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그룹 위기의 본질

김흥순l승인2020.04.24l수정2020.04.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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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두산의 모토는, "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합니다"와 "사람이 미래다"로 요약 된다.

한국 기업집단중 재계서열 15위 그룹이다.

그룹 두산이 위기에 처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맥주와 햄버거를 팔던 소비재 기업이, 구조조정을 잘해 중공업 회사로 전환하며 가까스로 회생했던 한국 최장수 기업 그룹이다.

지금 두산을 위기에 처하게 한 회사는, 두산 중공업이다.

2000년대 초, 중후장대 기업으로 전환 당시 두산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산 스스로 위기를 시인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장수기업은 재계 15위 두산이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 124살 국내 상장기업 평균수명(33년)의 4배에 달하는 장수기업이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은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만3천개를 넘지만, 한국은 두산을 포함해 8곳에 불과하다.

두산의 창업자는 ‘보부상’ 매헌 박승직이며, 1896년 8월에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 국내 최초의 근대적 포목점인 ‘박승직 상점’을 세웠다.

국내 최초 화장품인 ‘박가분’을 만든 ‘박승직 상점’은, 1946년 두산상회로 상호를 바꿔, 그룹 이름의 기원이 됐다. 두산은 곡물 측정 단위인 두(斗)와 산을 의미하는 산(山)을 합친 말이다. “한말 한말 쌓아 큰 산을 이룬다”는 뜻이 담겼다.

2016년 3월 25일부터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이 그룹회장을 맡고 있다.

두산의 역사는 명암이 교차해 왔다. 1993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때는, 국민들의 지탄이 쏟아지며 박용곤 회장(박승직의 장손자)이 물러났다.

2005년에는 총수형제 간 골육상쟁과 비자금사건이 터져,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 등이 유죄선고를 받았다.

반면, 외환위기 직후 기업구조조정 성공사례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식품·음료·주류 등의 주력업종을 과감히 버리고, 중공업 중심의 새로운 사업구조로 전환하는 ‘환골탈태’의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인수한 한국중공업(2001년/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2005년/두산인프라코어), 밥캣(2007년/두산밥캣)은 그룹의 주력이 됐다.

그로부터 20년. 두산중공업이 유동성 위기를 맞으면서 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 등의 긴급 자금지원으로 겨우 고비를 넘겼지만, 올해 갚아야 할 빚이 4조원에 달해 추가지원이 절실하다.

채권단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포함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요구한다. 박정원 회장 등 두산 4세 경영인들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부친세대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저력을 다시한번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일부 언론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두중 부실의 주범으로 몰아가지만, 명백한 것은 기업 자체 위기다. 두중의 실적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현 정부 이전인 2013~2014년이다.

수년간 세계 에너지 기조가 친환경으로 변모해왔음에도 불구, 두산중공업은 매출의 70% 이상을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했다. 더구나, 만성적자인 두산건설을 처분하는 대신 약 2조원을 쏟아 부으며 부담을 가중시켰다.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의 '탈원전' 펀치까지 맞게 되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 두산DST, 두산건설 HRSG 사업 등이 알짜 사업들이 모두 팔렸고, 미래 먹거리로 육성한 두산솔루스·퓨얼셀마저 매각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두산의 경쟁력 저하는, 1990년대 구조조정 당시 보여줬던 냉철한 위기의식과 리더십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것과 무관치 않다.

기존 사업 구조에 안주하며 신사업 투자에 속도를 내지 않았고, 부실 자회사를 과감히 떼어내지 못한 채, 좀비처럼 계속 살려낸 것이 문제였다.

전문경영인 체제였다면 진작에 칼질당했을 사업들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한 경직적인 문화도 한 몫 했다.

두산의 홍보 슬로건 '사람이 미래다', '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합니다'는 대부분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두산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미래를 대비한 사람은 없었고, 내일을 위한 '내 일'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두산은 과거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저력을 보여줬던 회사다.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과거의 DNA를 되살려 다시 도약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두산에게 진짜 '내일'이 주어질 것이다.

피해 규모가 크든 작든, 두중이 정부의 갑작스런 탈원전 정책으로 타격을 받은 것도 ‘팩트’다. 기업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2천개에 달하는 중소 협력업체다. 원전 관련 노동자만 1만3천명이 넘는다. 방치하면 코로나로 인한 고용대란을 부추길 게 뻔하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원전업계의 타격을 최소화할 묘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단순한 자금지원 대신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총 사업비 8조원)을 재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업종전환 등을 위한 준비시간을 3년 정도 벌어줄 수 있다. 대신, 노후 원전을 조기 폐쇄해 탈원전은 차질 없이 추진하면 된다.

일단 살리고 볼 것인가? 죽이고 볼 것인가는 그룹 오너 의지와 정부 의지, 국민의 의지가 모아질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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