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때 일제가 만든 한국인 잡은 유언비어, 악법도 법이다

실제 소크라테스는 사망 당시에 "죽으라고 하면 죽겠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흥순l승인2020.08.31l수정2020.08.3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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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만든 한국인 잡은 유언비어, 악법도 법이다(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

A law is a law, however undesirable it may be. 악법도 법이다.

‘악법도 법이다’는,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법체계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Dura lex, sed lex)에서 왔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2세기경 로마 법률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는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 라고 쓴 바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 교수였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는, 1930년대에 출판한 그의 책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후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것으로 와전되었다.

실제 소크라테스는 사망 당시에 "죽으라고 하면 죽겠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아주 인간적 유언이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봐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지만 오히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더 가까운 말일 수 있겠다.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거기에서 새로운 진리를 찾으라는 것이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다. 단순히 '너 자신의 분수를 알아라'라는 수준의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2004년 11월 7일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교육인적자원부에 초, 중, 고교 교과서에서 헌법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찾아 수정을 요청했다.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다. 첫째, 청년들을 부패하게 했다. 둘째, 국가가 지정한 신 대신에 이상한 신을 믿는다.

청년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깨닫고자 사색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보고 고소인들은 그것을 마치 타락하여 흐느적거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물론 이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평소에 자기가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그것을 반대해온 내면적인 양심의 소리(Daimon)를 들었다. 이것을 두고 아테네 시민들은 그가 새로운 신을 믿는다고 매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 이유 외에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정치적 기반이 허물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상업 지향적인 문화도시 아테네와 군국주의적 농업국가인 스파르타 사이에 동족상잔의 비극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에서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되자 아테네에는 스파르타 방식의 귀족정치와 과두정치가 수립되었다.

서른 명으로 구성된 과두체제는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소크라테스는 이 위원회에 끌려가 “당신의 교육을 그만두라”라는 경고를 받았으나, 그는 이 명령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교육을 계속했다. 주위에서는 그가 처형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위정자들의 잘못된 요구에 대한 그의 태도는 너무나 분명했기에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즉 과두파 인물 중에 그의 제자와 플라톤의 큰아버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두체제가 8개월 만에 무너지고 다시 민주주의자들이 권좌에 올라서게 되자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기반을 상실하고 말았으며, 결국 앞서 말한 누명을 쓴 채 고소를 당하게 되었다.

서른 명의 참주들이 어떤 사람에게 부당한 누명을 씌워 정치적으로 살인하려는 데 대해 소크라테스는 동조하지 않았고, 이것이 그들에게 증오감을 심어 주었다.

당시 아테네를 지배했던 부정한 야심가들에게 ‘모든 진리의 기초를 도덕에 둔’ 소크라테스는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재판 당시의 배심원은 500명이었는데 신에 대한 불경죄의 경우, 일단 유죄냐 무죄냐만 판결을 내렸다. 결과는 280대 220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유죄였다.

다음에 형량을 놓고 다시 판결을 내렸다. 원고 측이 요구한 형량은 사형이었고 소크라테스 측에서 요구한 형량은 벌금형으로, 그것도 처음에는 단 1므나를 제시했다.

결국, 플라톤 등이 그를 설득하여 30므나로 정해지긴 했지만,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믿었던 소크라테스는 벌금 1므나를 내는 것도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재판이 열렸으나,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누구에게 사과하거나 애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민들과 배심원들을 꾸짖으며 정의와 진리의 길을 설파했다.

“당신들은 자신들의 지갑을 가능한 한 많이 채우고, 명성과 존경을 받으려고만 노심초사하고 있구려. 더구나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도덕적인 판단과 진리, 그리고 당신들의 영혼을 개선하는 데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며, 또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죽음을 재앙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첫째로 죽음이 완전히 무로 돌아가는 것일 경우, 모든 감각이 없어지고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을 자는 것과 같을 것인데, 그보다 더 즐거운 밤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째로 죽음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여행길과 같은 것이라면, 생전에 만났던 훌륭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나는 죽음을 통해 귀찮은 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깁니다.

