 서 있다.

현재,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유엔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판문점 회담장을 둘러싼 지름 800m의 공간인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은 휴전선 내 유일한 유엔·북한 공동경비지역으로서 남.북한의 행정관할권 밖에 있다.

비록 세트촬영이지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판문점은 더욱 유명해졌다. 판문점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옛날 경의선 장단역사, 버려진 기관차 등을 볼 수 있다.

역사문헌에 의하면 판문점일대는 고려시대 송림현(松林縣)지역이었던 곳으로 조선 태종대에 장단군에 편입되었으며, 송림현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송남면(松南面)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일제시대에 개성군의 일부 지역과 합쳐 장단군 진서면(津西面)으로 되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지역이 개성부(開城府) 판문평(板門平)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 부근에 널문다리〔板門橋〕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설과 이 마을에 널판지로 만든 대문〔널문〕이 많았기 때문에 ‘널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널판지 다리를 판문교(板門橋)라고 불렀는데 ≪개성군면지≫에 의하면 판문교는 개성쪽에서 널문리를 지난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되어 있다. 6·25전쟁 직전 널문리는 경기도 서북쪽의 장단군 진서면 선적리(仙跡里)와 개풍군(開豊郡) 봉동면(鳳東面) 침송리(針松里)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휴전회담이 이곳에서 진행되면서부터 갑자기 국제적인 이목을 끌게 되었다. 6·25전쟁 휴전협상이 처음부터 이곳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당초 휴전회담 예비회담은 1951년 7월 8일 개성 북쪽에 위치한 내봉장(來鳳莊)에서 개최되었다.

북한측이 1951년 10월 7일 새로운 회담장소로 널문리 주막마을을 제의하자 국제연합측이 그 다음날 이에 동의함으로써 회담장소가 개성에서 널문리 마을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널문리 판문점을 유명하게 만든 휴전회담을 통해 한국전 교전 쌍방은 우여곡절 끝에 휴전회담 본회의 159회를 비롯하여 총 765회에 이르는 각종 회의를 거쳐 드디어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 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조선)군사정전 협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휴전협정을 조인하게 되었다.

판문점구역은 유엔군과 공산군, 즉 적대쌍방군대가 공점공유(共占共有)하는 공동관리구역으로 지구상에 그 유례가 없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북한경비병에 의한 국제연합군측 경비병의 도끼살인만행을 계기로 쌍방경비병을 휴전선을 경계로 분리시켜, 공동관리업무 가운데 경비업무는 분할경비를 하게 되었다.

판문점은 남북한 비교에서 북한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장소로서 공동관리구역인 이곳의 공산군측 관리자는 북한이다. 유엔군측 관리자는 미군이 주축이며 군사정전위원회는 쌍방수석대표만이 발언하도록 되어 있는데, 유엔군측 역대 수석대표는 미군장성이었으나, 1991년 3월 한국군장성으로 바뀌었으며, 공산군측은 북한군장성이 수석대표이다.

지금까지 한국군장성도 유엔군측 대표로 참가하였지만 본회담장에서의 직접발언은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한국이 휴전협정에 직접조인을 하기를 거부하였지만 유엔군사령관의 지휘하에 있는 한국군으로서는 휴전협정을 준수하는 미묘한 처지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적잖은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을 방문해 왔다.

1983년 한국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필요하면 주한미군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판문점을 둘러봤다. 전쟁 억지력을 강화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지 4개월쯤 지나 판문점을 찾은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2주만에 판문점을 찾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다음날 판문점을 방문, 당시 새롭게 등장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에게 있어 판문점은 긴장관계에 있는 북한의 핵무장을 비난하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는 군사적 대결을 환기시키는 장소였던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30일 이곳을 찾았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역대 다섯 번째로 판문점을 방문한 그는 이날 파격 행보를 보였다.

비무장지대내 군사분계선(MDL)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전격 만난 그는 북측 지역으로 걸어 들어가 악수까지 나눴다.

미국 대통령 처음으로 ‘금단의 땅’인 북한땅을 밟으며 한반도 비핵화와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을 견인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까지 피력했다.

북미 정상은 판문점 남측구역으로 넘어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대화를 나눈 뒤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1시간 가까이 단독회동까지 가졌다.

물론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66년 만에 만난 이들의 만남이 공동 발표문 등 당장 가시적인 결과물이 없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의 판문점 방문,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지지부진했던 70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향한 노력에 또 다시 동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특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개인이나 국가나, 만나고 대화하는 속에서 좋은 변화와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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