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전)노동당 정책위원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 없습니다.

1월말, 2월부터 봄 날씨처럼 따뜻한 날이 이어지다가 3월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고 사람들은 이런 날씨를 모두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는 것도 상투적이고 식상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인 70년대에 할머니가 “이렇게 더운 날씨는 생전 처음 본다”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었고, 날씨가 사람들 뜻대로 되어 주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날씨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입니다.

기후 문제를 말하면서 지구의 지질학적인 시대구분으로 인류세(anthropocene)를 도입하자는 의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지만, 이에 대하여 전 세계의 모든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특정 대륙의 사회변화와 폭력적인 수탈과정에서 비롯된 과정이라 자본세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반론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주창한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라는 대기화학자는 대기 중에 온실가스 농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 말엽 영국에서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발생하던 시점이라고 하면서, 이때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 인간들의 물질과 에너지의 사용 추세가 달라져서 지구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경제사적으로 본다면, 지구상의 기온변화와 이로 인한 인구 이동이 사회변화를 촉발하고 침략을 통한 대륙과 대륙 간의 해외 식민지 개척과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하는 시스템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데 뒷받침이 되었던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인류세의 개념 규정을 받아들이고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려서 얼마 가지 않아 지구상에 생물들이 살기 어려워지게 되고 인간에게도 지옥과 같은 환경이 조성될 것이므로 그렇게 되기 전에 시민들과 산업계가 각성을 하고 국가가 행정력을 동원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투자를 하고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 흔히 들리는 생태운동 진영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 온건파는 녹색 뉴딜이나 녹색 성장을 이야기하고, 급진파는 탈성장이나 생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구도로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생태 사회주의라는 것은, 주로 맑스가 자본론에서 인용한 리비히의 이론을 받아들여서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가 가져온 도시와 농촌 간의 물질순환의 단절을 대사적 균열(metabolical rift)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공업화 과정에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게 되면서 농촌의 토지는 양분이 고갈되어 황폐화되어 가고, 도시지역의 하천은 과잉인구가 배출하는 분뇨 때문에 심하게 오염되어 간다고 하여 처음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을 시도한 것입니다.

카를 카우츠키 같은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가는 고대 로마 제국의 멸망과정을 이러한 토양고갈 문제, 인구와 토지 경작 사이에 모순이 생겨난 문제로 바라보았습니다.

카우츠키가 농촌문제를 중요시하여 농촌문제를 경제적으로 분석한 것은 이와 같이 인간과 토양 간의 관계를 사회경제의 변천을 설명해 주는 기본적인 생산력의 문제로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벨라미 포스터와 같은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발굴한 학자는 이런 관점을 발전시켜서 자본주의 사회를 생태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왔습니다.

이런 논리에서 볼 때 자본주의 체제는 그 속성상 자원고갈과 극심한 환경오염을 일으켜서 지구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인간들이 점점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들게 될 수밖에 없으므로 체제를 변화시키는 쪽으로 생태운동가들과 노동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잉여가치 생산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지금까지와 같은 조건에서 계속 확대재생산을 하면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분석하여 드러내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 시스템에서 행해지는 부등가 교환과 제3세계 지역의 생태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잉여가치 생산 측면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가치론을 중시하지 않으며 과소 소비론과 같은 케인스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생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는 잘 할 수가 없는 분야입니다.

제이슨 W. 무어라는, 생태경제사학자는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론에 주목하여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과정을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식민지 개척을 통한 부등가 교환의 과정이면서 국내적으로도 여성노동과 농촌 소농의 노동력을 수탈한 과정이라고 분석하고, 이는 앞으로 점차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는 점에서 농촌지역과 도시지역 간의 물질대사의 균열과 환경파괴 측면을 주목한 데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이론가들의 생각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가치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물적 생산수단의 재생산비용도 점차 저렴해진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헨리크 그로스만이나 제이슨 무어의 사고계열에서는 물적 생산수단의 비중이 커지고 그 부담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에 위기를 가져오는 것으로 주목됩니다.

이런 생각에서 본다면, 기후재앙의 위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조성해 온 위기가 되고, 이는 다시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후재앙의 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영위하는 경제활동과 소비생활을 바꾸는 방식으로 기후재앙의 위기를 넘기는 데 진력하여야 한다는 것보다는 계속 체제를 유지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경제 중심부의 지배세력의 생태위기를 이용한 전략에 협조하지 말고, 체제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어가는 조건에서 온 세계가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인 체제로의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시민들이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기후행동이란, 사실상 유럽과 미국 등 제1세계 시민사회에서 나온 체제 내적인 운동이라는 한계점이 있고 자본주의 체제 중심부의 역사적인 수탈과정에 대한 책임 문제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나키스트 정치 생태학에서는, Ben Debney와 같은 사람이 지금의 문제를 일으켜 온 것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인류세”라는 개념 자체가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국과 서유럽의 정치와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시민사회나 학계도 기후문제를 체제 전환의 문제로 설명하려는 측면이 약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사회와 국가행정, 산업계의 총력 대응의 문제로 보려는 경향이 주를 이루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사 이래 전 세계의 문명과 문화의 발달과정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어온 경험을 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서구의 관점을 따라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세계 지배 체제의 위기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면서 지혜롭게 생존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체제의 위기를 넘겨주기 위해 내핍생활로 희생을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흐름에서 또 다른 노동력의 수탈을 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위기의 공포 그리고 공포심 주입의 현상은 반복될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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