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아가리라.

이근선l승인2019.10.07l수정2019.10.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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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전)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영남대의료원지부 지부장

나, 돌아가리라.

이곳 고공에서 태풍 다섯 개와 사측만큼 지독한 50도를 넘나드는 여름을 보내고, 그 여름 속에 익어간 결실을 수확하는 가을이 왔습니다.

내일이면 고공농성 100일째입니다.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몇 개의 계절을 이곳에서 보내야 되는지 청명한 하늘도 답을 주지 않습니다.

노조가 잔인하게 파괴되고 해고 되면서, 13년 동안 우린 멍하니 시름을 잊고 지낼 시간도 없었고, 밟힐 대로 밟힌 상처뿐인 몸뚱이로라도 악다구니를 써야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는 것처럼 장기투쟁 노조의 잊혀져가는 것이 두려워 우리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했고, 멈춰버린 민주노조 깃발이 가냘프게라도 숨 쉬고 있음을 펄럭여야 했던 그 몸부림은, 비참했고 서러웠습니다.

고공에서도 아직까지 수없이 악몽을 꾸는 것은, 그 무참히 밟힌 자존심 상한 깊은 ‘상처’가 울먹이며, 핏속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 70미터가 넘는 영남대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영남대의료원 해고자들. <사진 좌측부터 송영숙(43세)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박문진(58세)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너는 나의 깃발이다.

1990년 제가 위원장에 당선되고 여러분들과 본격적으로 정열적인 투쟁을 시작하고부터, 차별과 억압 속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던 조합원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머리띠를 매고 로비집회에서 가슴 밑바닥의 한을 뜨겁게 토해 낼 때, 의사들이 시키는 담배 심부름을 거절할 줄 알게 되었고, 미스 리에서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임금인상을 많이 하면서 ‘그동안 마이 속았다 아이가’하며 기뻐했고, 공정한 인사와 함께 환자, 보호자들의 인권과 의료민주화가 내 일처럼 이루어질 때, 병원노동자로서 자부심은 컸습니다.

힘주어 맞잡은 손마디마디가 붉어질 때마다 단체협약 한 줄 한 줄이, 임금인상이, 노동조건이, 인권이 우리 마음과 함께 하늘을 날았습니다.

조합원들의 나이테만큼 땀과 눈물과 함성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들의 심장, 우리들의 역사, 우리들의 삶이었던 ‘노동조합’을 2006년 사측은 노조파괴전문가 창조컨설팅 심종두와 함께 망나니 칼춤을 추며, 950명 조합원이 70명으로 되고, 3명(7명 대법원 부당해고)의 해고자와 200명이 참석한 3일 부분파업에 56억 손해배상과(법원에서 기각) 조합비&AMP ; 간부 통장가압류, 단체협약 2번 해지, 사측이 조정신청까지 내며 탄압백화점이라는 악명을 떨치며, 노동조합 깃발을 완전 내리려 했습니다.

호랑이가 어떻게 풀을 뜯겠는가?

나의 청춘이 우리들의 조직이 무참히 살해 되었던 악몽 같은 얼마간의 시간동안 왜 나는 죽지도 못하고, 무슨 미련이 있어 살아 남아있는가.

산목숨이 부끄러웠고, 모진 이 생을 어쩌지 못하고 서성이는 난 비루했고 초라했습니다.

생사를 두서없이 오가는 나에게, 희망을 갖으라는 격려는 기만적이고 허무맹랑한 공허함이었습니다.

방황과 부끄러움이 거듭될수록 다시 차오르는 분노는 나의 자존심이 되어 주었고,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 라는 기세를 채워 주면서, 휘어진 척추 사이로 새살을 돋게 했습니다.

너희들이 던져준 몇 조각의 고기 덩어리가 아닌, 직접 사냥해서 얻어진 투쟁의 승리를 보고 싶었습니다.

캄캄한 벼랑 끝에서 허우적거리던 날들을 걷어차고, 문지방을 넘어 팔뚝질과 거리거리에서 온 몸으로 저항하는 익숙한 나를 진정으로 만날 때, 희망이라는 말을 용서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함께 했던 너와 나의 삶이었고, 인간선언이었던 노동조합을 이제 되찾아 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노조가 깨지면서 인간관계가 개별화되고, 주눅 든 어깨와 무너진 여러분들의 눈빛이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싸우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말을 13년 동안 느끼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노조와 함께 싸우지 않으면 갈수록 비정규직은 늘고,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노동조합 결성 이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호랑이가 풀을 뜯으면 죽는 것처럼, 우리노동자도 싸우지 않으면 죽습니다.

▲ 70미터가 넘는 영남대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영남대의료원 해고자들. <사진 좌측부터 송영숙(43세)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박문진(58세)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사진제공 ; 김형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 추위는 시베리아 벌판 같겠지만 우리들은 잘 견디며 싸울 것이고, 살아서, 승리해서 여러분들과 환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투쟁의 이 길에 함께 한다면, 이 길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다시 민주노조 깃발을 힘차게 펄럭이게 될 것입니다.

- 고공농성 100일차를 맞으며, 여러분들의 벗이자 동지인 박문진 드림 -

 

 

70미터가 넘는 영남대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옥상에는 100일차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58세)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송영숙(43세)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이 있다. 모두 간호사이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보건의료노조(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전신인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병원노련) 4대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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