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이 잘한 일 중 하나는, 농지개혁법(農地改革法) 제정

이제는, 농업 실명제를 위한 부재지주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 김흥순l승인2022.06.22l수정2022.06.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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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이승만 정권이 잘한 일 중 하나는,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農地改革法)을 제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헌국회에서 제정해 농지를 농민에게 적절히 유상분배함으로써, 자영농 육성과 농업생산력 증진으로 인한 농민생활의 향상목적으로 제정된 대한민국의 법안 농지개혁법은 이승만 정권의 사회개혁법이었다.

농지개혁법을 개혁으로 보는 시각과 종교적 입장, 제2의 농지개혁법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농지개혁에는 농촌의 진보적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후일 진보 탄압으로 사망한 1948년 초대 내각 조봉암 농림부장관, 강진국 농지국장, 이순탁 기획처장 등이 있었다.

“한국 경제의 궁극적 설계자는 누구인가?”

정진아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의 신간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역사비평사 펴냄)이 던지는 질문이다.

부제인 ‘국가주도 산업화 정책과 경제개발계획의 탄생’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뿌리를 보여준다.

사실 ‘경제계획이 박정희 정권의 독창 창작물이 아니며, 이미 이승만 정부 때 시도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정 교수의 이번 책도 “경제계획은 1949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60년에 기획처 등의 관료들에 의해 끊임없이 작성되었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더 멀리 더 깊게’ 경제계획의 근원을 찾아 보여준다.

‘더 멀리’와 관련해 정 교수는 ‘1920년대 수정자본주의 이념에 기반한 물산장려운동 등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1930년대 이후 일제의 통제경제 정책 경험’, ‘1941년께 좌우 연대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에 토지·대생산기관의 국유화 등을 명시한 점’ 등을 자본주의 계획경제의 ‘역사적 근원’으로 설명한다.

‘더 깊이’의 경우, 저자는 경제 정책의 수행 주체로서 경제부처 장관뿐 아니라 처·국장 등 경제관료들까지 살펴본다.

특히 1948년 초대 내각에서 활동한 조봉암 농림부장관, 강진국 농지국장, 그리고 이순탁 기획처장 등에 주목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온건 사회주의나 좌우합작파였으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계획경제론자들이었다.

농림부에서 활동한 세 사람은 농민 중심의 농지개혁법안의 틀을 마련하고자 했고, 이순탁 기획처장은 농지의 국가관리를 비롯한 ‘자본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구상했다.

그렇다면, 우파 이승만 정권에서 어떻게 이들 계획경제론자들이 활동할 수 있었을까?

정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적 라이벌인 한민당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당시 강력하게 흐르던 ‘민의 사회개혁 욕구’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민이야말로 어쩌면 최종적인 경제 설계자였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을 보면서 싹이 텄다.

당시 정 교수는 분출하는 민중 투쟁과 그 결과로서 헌법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새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정 교수는 민중의 열망과 경제 정책의 변화에 대해 학문적인 접근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세대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가 박사논문의 연구방법론으로 경제사상사적 방법을 택한 것도 “사상은 지도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민중의 총의에 기반한 것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정책을 단순히 정책 결정권자의 결단이나 정책 담당자들의 실무적 행위로만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책을 내고 요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움직임과 파업 업무방해죄 합헌 결정 등과 관련된 우리 사회 대응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단다. “이런 구체적 사안들 하나하나에 대한 대응과 결론이 결국 우리 경제를 설계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에 의한 농지 매수/분배사업은, 미군정의 귀속농지 매각사업과 함께 대한민국 농지개혁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다.

불교 시각

1950년대 농지개혁법 시행으로 전국 사찰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승만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쓰면서 이 상황을 불교계를 분할통치하는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불교계는 그 전술에 휘말려 ‘비구-취처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이어갔고, 이승만이 절에 찾아오자 주지가 맨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가하면 3선 개헌을 지지하는 기도회를 이어가기도 하였다.

제대로 된 전략을 세워서 대처해 나가기보다는 오로지 정치권 불교인들이 노력하고, 정부가 선처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종교로서의 자부심도 없고, 불교 재산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전술·전략도 없으며, 적극 대처하려는 의지도 없는 ‘삼무(三無)’ 자세를 이어갔던 것이다.

신문 보도 내용 그대로 이번 지방세법 시행령이 개정안대로 집행되면, 막대한 세금뿐 아니라 땅값 합산에 따라 종합부동산세도 부과되어 전국의 전통사찰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급격한 세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해 2022년부터 매년 토지면적의 20%씩 늘려나가, 2026년부터 100% 면적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하니 전국 사찰이 세금폭탄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석훈 교수의 제2 농지개혁 시각

- 엘리트 등 농지 투기 만연으로 불법보유 전수조사 목소리 고조

- 이제는 농업 실명제를 위한 부재지주 정비 작업 필요

- 그래야 농업도 미래정책도 산다.

