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왜(土倭), 토착왜구를 제 멋대로 프레임으로 정의했다가 풀었다하는 변덕

김흥순l승인2020.11.24l수정2020.11.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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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일본과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나와도, ‘토착왜구’로 몰았던 정권이 지금 정권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넓은 아량’으로 먼저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가 민주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임기 내에 북미대화를 성사시키는 게 최대 지상과제인 현 정부 입장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전 일본과 관계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에 외교 전략을 바꾼 것으로 분석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북한 등에 대항하는 한미일 안보 축과 동맹을 중시하는 만큼, 북미대화 설득에 앞서 이 제반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적어도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노동자 손해배상 판결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로 악화 일로를 걷던 한일관계가 조금씩 해빙 무드에 들어서고 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외교부 장관보다 먼저 정보당국 수장으로서 이례적으로 공개 석상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만나더니, 국회의원들까지 잇따라 일본을 방문하며 구애에 나섰다.

정부의 달라진 대일외교 기조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갑작스러운 방일에서부터 표출됐다. 그간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공무원들에게 사실상 ‘방임’했던 한일관계를 정치인들이 주도적으로 풀려고 나선 신호탄이 됐다.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더불어민주당)이 이끄는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 7명도 11월 13일 스가 총리를 예방했다.

김 회장은, 귀국 직전인 14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국 간의 국민감정을 호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문제들을 힘차게 추진해나가는 것이, 현재의 과거사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얘기를 방일 기간 일본 측 인사들을 사적으로 만난 자리해서도 전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가급적이면 모든 한일 현안을 일괄 타결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되면 징용 문제는 현 상태에서 더 악화하지 않도록 봉합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도 말했다.

여기에 대통령이 여러 정상들이 있는 자리에서 스가 총리에게 “특히 반갑다”는 인사를 던졌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한일 정상 간 공동선언을 촉구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요즘 여권의 이런 분위기는 토왜를 정의했던 분위기와 180도 다르다.

갑자기 국정원장, 여당 의원들이 잇따라 일본으로 달려가 “평화 올림픽이 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코로나에 지친 전 세계인을 위로하는 도쿄올림픽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너도나도 도쿄올림픽을 추켜세운다. 극성 친문들이 보면, 완전한 ‘토착 왜구’다. ‘죽창 부대’가 갑자기 ‘토착 왜구’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

토왜가 언론에 등장한 건 100여 년 전이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란 글에선 토왜를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로 묘사했다.

을사조약이 국권침탈의 강권임을 주장한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의 사설(1905년 11월20일자) ‘시일야방성대곡’에도 토왜를 질타하는 대목이 나온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우리 조정의 대신이라는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두려움에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

친일파와 토착왜구는 모두 다 친일 성향의 한국인을 일컫는 데도 어감은 천양지차다. 토착왜구엔 일본 앞잡이라는 부정 의미가 진하게 배어 있다. 어떤 수식을 붙인들 친일파로는 토착왜구의 함의를 온전히 살릴 수 없을 게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우리나라 연안에 출몰해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이다. 일본 해적 같은 한국인이란 뜻이니 여적(與敵)을 마다않는 골수 친일파를 낮잡아 이른 말이 분명하다.

코로나 때문에 내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은 ‘재건과 부흥’을 위한 일본의 승부수다. 일본은 올림픽을 통해 ‘잃어버린 20년’ 경기 침체에 종지부를 찍고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다시 국제무대에서 도약하고 싶어 한다.

올림픽 관광객 850만, GDP 600조엔, 도쿄 전체의 ‘5G 스마트 시티’화 등 온갖 기대도 넘친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 이전에도 잡음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식자재를 선수단에게 공급하고, 사고 현장 인근 경기장에서도 일부 경기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랬다.

‘후쿠시마 상처 극복’ 메시지 차원이지만, 미국·영국 등 일부 국가 언론에서는 바로 방사능 안전문제를 제기했다. 아베는 이런 우려를 불식한다며 “매일 후쿠시마 쌀과 물을 먹어 총재 3선을 했다”고 하기도 했다.

당시 ‘방사능 올림픽’을 전면에 부각한 것은, 우리 여권(與圈)이다. 과거사, 수출 규제 갈등 국면에서 반일 선동에 앞장서 ‘죽창가’를 부르던 민주당은 도쿄올림픽 경기장이 방사능 영향권에 있다는 지도를 공개하면서 “올림픽 보이콧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의원들은 ‘방사능 올림픽 반대’ 포스터를 잇따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일본이 과거사 사죄 안 하면, 전 세계 양심이 올림픽 불매운동을 할 것”, “경제 전범국은 평화 제전을 주최할 자격이 없다”며 올림픽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에 목적을 둔다.

김정은과 바이든을 도쿄로 불러, 남북미일 정상 회동 이벤트를 벌인다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같은 꿈이다. 이것이 되려면 일본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앞으로 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서 어떤 양보를 할지 모른다. 바이든이 이 이벤트에 응할지 미지수지만 코로나도 문제다.

지금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악의 창궐 상황을 맞고 있다. 프랑스는 감염된 의사가 진료를 하는 지경이다. 일본도 심상치 않다. 한국 ‘죽창 부대’가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코로나 백신 출현을 기원해야 할 판이다.

이념정치에 중독됐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집권 초부터 몰락의 시점까지 쉬지 않고 ‘역사전쟁’을 벌였던 사실을 상기한다.

그들은 아무에게나 종북 좌파 프레임을 씌우고, 비현실적인 북한 붕괴론을 신앙화했다.

뉴라이트를 앞세워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했다. 물론 민심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냉정했다. 그들의 역사관이 사실도 진실도 담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나 민생과 연관 없는 이념적 역사 논란이나 정통론의 추구가 허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정권도 마찬가지다. 토착왜구 프레임을 자신이 걸었다 풀었다 제 마음대로다.

안이한 국정운영이나 개선되지 않은 양극화야말로, 촛불이 진압해놓은 수구·냉전·극우 정치가 재생하는 거름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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