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혁명(Mexican Revolution)과 혁명가요 ‘라쿠카라차(La cucaracha)

김흥순l승인2022.11.25l수정2022.11.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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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1910년 11월 20일 시작된 멕시코혁명(Mexican Revolution)과 바퀴벌레 뜻의 혁명가요 ‘라쿠카라차(La cucaracha)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은 멕시코 혁명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다양한 세력들이 얽히고설키고,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거나 연합하면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을 멕시코 혁명이라는 한 단어에 함축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어떤 사건들을 멕시코 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학자들 간에 여전히 논쟁 중이라는 점을 우선 밝힌다.

1910년 11월 20일은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대통령 당선을 무효라고 하면서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 날이다.

혁명은 체제에 대한 반란에서 시작해 여러 편이 갈린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대립이 계속되다 1917년 멕시코 헌법이 통과되었다.

멕시코 혁명은 대개 1920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여겨진다. 1920년대에도 산발적으로 소요가 이어졌다. 크리스테로 전쟁(Guerra Cristera)으로 다시 유혈 낭자한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멕시코 혁명으로 말미암아 1929년 국민혁명당이 결성되었다.(1949년에 '제도혁명당'으로 개칭) 제도혁명당은 2000년 멕시코 총선 때까지 권력을 장악하였다.

멕시코는 콜럼버스 이전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중남미 역사 전개과정에 있어서 줄곧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다.

특히, 1910년에 발생한 멕시코혁명은 20세기 중남미 역사의 커다란 한 획을 장식한다.

'20세기 최초의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멕시코혁명은 매우 복잡다단하게 전개되었다.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어렵다.

자칫하면 혁명의 어느 특정 단면을 확대해석함으로써 혁명의 총체적 이미지를 왜곡하기 쉽다.

멕시코혁명의 진행과정을 혁명의 질적 변화에 따른 단계별로 추적하고 각 단계별 혁명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 종합하여 멕시코혁명의 총체적 의미를 파헤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멕시코 역대 정권>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통치 (1876년 ~ 1910년)

프란시스코 I. 마데로의 시대 (1911년 ~ 1913년)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시대 (1913년 ~ 1914년)

판초 비야 시대(1911년 ~ 1920년)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시대(1914년 ~ 1920년)

에밀리아노 사파타 시대(1910년 ~ 1919년)

<혁명의 순서>

1) 마데로의 정치적 혁명(1910. 11. 20-1913. 2. 18)

2) 우에르따의 반혁명(1913. 2. 18-1914. 7. 15)

3) 혁명세력간의 계급전쟁(1914. 6-1920. 7)

4) 부르조아 혁명보스간의 권력투쟁과 혁명의 제도화(1920. 4-1929. 3)

5) 까르데니스모 : 민중주의를 통한 혁명제도화의 완성(1934-1940)

6) 알레마니스모 : 강요된 질서와 분배결핍성 성장(1940-70)

멕시코 혁명은 부르조아 계급과 민중부문이라는 이질 집단간 그야말로 동상이몽적 결합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국의 최근 촛불혁명도 이런 모습과 비슷하다.

한편으로 뽀르피리오 디아스의 장기집권에 동참하지 못한 채, 지배권 밖에 머물러 오던 중·상층의 부르조아 집단이 정권획득을 목표로 디아스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정치적 혁명을 주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시기부터 독립을 거쳐 디아스 정권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사회에 있어서 줄곧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었던 농민·노동자 집단이 무엇보다도 그들의 삶의 기본권을 주장하고 획득하기 위해 디아스 정권이 상징하고 있던 부르조아 과두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자 경제·사회적 혁명을 추진하였다.

이들 양 집단의 공동의 적이었던 디아스 정권이 붕괴되자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계급적 모순 및 갈등이 곧 가시화되었다.

이는 혁명세력의 분열을 초래하였다.

이때를 틈타 반혁명 세력이 권력에 복귀하게 된다.

반혁명 정권의 타도를 목표로 혁명세력은 재규합되었으나 반혁명 정권의 축출과 함께 혁명세력간의 반목은 그 골의 깊이를 더해 갔다.

이제 부르조아 집단과 농민·노동자 집단은 혁명의 주도권 획득을 위한 본격적 무력투쟁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양자간 파워게임에서 부르조아 계급이 승리하였고 농민·노동자 진영은 무장해제 되었다.

이처럼 농민·노동자 집단의 무력저항이 분쇄되자 멕시코혁명은 부르조아 혁명보스간의 정권획득을 위한 권력암투의 장으로 진입한다.

그 결과 부르조아 혁명세력간의 자체적 소모전이 전개되었다.