윤석열은 국민의힘 입당 이후 첫 행보로 청년들을 만나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던 분들이 경자유전 원칙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관련 법 규정이 농업의 비즈니스화를 다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침 윤석열 장모는 물론 윤희숙, 심지어는 이준석까지 가족의 농지 보유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해당 지역의 전농 등 농민회 중심으로 농지 불법 보유에 대한 전수조사와 ‘제2의 농지개혁’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한국 경제가 비교적 순탄하게 발전 과정을 밟을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로 농지개혁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카우디요’라고 불리는 대토호들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중남미 경제와 한국 경제의 큰 차이점이 출발 시점에서의 평등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보유하게 되는 소위 ‘경자유전’ 조항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들어간 것은, 1987년 9차 개정헌법이다.

농지 보유에 관한 가장 큰 변화는 박홍수, 마을 이장 출신으로 농림부 장관까지 하게 된 비운의 사나이의 인생과 관련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 때 그는 ‘도시 자본’이 농업에 들어와야 농민의 삶이 개선된다는 황당한 청와대의 주문 앞에 서게 된다. 그들은 그걸 균형발전으로 포장했다.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영세농 중심인 한국 농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청와대는 도시의 돈을 농촌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말농장 등 소규모의 농지 보유를 허용하는 대신, 공공이 농지를 관리할 수 있는 농지은행 역시 동시에 도입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심장마비로 고인이 되었다.

이 정책은, 노무현의 운명도 바꾸게 된다. 그는 진짜로 낙향하여 농민이 되었다. ‘진정성’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농업에 대한 그의 진정성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 청와대 인사였던 문재인 역시 고향으로 낙향하여 농민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2005년의 농지법 개정이 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 것 같다.

그 이후 한국의 농지는 완전 엉망진창이 되었다. 헌법은 소작농을 금하고 있지만, 이미 농지의 절반 가까이를 부재지주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임차농 비율도 절반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1950년에 진행된 농지개혁이 무색할 정도로 농지 보유 체계가 완전히 문란해졌다. 이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WTO 가입 이후에 도입된 직불제이다. 생산성에 따른 정책 지원이 금지되면서, 무조건적으로 지불하는 직불제로 농업 지원 방향이 바뀌었다.

부재지주들이 자신이 농사짓는다는 것을 인정받기위해 이면 계약으로 임차농의 직불금도 가로채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다. 헌법은 소작을 못하게 하고 있는데, 한술 더해서 남에게 농사를 시키고, 직불금도 자신이 받아간다.

여기에 농지 투기까지 끼어들어 왔다. 경실련에 의하면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의 절반이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농지를 산 유명인들 중에는 자연을 사랑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은퇴하면 귀농할 생각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공기업 간부이면서도 실제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부패한 증거가 바로 만연한 농지 투기다. 이렇게 방치된 농지 관리가 양산한 것이 직불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몰래 땅을 빌려야 하는 임차농이다.

농가 고령화 이유 중 하나다. 이 문제는 농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시급하게 풀어야 할 문제다. 농지 투기한 LH 직원들만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농지의 시각이 아니라, 임차농의 시각으로 보면 해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농지은행을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전수조사를 하고, 불법으로 보유한 농지를 농지은행이 사들이면 된다.

논부터 시작하고, 농업진흥지역부터 먼저 하고, 밭이나 한계 농지들을 후순위로 하는 종합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그래서 공적기구인 농지은행이 아니면 누구든 한국에서 농지를 사적으로 대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우리의 헌법 조항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있다. 돈이 문제라면 농지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엉망이 된 농지 보유 제도가 정상화되어야 청년들이 안심하고 귀농할 수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그나마 농산물 사재기 없이 버틴 것도 아직은 한국 농업이 최소한 쌀 정도는 자급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농업의 온실가스 대책도 소유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가능하다. 투기를 목적으로 몰래 농지를 대여하고 직불금도 자신이 가로채는 부재지주가 무슨 기후변화 대책을 세우겠는가?

김영삼이 실명제를 도입해서 경제적 거래의 투명성을 높인 것처럼, 이제는 농업 실명제를 위한 부재지주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농업도 살고, 미래 정책도 가능하다.

이승만도 했던 정책, 지금 못할 이유가 없다.

농업, 이제는 국민농업이 되어야 하고, 미래산업이 되어야 한다. 그 출발점을 지금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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