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가변적 자본

이승무l승인2020.10.23l수정2020.10.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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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마르크스는 자본 I의 제6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산수단으로, 즉 원재료, 보조재료 그리고 노동수단으로 전환되는 자본 부분은 그 가치 크기를 생산과정에서 변경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그것을 불변적 자본부분 또는 줄여서 불변자본이라 명명한다.

자본에서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이와 달리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를 변경한다. 그 자신의 등가물과 그에 대한 초과분, 잉여가치를 재생산하는데, 잉여가치 자체가 달라지며 더 클 수도 더 작을 수도 있다. 불변의 크기로부터 자본의 이 부분은 계속해서 가변적인 크기로 전환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가변적 자본부분 또는 줄여서 가변 자본이라고 명명한다.”(MEW에서 필자 옮김)

이러한 《자본》 상의 정의(定義)에서 가변자본의 가변성은 그 가치 크기의 가변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의 1861-1863년 원고인 MEGA III.2 Teil 6에서는 노동능력의 가변성을 다소 다른 의미로 말하고 있다.

“자본에서 지극히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가장 가변적인 부분은 살아 있는 노동과 교환되는 가변자본 자체다. 자본의 이 부분의 현물형태가 달라지려면, 노동능력이 한 가지 방식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말고 필요한 것은 없다. 이는 인간의 노동능력의 변화가능성에 기초를 둔다. 노동이 단순할수록 - 그리고 모든 거대한 생산분야들에서 노동은 단순하다 - 구체적인 양성(養成)이 덜 필요할수록 구체적 노동의 이 형태 전환은 더욱 쉽다....구노동능력의 일부가 그 노동을 변경하든 신노동능력이 구 생산영역 대신 다른 생산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든 인간 노동의 가변성은 언제나 이런 식의 자본의 형태변화의 기초가 된다....

▲ 1844 실레지엔의 방직공 봉기

여기서는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이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크기가 달라진다는 의미에서의 가변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노동력이 여러 생산 분야에 다양하게 적응할 수 있는 잠재성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화폐가 가지는 유동성이 고정자본에는 없는 것처럼, 가변자본을 다양한 투입과 적용의 잠재성을 지닌 유동자본의 속성으로서의 가변성을 지닌 자본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노동력을 잉여자본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생산분야들을 창출할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구절들도 발견이 된다.

노동이 생산적일수록 노동분야들이 늘어나는 것은 더욱 가능하다. 구 원재료의 새로운 활용을 통해서든, 발견된 새로운 원재료의 발견이나 상업의 확장을 통해서든 구생산에서 같은 규모 또는 확대된 규모에서의 재생산에 쓸모없게 된 노동을 새로운 방식에서 사용하는 것이 더욱 가능한 것이다. 생산분야들의 다양성은 자본의 축적과 함께 커지며, 그래서 노동이 다변화된다.”

노동능력은 많은 잠재성, 즉 가변성을 지니는 자본으로서 마르크스에게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분야 창출에 중요한 요소로 인식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변성을 양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여러 생산수단 또는 생산요소에 가변성 내지 불변성의 정도를 부여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 고정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가변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철과 같은 원재료는 상당히 가변성을 가진다. 물론 철은 사용처로서 특정한 산업분야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따라서 노동능력만큼 가변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화폐는 최고의 유동성을 가지는 유동자본으로 인식이 된다. 그러나 그 자체가 물적 생산수단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못하며, 노동력을 포함한 다양한 물적 생산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다. 물적 생산수단의 범위 내에서는 노동력이 가장 큰 유동성을 지닌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MEGA III.2 제5부의 서론에도 편집진은 다음과 같은 언급하고 있다.