그 와중에서 멕시코 정국은 갈등과 긴장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부르조아 세력은 혁명보스를 축으로 하는 그 때까지의 인물 중심적 구도에서 벗어나 법제화된 제도의 틀 안에서 각 계파의 이견을 조정하고 평화적 정권교체 시스템을 구축해야 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PNR가 탄생되었고 이는 다름아닌 '부르조아 지배체계의 제도화' 였다.

부르조아 간의 권력갈등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부르조아 계급은 이미 무장해제는 되었지만 여전히 부르조아 지배구도의 대항세력으로 남아 있던 농민·노동자 부문을 부르조아가 주도하는 체제 내에 편입시키는 전략을 세운다.

까르데니스모하에 진행된 민중주의적 기조의 경제·사회 개혁정책을 매개체, 미끼를 던져 부르조아 계급은 멕시코의 민중세력을 그들의 하위종속계급으로서 지배체제 내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와 같이 민중부문을 '길들인' 후 부르조아 지배계급은 다시 보수화되었고 개혁의 담론은 스러져 갔다.

까르데니스모를 대체하여 '선성장 후분배'를 모토로 삼는 알레마니스모가 정책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멕시코는 이를 근간으로 하여 강요된 질서 속의 소수를 위한 성장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멕시코 혁명의 총체적 흐름을 종합해 보면, 멕시코 혁명은 '의미 없는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뽀르피리오 디아스의 장기집권에 동참하지 못했던 중·상층의 부르조아 집단이 구부르조아 지배그룹을 대체하여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울러 디아스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며 외형적이나마 민주적 정권을 출현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부르조아 계급간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불과했던 것으로 혁명 이전의 부르조아 지배체제의 기본 속성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반면에, 경제·사회적 혁명을 지향했던 농민·노동자 부문이 부르조아 계급에 의해 무력 진압되어지고 그 후 부르조아 지배체제 내에 종속 편입됨으로써 멕시코 혁명은 멕시코를 진정으로 변화, 즉 혁명시키고자 했던 주체세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엄청난 물적·인적 자원의 희생을 치루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멕시코 혁명은 멕시코 사회에 신 질서를 구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 이전의 구 질서를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치장하고 강화시켰다.

바로 이 점에서 볼 때 멕시코 혁명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진행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 '혁명 아닌 혁명'이 승자에게 안겨다 준 '값진' 훈장이, 바로 20세기 멕시코의 정체를 간결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제도화된, 즉 '합법적 독재' 시스템의 구축이었다.

멕시코 혁명가요 ‘라쿠카라차(La cucaracha)’

사실 이 노래는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1920년대 멕시코 혁명 당시 우리 영토를 침략한 사람들을 '바퀴벌레'로 여기면서 이들을 쫓아내자는 의미가 있다.

멕시코의 혁명 민요인데 한국인들은 신나게 부른다.

1. 그냥 허밍이나 후크 송 느낌의 흥겨운 추임새일 거라고 추측하는 스페인어 ‘라쿠카라차(La cucaracha)’의 뜻은 ‘바퀴벌레’다.

영어로도 바퀴벌레를 나타내는 단어는 ‘Cockroach’이니, 스페인어도 영어와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여 비슷한 형태의 단어로 귀결되었다는 것 정도는 추측이 가능하다.

2. 이 노래가 흥겨운 행진곡이나 무곡이 아니라 ‘멕시코 혁명’과 관련되어 있다.

수많은 멕시코 농민들과 원주민들의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구슬픈 이야기가 이 노래에 담겨 있다.

국내에 생소한 멕시코 혁명이라는 주제를 환기시키고, 그 혁명의 과정에서 멕시코 농민들의 빈곤의 아픔과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참고 자료중 중국인들이 멕시코 혁영 와중 303명 정도 살해 됐는데, 2021년 110년 만에 멕시코 대통령이 정식 사과했다.

멕시코혁명 당시인 1911년 5월 멕시코 토레온에서 발생한 중국계 이민자 303명 학살 사건에 대해 멕시코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다.

안드레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2021년 5월 17일(현지시간) 북부 코아울리아주 토레온에서 110년 전 학살에 대해 중국계 커뮤니티에 사과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종주의와 차별, 외국인 혐오를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나라와 정부는 늘 평등과 문화적 다양성, 비폭력, 보편적인 형제애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에 참석한 주칭차오 주멕시코 중국 대사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보여준 중국의 지원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토레온 학살은 멕시코혁명 초반인 1911년 5월 13∼15일 발생했다.

토레온에 진입한 혁명군이 토레온 시내 중국계 이민자들의 상점과 시 외곽 거주지를 습격해 중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멕시코 언론에 따르면, 당시 토레온엔 700여 명의 중국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절반에 가까운 303명이 목숨을 잃었다.

멕시코 혁명은 문학, 음악 등 많은 곳에 자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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