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지역연대조직’ 건설

▲ 김정호  박사(북경대 졸) 현재 울산에서 노동교육에 종사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는 누가 뭐라 해도 비정규직문제와 원-하청문제이다.

따라서, 전선을 구축한다면 당연히 비정규직문제, 원-하청문제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진영을 구분해야 한다. 좌파(PD)든 우파(NL)든 이 문제에 대해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면 당연히 선을 그어야 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세력과는 기존의 정파적 경계를 뛰어 넘어 함께 단결해야 한다.

이처럼 비정규직문제, 원-하청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내부 기회주의세력을 척결하는 일이다. 반복하지만 지금 노동운동을 위협하는 적은 외부에 있기보다는 내부에 있다.

자본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대중적 노동운동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저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전략을 이미 수정하였다. 대공장 정규직 중 일부 기회주의세력을 매수하여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내부로부터 방해하려는 것이다.

이들 기회주의세력은 ‘민주파’로 위장한 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전략사업장의 힘을 빌려 자본의 분할통치에 복무하고 있다. 그 같은 기회주의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한국 노동운동은 대공장의 전략 역량을 동원할 수 없을 뿐더러, 원래 자신의 무기여야 할 금속노조를 투쟁의 걸림돌이 되게 할 뿐이다.

금속노조를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무기로 변화시키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이유도, 이처럼 재벌체제에 포섭된 기회주의세력들이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대차지부는 매우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대차 재벌은 그간 치밀한 노무관리를 통해 주요 현장정파들을 자신의 ‘들러리’로 변화시켜 놓았다. 금속연대, 민주현장, 민투위 등 현대차 내 대표적 조직들의 현재 모습이 그러하다.

그들은 그동안 19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 2005년 사내하청 비정규직투쟁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차 재벌의 전략에 순응되어 갔다.

2000년 실노회 정갑득 집행부의 사내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사측과의 공식 합의, 2005년과 2007년 민투위 소속 이상욱 집행부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배신적 행위, 2007년 금속연대 박유기 집행부의 투쟁 없이 ‘교육과 선전’에만 의존한 형식적 산별노조 건설과 이후 기만적 산별교섭의 정착,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한국의 대표적 전략사업장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내에 친재벌적 노사관계가 형성되고 정착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 남아 있는 현장정파들 간에는 노선 차이란 거의 없어졌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집행부 권력을 장악하는 일뿐이다. 이를 위해 상호 간 합종연횡도 마다하지 않고 변화무쌍한 정치력(?)을 발휘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근래 있었던 현대차 내 제정파 간 통합 움직임이다.

민투위는 돌연 2020년 하반기 들어 ‘현장조직 통합’을 기치로 내걸면서 소위 ‘민주파 대결집’을 추진했다. 민투위 기관지 <노동자의 길>은 “현장조직 간의 차이를 넘어 지부 미래와 사회변혁의 중심으로 서기 위해 조직통합 제안” 하는 기사를 352호(2020년8월18일)에 실었다.

여기에 NL계인 민주현장을 제외하고 금속연대, 혁신민주노동자, 새빛 등 총 6개 정파가 통합 추진에 참여하였다. 실제로 한 때 통합작업은 순조로운 듯 보였으며, 이들 조직들은 대외적으로 공식 통합을 선포하고 자기 조직들의 해체를 결의하기도 하였다. 제안자인 민투위는 2021.3.30.자로 현대차 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자신의 기관지 <노동자의 길> 최종호(359호)를 내면서 폐간을 공식 선언하였다.

하지만 도중에 변수가 생겼다. 중앙파 계열인 금속연대가 조직해체를 결정하기 위한 자체 총회에서 의결종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바람에, 통합안건이 부결되고 통합대오에서 제일 먼저 이탈하였다. 그 바람에 ‘대통합’은 결국 무산되었으며, 남은 조직 간의 ‘소통합’ 역시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민투위가 애초 민주파 진영의 ‘조합원 신뢰회복’을 명분으로 현장조직 간 대통합을 제안했던 배경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진다. 민투위는 7대 하부영 집행부(2018~2019년)를 탄생시킨 후, 자체 인물 부족과 조합원들에 대한 위신 저하 때문에 곤란에 부딪쳤다.

7대 ‘하부영-민투위’ 연합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정적인 평판 때문에, 8대 임원선거에서 민투위 후보는 출마자들 중에서 4천여 표밖에 얻지 못해 꼴찌를 차지했다.

통합을 제안할 즈음 민투위는 2021년 하반기 예정이던 9대 지부장선거에서 뿐만 아니라, 2년 후 차차기 임원선거에서도 마땅한 전망이 없어 조직 통합을 통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공장 현장 정파조직들 간의 선거를 둘러싼 이합집산은 현대차 만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치룬 기아차지부 임원선거에서는 NL계인 ‘민주현장’과 현장파인 ‘노동자의힘’ 간에 조직통합을 전제로 한 선거연합이 이루어졌다.

이들이 낸 후보가 결국 기아차 지부장에 당선되었는데, 이처럼 현대차‧기아차 같은 대공장 내에서는 오직 선거 당락을 중심으로 정파 간의 이합집산이 유행하고 있으며, 노선 상의 차이가 퇴색된 지 오래이다.

이들 현장정파들은 자신들이 ‘재야’에 있을 땐 노조 집행부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을 수행한다. 그리고 집행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적당히 사측과 타협하며 임기를 마친다.

마치 의회주의 틀 내에서 야당과 여당으로 나뉘어 권력을 돌아가면서 향유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권 정당과 비슷하다. 결국 그런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합법성을 얻고 ‘동태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현장정파들이 하고 있는 일이 꼭 그렇다!

