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인터뷰>①일본의 장애인 노동공동체, 45년 왓바회의 역사가 말한다

왓바회와 같은 공동련 소속의 대부분의 노동공동체들은 공동생산, 공동분배 실천 임수철l승인2016.10.31l수정2016.11.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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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애인 노동공동체, 45년 왓바회의 역사를 말한다

▲ 임수철

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지난 2016년 10월 2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는 제1회 아시아 장애인 국제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는 한국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와 일본의 장애인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연합(이하 공동연)이 1995년부터 진행한 한·일 장애인국제교류대회와 2004년부터 시작한 아시아 장애인 국제교류대회를 평가하는 회의로, 워크샵과 기관 방문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기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일본의 장애인 노동공동체, 45년 왓바회의 역사가 말한다.
② 아시아 장애인 국제교류의 평가와 나고야의 장애인 노동공동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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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共生 : 더불어 살고), 공동(共働 : 더불어 일하며), 공육(共育 : 더불어 자립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하는 일본 장애인 노동공동체의 지향점이다.

이 지향점은 일본 장애인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연합(이하 공동연)을 구성하는 단체(주로 장애인 노동공동체이다)들의 지향점이기도 하며, 1970년대 나고야의 왓바회에서 시작되었다.

▲ 1971년 시작 당시의 왓바회
▲ 2016년 현재의 왓바회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일본의 사회 단체들의 이름들은 우리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예를 들면, 정신장애인들이 도시락을 만드는 동경의 와쿠와쿠칸(わくわくかん)의 와쿠와쿠는 워크(일)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며, 또 '희망이 부풀어오른다'는 '두근두근'이라는 일본말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고야의 왓바회(わっぱの会)도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왓바(わっぱ)라는 이름은 '어린아이, 꼬마, 고리'라는 의미를 가지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고리(연대)를 만들자'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왓바회의 시작은 후추요육(府中療育)센터 투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투쟁은 이 센터에 있는 장애인들의 의사를 무시한채 타마갱생원(多摩更生園)으로 이전하려는 시도에 반발한 투쟁이였으며, 시설의 비인간성이나 열악함을 사회에 알리며 지역생활의 중요함을 많은 장애인과 관계자에게 인식시킨 투쟁이였다.

이 투쟁은 1972년 9월부터 1년 9개월에 걸친 동경도청 앞에서의 농성투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후추요육센터의 오지 강제이전을 저지하는데 성공했으며, 1974년 6월에 천막을 철거해서 그 막을 내렸다.

왓바회도 당시 장애인들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을 반대하며 1명의 장애인과 수용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2명의 비장애인이 나고야의 목조로된 단독주택에서 공동생활과 공동작업(골판지 가공, 인쇄를 하는 왓바공동작업소)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1971년에 설립한 왓바회는 후추요육센터 투쟁을 비롯한 탈시설 투쟁, 장애를 가진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카모토 유리'라는 기업에 대한 투쟁, 공동생활과 공동사업을 위한 나고야시 토지 임대투쟁(1977년, 나고야시의 지원으로 후쿠에 공동작업소를 쇼와구에 개소)을 거치면서 나고야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후쿠에 공동작업소(골판지 가공) 등의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자, 이들은 1984년 일본 최초로 일본산 밀을 사용하고, 무첨가물의 빵인 '왓빵'을 만들게 되고, 이는 공생(共生 : 더불어 살고), 공동(共働 : 더불어 일하며)의 장을 차례 차례 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988년 왓바회는 나고야시 키타구에 빵을 제조, 판매를 하는 「워크숍 스즈란(은방울꽃)」을 만들게 되고, 이는 지금까지 왓바회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 워크숍 스즈란의 초기모습
▲ 현재의 워크숍 스즈란의 모습

'워크숍 스즈란'으로 경제적 기반을 닦은 왓바회는 1990년대에는 재활용과 농업으로 일을 확장시키는 것과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일반기업 등으로의 취업지원,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뒷받침하는 활동보조로 넓혀 갔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와서 장애가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 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회적사업소」의 안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령화, 질병을 가진 왓바회의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생애활동센터 왓바레(生涯活動センターわっぱーれ)를 설립하여 지원하고 있다.

▲ 생애활동센터 왓바레(生涯活動センターわっぱーれ)의 모습(1)

한편, 왓바회와 같은 공동연 소속의 대부분의 노동공동체들은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하고 있으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바로 공동분배이다.

즉 누구나 같이 분배를 한다는 점이다. 왓바회는 이를 분배금(임금이 아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왓바회의 공생(共生 : 더불어 살고)의 방식이 일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고용관계가 아니며, 여타의 장애인 생산시설들이 그렇듯이 직원(우리나라의 경우 직업재활교사)과 이용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며, 비장애인 직원 장애인 노동자의 급여가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분배금은 상호부조의 임금체계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왓바회 소속의 모든 사업장이 수입을 법인 한군데로 모아 분배한다는 점이다.

▲ 생애활동센터 왓바레(生涯活動センターわっぱーれ)의 모습(2)

왓바회는 완결체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45년 투쟁의 역사와 공동, 공생, 공육의 가치를 지켜온 것을 자랑스러워 하되, 사회적 경제를 염두에 둔 가치관과 활동 방식의 재정립을 늘 고민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의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왓바회의 사이토 겐죠 대표와의 영상 인터뷰 중 하나를 언급하고 마무리를 하려 한다. 우리의 노동공동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했을 때, 그는 상호 신뢰를 강조한 점이다.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상호 신뢰가 없다면 45년의 공동체 역사도 없었을 것이며 앞으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생애활동센터 왓바레(生涯活動センターわっぱーれ)의 모습(3)
▲ 생애활동센터 왓바레(生涯活動センターわっぱーれ)의 모습(4)

이것이 왓바회와 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며 공공생산, 공동분배의 노동공동체를 우리사회에 건설하는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신뢰는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 ② 아시아 장애인 국제교류의 평가와 나고야의 장애인 노동공동체들

http://www.an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

임수철  vicsoo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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