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군사시설로 시작해 지금은 세계적 기생충 주거지로 알려졌다.

죽어야 대책이 조금 나오고, 그것도 권력자별로 정당별로 대책이 다르다.

원인은 하나고, 처방은 백가쟁명 탁상공론이다.

최근 기록적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인명피해가 났다.

정치권에선 관련 대책을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립하는가 하면, 서울시와 경기도가 상반된 대책을 내놔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군사 참호 지하실이 반지하로 변하게 되었다.

불법이든 뭐든 많은 사람이 지하실에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채광이나 환기 등 주거조건을 최소한은 갖추도록 건축법을 개정한 것이다.

원래 지하실은 완전한 지하라 창문이 없거나, 혹은 일부만 지상으로 올라와 창문이 겨우 10cm 수준이었다. 그런데 높이 중 절반은 지상으로 올라오게 하여 창문을 그전보다 크게 만들 수 있게 되어 채광이나 환기가 그나마 조금은 나아지게 되었다.

누가 봐도 살기에 악조건이지만 모르고 사는 것도 아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건축법엔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근거 규정이 존재한다.

건축법 11조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될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로 건축을 불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집중호우 당시 저지대 노후 주택가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자 서울시가 법 개정을 건의해 받아들여진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조항을 시행한 2012년 이후에도 서울시에 4만호 이상의 반지하 주택이 들어섰다. 2020년 기준 서울 전체 가구의 5%에 해당하는 20만호의 지하·반지하 주택이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8월 10일 앞으로 반지하와 지하 주택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폭우로 물이 들어차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지난 9일 숨진 채 발견된 직후 내놓은 대책이었다.

서울시는 기존 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했다.

반지하를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면 건물주에게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용적률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준비 중이다.

반지하에 살아 본 사람들은 이 같은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정책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장 반지하라는 ‘선택지’가 막히게 되면, 다른 열악한 주거형태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더 오를 것이라 본다.

특히 서울에 있는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20대들은 “반지하 외에 비슷한 돈으로 고를 수 있는 주거지는 옥탑방 아니면 고시원뿐”이라면서, “그나마 싸다는 옥탑방·고시원도 이제 더 비싸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서울의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가 20만여 가구에 이른다.

이를 단기간에 다른 주거형태로 수용하려다 보면,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존 지하·반지하 거주 세입자들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 자격 혹은 주거 바우처 등을 대폭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반지하 거주자 또는 경험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임대주택을 신청하려고 해도 가족 중 다른 사람 이름으로 명의로 되어 있으면, 원천적으로 신청이 불가능하다. 이런 사각지대가 많을 텐데 전부 고려하는 건 불가능하다.

LH 청년전세임대주택도 ‘하늘의 별따기 수준’ 당첨 확률이다.

긴급 상황인데, 긴급 대책은 없다.

건물주를 지원하는 방안이 아니라,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서 나올 수 있게끔 지원하는 방안부터 먼저 나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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