형식적이고 실질적인 종속의 긍정적 결과로서 생산력의 발달과 생산의 사회화와 아울러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변성에 대한 요구가 증대한다고 본다. 이는 모든 방면에서 발달한 인간성의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을 창출한다. 마르크스는 결국 형식적이고 실질적인 종속을 통해 초래된 변화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형편에 영향을 미치면서 객관적으로 이 변화들이 노예들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적 행동을 하도록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게 능력을 부여한다”고 확인한다.(밑줄 필자)

요컨대 가변자본의 가변성은 어떠한 용도에도 쉽게 적응시킬 수 있는 신축성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달을 위한 변화에 필수적인 생산요소로서의 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른 어떠한 생산요소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달을 위해서는 많이 절약하여 비축해 놓거나 많이 증식시켜 둘 필요가 있다. 노동절약적인 기술혁신을 통하여 잉여가치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절약적인 기술혁신이 계속 추구되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동력의 잉여를 창출하는 것이고, 이 자체가 새로운 생산분야의 창출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자본은 노동력의 절약을 통해 실업자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유발하며, 이는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통해 노동임금을 최저한으로 낮추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할 수 있는 잉여 노동력을 확보해 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자본가는 생산요소로서 노동이 가지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노동력의 의미에 대해서 《자본》에서는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가변 자본은 가변 자본에 출자된 자본이 가변적인 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가변 자본이란 명칭을 가진 것으로 설명이 된다. 이것도 새겨 본다면, 가변자본은 노동력을 구입하는 데 출자된 자본으로서, 노동력이 투입되는 새로운 생산 분야라는 용도가 암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생산 분야라면, 당연히 잉여가치의 생산량은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균형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력은 이처럼 다양한 잉여가치의 수준을 가지는 생산분야들에 투입될 가능성을 가진다. 반면에 물적인 생산수단은 만약에 고정자본이라면 특정한 생산분야에만 투입될 수 있다.

특정한 생산분야에서는 모든 생산과 잉여가치 생산의 수준이 거의 정해져 있어서 변동이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에서 위와 같이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을 이름붙이고 정의한 것으로 재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변성의 정도는 생산요소마다 다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력이 가지는 가변성이 잉여가치를 맺는 원천이라면, 노동력 외의 생산요소들도 이 가변성을 지닌 정도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잉여가치를 맺을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노동력의 가변성이 100이고, 면방적기의 가변성이 0이라면, 방적 공장 건물의 가변성은 70 정도가 되고, 투입되는 면화의 가변성은 50 정도가 되고, 투입되는 전기 에너지의 가변성은 90 정도가 되고 이런 식으로 어떤 이용 잠재성의 척도에 따라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의 경우에도 특정한 기술적 직무 외에는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가변성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단순 노동자들은 아주 높은 가변성을 가진다. 이렇게 본다면 가변성과 임금수준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복잡성은 전혀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반되는 방향으로 가는 경향을 띤다.

생산되는 잉여가치의 비율과 가변성과의 관계...이는 상당히 비례적인 관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노동력에만 잉여가치를 맺을 능력을 부여하고, 그 외의 생산요소에는 잉여가치를 맺을 능력이 없다고 본 것은 복잡한 잉여가치 생산 도식을 단순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화폐의 유동성이 일반 증권에 비하여 프리미엄을 만들어 주고, 화폐에 특권을 주는 것처럼 노동은 가변성이라는 장점을 가지는데, 왜 다른 생산요소에 비하여 특권이나 프리미엄을 가지지 못하는가?

화폐, 그리고 토지와 달리 가변성과 함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활수단을 필요로 하는 약점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가는 가장 유용한 생산요소인 노동력을 가장 저렴하게 많이 비축해 두는 전략을 세워서 실행한다는 가정을 가지고서 착취 이론을 재해석해 볼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제2권, 제5장 <여러 자본들의 상이한 사용에 관하여>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자본들이 생산적 노동의 유지로만 향할지라도 같은 자본이 가동시킬 수 있는 그 노동의 양은 그 사용의 다양함에 따라 지극히 다르다. 이는 마찬가지로 그 사용이 그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물에 더하는 가치도 그러한 것과도 같다.

