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뭔가 잘못됐다

김흥순l승인2020.09.08l수정2020.09.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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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한국 정치는 뭔가 잘못됐다.

내 편만 신경 쓰기 때문이다. 올바른 것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내 진영 내 편만 신경 쓰는 양아치 정치기 때문이다. 많은 여론 중 내편만 여론이고 민심이다.

상대편은 가짜뉴스고 유언비어고 거짓말이다. 상대방 통계는 거짓이다.

영국 총리를 지낸 디즈레일리는, 의회에서 항상 통계 수치를 인용해 답변했다. 몇 개 수치의 통계만 들먹이면 사람들이 쉽게 수긍하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그냥 거짓말과 빌어먹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란 말을 남겼다. ‘통계 자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가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란 명언과 함께였다.

그래도 그는 통계 조작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국정 책임자의 괴로움은 털어놨다.

정부가 말하는 숫자만 듣고 있으면 태평성대다.

모든 적폐는 사라졌다.

지방의회, 지방자치단체, 국회, 행정부, 사법부, 검찰, 경찰 등 전부 집권당 편이다.

과연 그런가.

1896년 9월 1일 ‘호구조사 규칙’이 처음 시작된 것을 기념해, 통계의 날을 만들었다. 숫자를 다루는 엄정함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왕조시대도 통계는 지엄했다.

정부가 통계를 신경 쓰는 이유다.

정부의 처음 경질이 통계청장이었다.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영어로 시저라 읽는다. 서양인들에 의해 ‘가장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서양사상 큰 영향을 남긴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유서 깊은 귀족 집안 출신이었으나, 그 조상에는 유명한 정치가는 없다. BC 69년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 BC 63년 법무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민심 파악의 수완이 능하여 민중과 친근한 입장에 서서 로마와 기타 속주(屬州)에서 군무했다.

실제 정책 운영 면에서 착실하게 성과를 거두어 명성을 획득하고, 대정치가로서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는 서양 문화 기초를 이루는 로마제국 실제상 첫 번째 황제다.

로마는 450여 년간 공화정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BC 27년에 군주정으로 바뀌게 되지만,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인 카이사르는 실제상 황제와 다름없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은 카이사르 말고도 많았다는 점에서, 그를 사나이답게 만든 압도적 카리스마와 현실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시대에 군인이라는 직업은 급료가 높은 좋은 직업이었다. 장군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급료를 지급하며 사병을 유지했는데, 카이사르의 제10군단도 그런 부대였다.

카이사르 휘하 10군단 사병들은, 다른 장군들 휘하의 사병들에 비해 자긍심이 강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카이사르 휘하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그 자랑스러움은 전투에서 뛰어난 용맹심으로 발휘되어 그들은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카이사르는 10군단과 함께 이끌고 갈리아(프랑스)를 평정하고, 브리타니아(영국)를 휘젓고, 유다(이스라엘)를 점령하는 등 연전연승을 이어나갔다.

그런 충성스러운 10군단이 카이사르에게 반기를 든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장에게 급료 인상을 요구한 다음, 만일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칠리아에서 있게 될 다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제안을 받은 카이사르는 연단에 올라가 말했다. “시민 여러분, 그대들의 귀대를 허락한다!”

사병들은 자신들을 ‘전우 여러분’이라고 부르지 않고, ‘시민 여러분’이라 부른 데다 제대까지 허락하는 카이사르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이제 자신들과 카이사르 간의 유대가 완전히 끊긴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저마다 외쳤다.

“제발 병사로써 싸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지만 카이사르는 그에 대해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채, 연단에서 내려왔다.

이 사건은 10군단 사병들이 다른 군단의 뒤를 풀 죽은 모습으로 뒤따라오는 것으로써 마무리되었다.

10군단 사병들의 전투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45km 군장을 짊어지고 하루에 40킬로미터를 행군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순식간에 진지를 구축하여 적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의 그런 전투력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카이사르의 뛰어난 조직 능력과 훈련법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더하여, 카이사르는 사병들과 고생을 함께하고 결과물을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부하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나폴레옹과 함께 서양의 3대 정복자로 꼽히는 군인이기 때문에, 카이사르가 가장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정말로 사나이다운 것은 자존심 면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적들을 너그러이 용서하곤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적들을 용서한 것은 그가 인간적이고 도덕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적을 용서하지 않고 처단한다면 그것은 적이 자신의 맞상대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카이사르는 그 누구도 자신의 맞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이며, 따라서 자신이 원한을 품거나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없다는 자신감에서 그는 적을 잘 용서했다.

기원 60년, 로마는 갈리아를 정복한 공을 세운 카이사르와 동방을 정복한 폼페이우스, 당대 최고의 부호이자 노예 반란을 진압한 크라수스와 함께 3두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머지않아 그들 간의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크라수스가 죽음으로써 경쟁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스로 압축되었다.

갈리아 총독이었던 카이사르는 수도 로마에 머물러 원로원을 장악하고 있는 폼페이우스에 의해 고립되었고, 결국 카이사르는 로마와 갈리아의 경계를 이루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공격하는 쿠데타를 감행했다.

당시 그의 부장은 폼페이우스로부터 추천받은 라비에누스였다. 자신의 후원자인 폼페이우스를 택할 것인가, 현재의 상관이자 오랜 세월 군생활을 함께해온 카이사르를 택할 것인가. 결국 라비에누스는 카이사르를 버리고, 폼페이우스를 택했다.

카이사르는 한밤중에 부대를 이탈하여 폼페이우스에게로 간 라비에누스의 짐을 챙겨 그에게 보내주었다.

이에 대해 카이사르는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너그러움이 나를 향한 치명적인 공격으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그는 그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높은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으로서 그는 긴 내용을 한마디 짧은 말로 정리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명언으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루투스, 너마저!”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자신의 저서 ‘갈리아 전쟁기’에서 자신을 ‘나’라는 1인칭으로 부르지 않고 ‘카이사르’라는 3인칭으로 불렀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한대로 컸던 그에게는 자신을 1인칭으로 부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 신뢰가 자신에 대해 과대망상이 아니라, 냉철한 지성에 기반한 인식이었다고 연구가들은 말하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그에 대해 카이사르는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는 말을 남겼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끝에 암살되었다.

카이사르의 끝없는 욕망 추구를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의 욕망 추구에는 순수한 바가 있었다는 점을 한번쯤 음미해볼 필요는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얼마나 투신, 헌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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