따라서, 나를 고소하거나 유죄로 투표한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사형을 받기 위해, 여러분들은 살기 위해······. 그러나 우리 가운데 어느 쪽 앞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신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의 제청과 마지막 변론은 결국 그에게 무죄를 판결한 배심원들의 비위까지 거슬려 360대 140이라고 하는 큰 표 차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죽음이란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즉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혜를 추구하는 참된 철학자라면 육체로부터 마땅히 해방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가 영혼의 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의 영혼이 육체적 욕망이나 감각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진리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육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비진리를 말해야 할 때도 있다.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도 크거니와, 더구나 육체에서 파생된 자녀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회피하는 사람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愛智者), 즉 진정한 철학자가 아닌, 고통과 죄악의 덩어리인 육체를 사랑하는 자가 되고 만다.

이러한 주장을 듣고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살이라도 해서 죽음을 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살은 죄악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신의 관계는 짐승(가축)과 인간의 관계처럼 주종(主從) 관계인데, 종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자살해 버린다면 주인이 무척 노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나 돼지가 자기들 멋대로 골짜기에 투신자살해 버렸을 때 그 주인이 속상해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의 허락도 없이 자살해 버린다면 신 역시 속상해할 것이다. 자살은 신에 대한 반역이고, 범죄 행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신이 부를 때가 있다.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 기꺼이 떠나야 한다. 만일 그때에도 삶에 집착해서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면, 그 역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아테네 법률에 의하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처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러 떠난 배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집행이 연기되었다.

마침내 배가 들어온 날 아침, 감옥에서 친구들은 “돈이 얼마나 들든지 간에 간수를 매수할 테니 도망쳐라”라고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이때 그는 “내가 지금까지 아테네 법률을 지키며 잘 살아왔는데, 나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지 않는가”라며 탈출을 거절한다.

바로 이것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것만 보면, 재판정에 섰을 때 이미 소크라테스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형집행 시간은 해가 지는 때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해가 진 다음에도 음식을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신 후 독배를 마셨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약을 빨리 가져오도록 재촉한다. 독이 든 잔을 간수에게서 받아들고, 그는 태연하게 기도를 올린다. 그런 다음 조용히 마셔 버린다.

크산티페를 비롯한 여자들을 이미 밖으로 내보낸 후였는데, 왜냐하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죽는 순간은 사람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그래서 사람은 조용히 죽어야 하는데, 사람이 있으면 방해가 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감옥 안을 거닐다가 다리가 무겁다고 하면서 반듯이 누웠고, 간수는 종종 그의 손과 발을 살펴보다가 발을 꼭꼭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간수는 몸이 점점 식어간다고 말했다.

하반신이 거의 다 식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얼굴에 가렸던 천을 제치면서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꼭 갚아 주게”라고 부탁했고, 이에 대해 크리톤은 “잘 알았습니다. 그 밖에 할 말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하지만 이 물음에는 더 이상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일을 반성했다고 말하지만, 여기에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약(醫藥)의 신을 의미한다. 당시에는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다가 나을 경우,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인생의 모든 병에서 벗어났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비극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을 초월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듯이, 진리와 정의를 향한 그의 철학 정신 앞에 죽음은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물론 저서를 한 권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핵심 사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인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것은 살아생전의 독보적인 인품과 더불어 죽음의 순간에 보여준 위대하고 장엄한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소피스트들이 상대적이고 회의적인 태도에 머물렀던 데 반해,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와 객관적인 도덕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열심히 설파했다. 그는 현실 생활에서 직접 써먹을 수 있는 처세술 대신에 인간의 본질과 정의로운 행위를 밝히는 데 노력을 다했다.

윤리학에서도 천박한 행복주의에 머물지 않고, 인간이 도달해야 할 순수한 이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고 또 우리에게 기꺼이 철인(哲人)으로 부르도록 만든 것은, 진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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