재벌 자본이 펼쳐 준 제도적 틀 내에서 서로 치고 박고는 하지만, 절대 그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조합원들의 관심 또한 사업장 내로 갇히게 되고, 현장의 재벌질서는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진다.

지금 금속노조의 문제는 매우 ‘구조적’인 것이다. 그 때문에 단순히 상층 지도부의 자기정화를 요구하는 정도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금속노조 상층부와 전략사업장(기업지부) 모두에서 기회주의세력이 강고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세력의 성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개혁 주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서 제안했던 중앙교섭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혁신적 방안이나, 명분 있는 투쟁에의 집중처럼 아무리 좋은 개선 방안을 제안하더라도 결국 한낱 공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혁신세력은 현실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성장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내부 기회주의세력과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가칭)좌파활동가조직 추진모임’ 주체들이 진정으로 노동운동의 발전을 바란다면, 우선 이 같은 기회주의 세력과의 비타협적 투쟁을 자신의 분명한 임무로 삼아야 한다. 최근 이 모임은 ‘좌파 활동가 전국결집준비위원회(가칭)’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발기인•회원•후원회원’ 명단 150명(2021.10.7. 현재)을 발표하였다.

필자는 앞서 이 조직이 내건 기본 취지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이 표방하는 그 같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우선 명칭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분파적 색채가 묻어 있는 ‘좌파 활동가조직’이 아닌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조직’의 명칭을 내걸어야 한다. 그리고 현대차 민투위와는 분명한 선을 긋고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그 같은 개량주의세력은 함께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투쟁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와서 현대차 민투위 역시도 스스로 해체를 선언함이 마땅하다. 민투위는 과거를 반성하고 혁신하기에는 그동안 자본과의 유착의 역사가 너무 깊고 오래 되었다. 고참 핵심 조직원들은 현대차재벌과 이미 사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것을 정리하고 개과청산 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되돌아보면, 민투위는 원래 1995년 8월 양봉수 열사가 분신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당시 5대 이영복 어용집행부에 맞설 목적으로 뿔뿔이 흩어져있던 범민주파 세력들이 한데 결집하여 민투위를 결성했다.

민투위는 출범 후 현대차 노동운동에서 어용세력에 대한 민주파의 압도적 우위를 확립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1997년 노동법 개정투쟁을 정점으로 분열되기 시작해서, 먼저 NL계인 정갑득, 이영희 등 실노회 세력이 민투위에서 이탈하였다.

1998년 구조조정투쟁을 겪으면서 다시 김광식, 박유기 등 중앙파 계열이 이탈했다. 이로써 민투위는 범민주파진영의 연합체가 아닌 ‘현장파’ 중심의 분파조직이 되었다.

이상욱이 이끄는 잔존 민투위는 앞서 보았듯이 현대차 사내 비정규직 ‘불파투쟁’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사측과 결탁함으로써 기회주의세력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면서 기존 민투위의 화려한 대중적 이미지를 자신의 이러한 배신적 행위를 감추는 데 적극 활용하였다.

민투위는 이렇듯 이미 생명이 다한 조직이라 할 수 있으며, 일찍이 해체되었어야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소속 조직원들은 그동안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의 배신적 행위를 깊이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배신한 민투위에 대해 이렇듯 단호한 규정을 내리는 것은, 혹시라도 자본과의 위험한 거래를 꿈꾸는 다른 현장조직이나 개별 활동가들에게도 좋은 경종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제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어용 대 민주’의 구도는 이미 퇴색하였다. 지금 그것이 이름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제 전선을 ‘개량 대 변혁’으로 재편하는 일이 불가피해졌다.

▲ @사진 출처 ; NEWSMIN

오늘날 노동운동의 핵심과제인 비정규직문제, 원-하청문제는 그 해결 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한국 재벌체제의 근간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개량이 아닌 ‘변혁노선’의 전면적 부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국조직이든 지역조직이든 어떤 형식의 연대조직이든지 간에 이 같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조직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 차원에서 먼저 그런 모범을 창출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보여 진다.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간의 전략적 연대를 공식화하기 위해선 우선 ‘지역’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인데, 비정규직 투쟁을 비롯한 일상적 투쟁은 결국 ‘지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강조할 점은, 지역연대조직은 반드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양자 간의 연대는 단일조직을 통해서가 아닌 일시적 연대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진정한 전략적이고 전면적인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양쪽 선진 노동자와 진보적 지식인이 단일조직을 구성함으로써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특히 정규직 활동가들이 ‘대공장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자의 전략적 연대 실현의 관건은 한마디로 말하면 대공장 정규직들에게 달려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은 당연히 대공장 정규직과의 연대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저 탓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혁신을 바란다는 활동가들조차도, 마치 자신들이 몇 개 대기업 지부 집행부만 장악하면 일거에 한국 노동운동의 숙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럴 경우 정규직 활동가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정파 간의 선거연합 등 대공장 내부 문제로만 국한되기 십상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에 범했던 ‘선거조직’으로 전락하는 오류를 답습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노동운동의 혁신을 바라는 활동가라면 처음부터 ‘지역차원’에서 훈련되고 단련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평소에 비정규직 및 하청 부품사의 활동가들과 긴밀히 교류하는 가운데 자신의 이해와 시야를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 같은 지역연대조직을 건설할 경우 다양한 참여 주체들을 폭넓게 규합할 수 있으며, 단위사업장 내부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의 연대투쟁과 초보적 정치투쟁의 수행 역시 가능하다.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보편성을 감안할 때, 이런 지역조직의 건설은 그 전국적 상징성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와 한국 노동운동의 전면적 혁신은 바로 이 같은 각 지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지역연대조직의 성장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끝>

 

* 위 주장에 대한 이견이나 다른 주장이 있다면, 언제든지 개미뉴스에 싣도록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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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선  kingsj8782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