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발생한 일이다. 매장 2층 주방과 화장실 환기를 위해 설치했던 환풍기가 사용 한도가 다 돼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바람개비가 돌지 않고 멈췄다.

환풍기가 고장나 멈춘 뒤부터 그간 맡아 본 적이 없는 아주 불쾌하고 묘한 악취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뒤늦게 새것으로 교체하려고 환풍기를 뜯어냈다.

그런데 환풍기를 뜯어내다가 기겁을 하고 놀랐다. 뜯어낸 환풍기 바로 뒤로 반 뼘 밖에 안 되는 아주 좁은 창틀이 있다. 그런데 그 창틀 위에 여러 종류의 수많은 풀대와 작은 나뭇가지로 둥지를 틀어 비둘기가 알을 낳아 부화한 것이다.

▲ 환풍기 앞에 부화된 새끼 비둘기 두 마리의 모습

그동안 제법 덩치가 커진 새끼비둘기 두 마리가 빨간 속살을 보이며 겨우 솜털이 듬성듬성 나있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미동도 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엉겹결에 크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쾌하고 묘한 악취의 근원이 비둘기 둥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장난 환풍기가 멈추자 외부에서 부는 바람이 환풍기 날개 틈 사이를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배설물 냄새 등과 섞여 고약한 냄새를 화장실과 주방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러니 묘한 냄새가 계속 날 수 밖에.

문제는 부화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비둘기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창틀 밖으로 밀어내자니 살자고 태어난 생명을 내 의지로 죽이는 결과를 낳고, 그냥 둥지를 창틀 위에 내버려 두자니 악취가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환풍기를 새것으로 교체해 작동하면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을 새끼들이 감당하지 못 할 것 같았다.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등산화를 담는 종이상자의 바닥에 비닐을 깔고 다시 그 위에 종이를 겹겹이 깔아 푹신하게 한 다음, 창틀 위의 둥지를 뜯어 새끼들과 함께 종이상자에 옮겨 놓았다. 새끼들은 그동안 어미가 잘 먹였는지 손에 제법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쥐나 고양이 등 천적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을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무엇보다도 상자를 어미 비둘기의 동선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미가 쉽게 쌔끼와 둥지를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은 길 고양이다. 어미는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고양이의 공격까지도 피할 수 있는 곳에 둥지를 틀었을텐데 내 편의대로 둥지를 옮겨 놓았으니 마음 한 쪽에 걱정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새끼들이 있던 둥지는 비어 있었다. 주변에 새끼들의 불행을 의심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 모두 성체가 되어서 날아간 것이다. 녀석들도 지금은 어디에선가 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은 이렇게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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