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연어 ; 전 인천시의원, 인천 연수구 지역난방 열요금 폭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이 몸소 정사를 살핀다는 말이다. ​

만기의 기(機)는 베틀 즉 베를 짜는 틀을 말한다. 기지경자 기지위자 즉기위직구야(機持經者 機持緯者 則機謂織具也)는 씨줄과 날줄을 갖는 틀 즉 만 가지 베틀이다.

나랏일을 함에 있어 대통령 휘하에 총리와 17부 5처 16청이 바로 만 가지 베틀이다. 최근 필자가 캄보디아 실크농장을 방문하여 실크가 생산되는 과정을 살펴보니 누에를 치고, 실을 빼고, 천연색소를 만들고, 여러 가닥의 실을 엮고 각각의 틀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의 실크를 생산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실크농장의 인원만 일 천 명이 넘었다.

▲ 캄보디아 씨엠렙 실크농장에서 직원들이 여러단계의 베틀에서 실크실을 생산하는 모습

최근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 정부 업무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문화체육 분야는 물론 외교와 안보, 교육과 심지어 국방의 전투기 기종선정까지 만기친람을 행하면서 국정문란의 전횡이 일파만파로 전개되어 국민은 충격의 연속이다.

조선시대 세종과 성종은 몸을 상하면서까지 만기친람을 행한 성군이다. 세종대왕, 성종대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우연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행할 만기친람을 40년간 사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최태민 사이비교주의 셋째 딸 최순실이라는 한 여인과 그 측근들이 휘둘렀다.

이는 마치 고려의 요승 신돈과 광해군 시절의 상궁 김개시를 연상케 한다. 고려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왕의 사부 관직에 오른 승려 신돈은 부를 축척하다 유배당하여 사사를 당했다. 조선의 광해군은 적장자가 아닌 탓으로 어린 시절부터 왕위를 계승받기 전까지 선조로부터 세자의 지위를 위협받았는데 이때 궁녀 김개시는 성장과정의 외로운 광해를 살펴주다 광해가 왕위에 오르자 정사에 깊숙이 개입하여 난정을 휘둘렸다.

성장기에 부모를 잃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 요술로 접근하여 정사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최순실이 김개시와 여러 가지로 흡사하다 아니할 수 없다.

자신의 딸을 이화여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면접요강을 편법으로 고치고, 딸의 학점을 위해 학사규칙을 개정하고,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시나리오를 총감독도 모르게 변경하고, 대기업을 협박하여 미르재단 800억 원의 불법 출연금을 모금하여 딸의 독일 승마 훈련비로 전용했다는 의혹, 문체부 정책을 떡 주무르듯이 쥐락펴락하여 각종 이권사업을 챙기고, 측근을 청와대 인사로 기용하고, 아랍에미레이트의 문화원 개설 등 외교에 개입하고, 심지어 국방부 차세대전략사업인 전투기 기존 변경에도 개입했다는 수많은 의혹이 나오고 있어 최순실이 개입한 국정농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 부패에는 항상 전조현상(前兆現想)이 발생한다. 대통령 측근의 생각 있는 사람들이 기이한 대통령의 현상을 충언하고, 경고했지만 모두 배신의 정치, 배신자로 매도당하며 밀려나고 떠나갔다.

친박의 원조라고 하는 김무성 전 대표는 비주류의 원조가 되었고, 박근혜의 입으로 여겼던 전여옥 대변인은 <대통령이 되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연일 독설을 퍼붓고, 박근혜 당 대표의 연설문을 기초했던 유승민 의원은 공천학살로 출당까지 당했지만 대구민심은 박근혜보다는 유승민을 선택했다.

장관들이 대통령 대면보고를 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유승민의원의 말대로 청와대 얼라들인 문고리 3인방이라는 일개 비서관들이 장관들의 청와대 출입을 애써 막자 신년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질문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이것이 불통의 단초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7시간동안 대통령은 온데간데 없었다. 각료 중 유일하게 진영 복지부장관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정치인의 꽃이라는 장관직을 스스로 던질 때, 누구도 불통의 전조를 의심하지 않았다. 작금의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그런 전조현상을 무시하고, 대통령은 국민을 국론분열세력이라고 경고했다.

2016년 10월, 국정감사 때만해도 미르재단과 최순실 의혹에 대해 이정현 대표와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들은 오히려 이를 감싸고 들었다. 이제는 새누리당 조차 대통령 버리기에 나섰다. 하야에 준하는 거국내각 구성과 책임총리제까지 먼저 들고 나설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하는 배신의 정치의 극치이다.

대통령 연설문을 다듬어 주던 최순실이 독일로 도피해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도 90초 밖에 못하고, 질문도 못 받고 성급히 회견장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조소까지 나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게 나라냐? 순실의 나라! 국민들이 우황청심환을 먹을 지경이라고 분노했다. 야권은 대선을 앞두고 호재를 만났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이 호재를 어떻게 대선까지 끌고 갈 것인지 골몰한다. 노무현 탄핵의 역풍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노무현 탄핵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한 것이지만, 지금은 거국중립내각 26.1%보다 ‘하야하라’는 여론이 48.2%가 이른다. 그만큼 국민의 상실감이 크다. 하지만 야당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이를 즐긴다. 그래서 국민은 청개구리같이 딴전을 부리는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봉급쟁이들은 이런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이 정말 아깝다. 저런 인간들이 내 월급을 축내고, 아니 도둑질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 “돈도 권력이다. 돈이 없으면 그런 부모를 원망하라”했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말은 흙수저의 우리 청년들의 머리를 돌게 만든다.

그나마 부정을 보고 결연히 일어나 86일간 시위를 하여 사태를 촉발한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어른으로서 한없는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3.1 만세운동, 3.15 부정선거, 4.19‘ 5.18 광주항쟁 등 이 나라 개혁과 변화의 과정에는 항상 젊은 학생들이 있어 그나마 희망을 느낀다.

그렇다면 작금의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검찰의 조사를 자처하고 나서야 하는 진솔한 반성의 자세가 요구된다. “대통령은 재임 중 내란 및 외환의 경우를 제외하고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헌법 제84조에 명시되어 있다. 재판에 회부되는 기소를 받지 않을 뿐이지 수사는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중론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박 대통령이 기인되었다. 본인 스스로도 국민들에게 이를 시인했다. 특히 안종범 경제수석조차 최순실과 대통령사이에 직거래 있다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전경련은 미르재단 800억 불법모금에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더 이상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으려면 청와대를 방문조사해서 사태의 근원을 수사하여 명명백백히 가려야 할 것이다. “국민이 우선이다. 민생이 우선이다.” 라고 했던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새롭게 창당하는 길로 나서야 한다. ​

책임총리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내각의 전면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가경제와 국정공백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세계경제 10위권 선진국인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에 놓였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무엇인가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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