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휴전 조건

전쟁의 종식을 결정지을 핵심은 전장의 현실 강내희l승인2024.06.27l수정2024.07.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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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전) 중앙대 교수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
           (현) 문화/과학 발행인
           (현) 참세상 이사장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6월 15일과 16일의 이틀 예정으로 90여 국가 대표들이 참석하는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14일 러시아에서는푸틴 대통령이 외무부에 가서 중대한 발표를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휴전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푸틴이 전쟁 종식을 위한 중대 방안을 직접 내놓자 세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하다. 러시아 측이 스위스의 평화회의 직전에 중대 제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회의의 논의 기류를 비틀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관측자들도 없지 않았다.

14일은 이탈리아에서 13〜15일 사이 G7 정상회의가 열리던 와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을 주요 현안으로 다룰 것이 분명한 서방 중심의 국제회의가 연달아 열리는 가운데, 푸틴이 러시아 측의 휴전 조건을 발표한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최대한 끌고 영향력도 최대한 행사하기 위함이었을 공산이 크다. 

푸틴의 제안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크라이나군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 나는 우크라이나 일부가 된 시기 행정 경계 안의 이들 지역 영역 전체에서 그들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언급한다. 키예프가 이 결정을 하고 이들 영역에서 실제로 군대 철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또 나토에 가입하려는 계획을 포기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공지만 하면 우리 측은 휴전 명령을 따를 것이고 그 순간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확고한 입장을 반복하자면, 우크라이나는 중립적, 비동맹 지위를 택해야 하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아야 하며, 탈군사화와 탈나치화를 행해야 한다.”

푸틴의 이번 제안은 ‘이스탄불 플러스’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양국이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협상을 벌여 합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거기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주하고 영국의 당시 총리 보리스 존슨이 ‘행동대장’으로 나서서 무산시킨 2년 반 전의 협상에서 러시아는 2014년에 자국 영토로 귀속시킨 크림반도 외에는 헤르손과 자포리자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내 반군 활동의 근거지였던 돈바스 즉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도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했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탈군사화와 탈나치화, 그리고 비동맹 중립국화의 요구는 그때도 제시되었지만 러시아가 장악한 영토와 관련해서는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의 자율권만 인정하면 모두 돌려준다고 한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합의한 내용 대부분은 이번 제안에도 담겨 있다. 그렇다고 추가된 새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돈바스의 두 공화국은 물론이고 헤르손과 자포리자까지 러시아의 영토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푸틴이 제출한 휴전 조건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장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것은 미국과 다른 나토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러-우 전쟁의 종식을 결정지을 핵심은 전장의 현실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 러시아가 1,400킬로가 넘는 전선 전체에서 승세를 굳힌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군은 돈바스의 두 공화국과 헤르손, 자포리자만이 아니라 하르코프 주의 볼찬스크와 립치에서도 우위에 선 형세다. 와중에 우크라이나군의 사상자 수가 최근에는 매일 1,500〜2,000명에 이른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푸틴이 이번에 제출한 휴전 조건에서 이전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에 4개 지역에서 철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자국군의 전황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로 여겨진다. 

이번 휴전 조건을 발표하기 전에 푸틴이 러시아 내부에서 중요한 군사적 모임을 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대통령궁에 따르면, 푸틴은 11일 저녁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부 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장과 회동한 뒤 일부 지역 사령관들과 개별 면담을 했다고 한다.

그날 회의의 내용이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푸틴이 최근의 전황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가 14일에 우크라이나에 이제는 돈바스의 두 공화국은 물론이고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까지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군부로부터 낙관적인 전황 보고를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제안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도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큰 희생을 치르며 전쟁을 수행해와 지금은 승세를 굳히고 있는데 왜 4개 지역만 취하고 다른 지역은 취하지 않으려는 것이냐고 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하르코프와 수미, 오데사 등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지역을 이번에 러시아 영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푸틴 자신도 최근에 와서는 오데사 등에 대해 러시아 영토라는 표현을 써오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이 4개 지역만 우크라이나가 포기할 영토로 이번에 언급한 것은 국제 여론전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 <관찰자망观察者网>에 실린 한 기고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을 바로 중단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비서방 국가들이 알게 하려는 것이 푸틴의 의도일 공산이 크다.

다시 말해  서방 세력이 그동안 펼쳐온 서사를 저격하기 위해 푸틴이 이번 제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토국가들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나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서쪽으로 즉 유럽으로 계속 밀고 들어올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야 한다는 자세를 일관해왔다.

그러나 푸틴의 제안은 자신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땅이라고 불러온 오데사, 하르코프, 수미 등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이미 주민 투표를 거쳐 러시아 연방에 귀속된 4개 지역만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나면 유럽까지 집어삼킬 것이라고 주장해온 서방의 서사와는 전혀 다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4개 지역에서만 철수하라고 함으로써 서방이 자국에 대해 거짓 주장을 하는 것임을 비서방 국가들에 환기하는 셈이기도 하다. 비서방 국가들은 푸틴의 휴전 제안을 보고 그동안 러시아의 호전성을 강조해온 서방의 선전이 사실과 다르다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 

사실 지난 15〜16일에 스위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의 결과를 보면, 이제는 많은 나라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서사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22년 3월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유엔에서 채택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의 경우, 190여개 회원국 가운데 141개 국가가 찬성했다.

하지만 이번 스위스 회의에는 160개 국가가 초청되었으나 90여 국가만 대표를 보냈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에는 그보다도 적은 80개국 미만이 서명했다고 알려진다. 우크라이나 갈등을 놓고 세계 여론이 크게 반전된 셈인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은 푸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해야 휴전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위스 정상회의 첫날 즉 푸틴이 휴전 조건을 발표한 다음 날 회의장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이 계속 나왔으나 호의적인 반응은 드물었다.

따라서, 푸틴의 제안은 현재로서는 소귀에 경 읽기로 그친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의 반응이 그럴 것임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휴전 조건을 발표한 것은, 서방보다는 비서방 국가들이 자국의 입장을 지지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미 러시아는 비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많이 받아 놓고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나토국가들이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을 미루면 미룰수록 전장의 현실이 그들에게 계속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에 더 많은 영토를 빼앗길 확률이 높다. 러시아는 지금 당장은 우크라이나군에 4개 지역에서만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전황을 보면 갈수록 우크라이나 영토를 더 많이 점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이번 제안에서 오데사와 하르코프 등을 언급하지 않은 푸틴에 대해 너무 유화적이라며 볼멘소리하는 러시아 강경 세력의 희망이 실현될 수도 있다. 그들은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영토만큼은 모두 러시아화할 것을 요구한다.

“어제의 제안이 우리 측의 마지막 평화 제안이었다. 다음에는 항복의 제안이 될 것이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고손자이며, 러시아 의회 현 부의장인 표트르 톨스토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러시아가 다음에 항복을 강요하게 될 때 우크라이나는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질 우려도 있다. 그렇게 보면 우크라이나로서는 푸틴의 이번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정치권력이나 나토 세력은 이미 거부의 태도를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말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인민, 특히 군대에 ‘대포 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희생은 계속되고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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