이 구절은 다양한 업종에서 노동이 투여되는 방식이 다양하여 노동이 가변성을 지닌 것을 언급해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이란 생산요소가 국민총생산에 더해 줄 수 있는 가치도 업종과 노동 투입 방식에 따라 지극히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마르크스가 말하는 가변자본은 불변자본과 달리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생산과정 중 가치가 불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속성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여러 업종에서 다양한 노동사용 방식에 따라 노동의 생산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잉여가치 이론 1151 에서 Richard Jones의 생산력 발달 이론에 대한 소개는 이러한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존스의 서술에서 새로운 것은,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는 보조적 자본의 증대는 지식의 증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1) 추가적 자본을 저축할 수단, 2) 그것을 저축할 의지, 3) 그것이 추가적 자본을 재생산하고, 그에 대한 이윤을 산출하기 위하여 충분하게 노동의 생산력을 증대시킬 약간의 발명이라고 존스는 말한다....예를 들어서 전신(電信)은 보조적 자본의 투하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열었으며, 철도 등도 그렇고, 구타페르카 전체나 인도 고무 생산도 그러하다.

이 점은 지식의 확대와 함께 중요하다.

그래서 축적은 새로운 노동을 직접 가동할 필요가 없고, 구 노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같은 기계 작업장이 전에는 베틀을 만들었으나, 이제는 기계 직조기를 만들며, 직조공의 일부가 이 달라진 생산양식에 들어가고, 나머지 부분은 거리로 쫓겨난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 아무튼 대체하는 것보다 더 적은 새로운 노동을 (그 자체의 생산에) 불러일으킨다. 필시 구 노동에는 새로운 방향이 주어질 것이다. 아무튼 노동은 자유롭게(일자리를 잃게-옮긴이) 되고 다소의 방황과 시련을 거친 후에 다른 방향에서 사용될 수 있다. 새로운 생산 영역을 위한 인간 재료가 그렇게 제공된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에게서 가변자본의 가변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시대에 생산 분야의 다양성과 함께 경제의 혁신과 발달이라는 시간적인 변화의 차원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면, 잉여가치의 발생에 대하여 자본주의 경제 구조를 이루는 다양한 분야들의 공간적 차원과 경제적 혁신과 발달의 시간적 차원에서 이를 구조적이고 역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는 신분야의 개척과 확장을 위하여 기존 분야에서 절약해야 할 희소한 자원이란 측면이 부각될 수 있다.

노동절약적 기술혁신을 통하여 실업자를 양산하는 것이 노동자의 재생산비용, 즉 임금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동원되는 측면만이 아니라 신분야의 진출을 위한 혁신적이고 가변적인 자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서의 측면도 자본주의의 동태적 발달에 내재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단순한 생산수단이 아니라 혁신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신사업에는 반드시 인재를 끌어들이게 되는데, 그 인재들은 잉여가치의 공유자들이 된다.

그러나 신사업이 사회에서 보편화되고 구사업이 되어 감에 따라 그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것이 되고,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는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 가고, 노동자는 단순 노동 기능의 신세로 전락하다가 결국에는 쫓겨난다. 그렇게 마련된 노동력에서 다시 혁신을 위한 인적 자원이 마련된다.

이러한 혁신의 기본 동기는 이윤을 얻기 위한 경쟁이다. 그리고 이 혁신이 자본주의의 생존방식이다. 노동은 창조적인 힘의 원천으로 사용되다가 단순한 근력운동의 반복으로 다시 실업으로 가는 사이클을 밟는다.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전유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이중에서 기존 정착된 산업에서 노동의 지위가 최저로 하락한 단계에 타당한 이론이다.

혁신의 동기가 노동자들 스스로에게서 나오지 않으면, 이러한 사이클에서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지위를 가지고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같은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창조적인 능력을 계속해서 발휘하도록 하려면 적절한 보상체계에 의해 잉여가치를 노동자들이 일정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탈피하는 노력의 핵심적인 방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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