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연어 / 전 인천시 시의원, 칼럼니스트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로 광화문 광장(廣場)이 삼십일 째 몸살을 앓고 있다. 「광화문」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한 뒤 3년이 지난 1395년 완성한 경복궁의 정문이다. 개국 일등공신 정도전이 도성의 이름을 경복궁(景福宮)이라 하였는데 도성 안팎으로 통하는 동서남북 4대문의 이름에 유교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사상을 부여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돈의문(敦義門)·숭례문(崇禮門)·숙정문(肅靖門)이라 지었다.

이 중 남쪽의 숭례문은 임금이 통행하는 경복궁 정문으로 세종 7년(1425년)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광화문으로 명명되면서 조선과 대한제국을 거쳐 대한민국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광장』은 open space로 「도시속의 개방된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아고라광장」에서 유래했다. 도시의 중심부나 항구 옆 광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에서 시작되었으나, 나라 일을 토론하는 곳으로 변천되었다.

고대 백만 명이 살았다는 잉카제국의 「아르마스 광장」, 1989년 독일통일의 산실이 되었던 「브란덴부르크 광장」, 1989년 중국 문화혁명의 상징인 「천안문 광장」, 무바라크 30년 철권독재정치의 종식을 선언하며 민주주의 이룩한 「이집트 광장」, 민주화를 위해 100여 명이 사망하여 체코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바츨라프 광장」,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킨 1987년 「서울 광장」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어 내었지만, 오늘의 「광화문 광장」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마당이 되어 국민들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광화문광장의 분노는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과 그의 딸 정유라의 교육농단으로 취업난과 7포시대의 학생과 청년들의 공분을 자아낸 것도 원인이지만, 거짓말로 일관한 대통령의 1차, 2차 대국민 사과가 도화선이 되었다.

필자는 다섯 차례의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보다 냉정하고,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보고 듣고자 했다. 영조와 정조시대에 목숨을 걸고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번암 채제공 선생의 용인 묘소를 방문하고 서울로 가던 중, 종로에서 막혀버린 버스에서 내려 1차 촛불집회 행렬을 따라 가며 현장을 취재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노인은 시위대에 박수를 보내고, 젊은 커플들이, 엄마의 손을 잡은 초등학생, 아빠의 등에 올라탄 딸, 함께 손을 잡은 부부,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 노동자들, 대학생들은 물론 중·고등학생들의 행렬은 종로일대와 을지로를 거쳐 명동과 서울역과 남대문을 돌아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했다.

▲ 엄마의 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초등학생

2차 촛불집회는 경복궁역 입구까지 시위대가 진출했다. 3차 촛불집회부터 야3당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100만 인파를 돌파했다. 서울역에서 남대문과 종로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전세버스들이 줄을 이었다.

필자는 광주에 사는 지인에게서 전세버스 210대 올라왔다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시대정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차는 대학 수능시험을 마친 고3학생들과 대학교 총학생회가 대거 참여하였다. 역사상 가장 많은 190만 명이 참여한 5차 촛불집회는 첫눈과 한파까지 녹이고 말았다.

하늘도 도왔다.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니고 무엇이랴! 법원은 청와대로부터 불과 200미터 거리인 청문동사무소까지 진출하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모든 집회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적이고 축제분위기였다. 외신들은 󰡒한국인들의 인내에 경이롭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부 과격한 시위대에게 군중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자제력을 호소하고, 경찰버스에 꽃을 붙이고, 시위진압에 나온 전경들에게 사과를 던져 주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온다. 전경들이 우리의 형제이자 아들이 아닌가?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노래와 “하야해!”가 합창되고, 가수 안치환은󰡒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저녁 8시가 되자 1분간 점등이 되고, 청와대를 향해󰡒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쳤다. 인근의 상점들도 소등에 동참했다. 시민혁명의 대역사이다.

“3.5%의 국민이 지속적으로 비폭력 시위를 벌이면 어떤 정부라도 버티지 못한다.”고 한 미국 덴버대학교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의 말처럼, 광화문광장에 180만 명이 모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물러날까? 하는 우문(愚問)을 해본다. 초등학생도 이 정도면 벌써 반장을 그만 두는데.

그래서 전직 국회의장이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하며 혀를 찼다. 그래서 4%짜리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순실로부터 해외순방 출국 전에 국무회의 개최 지시를 받고, 주요 국정자료를 사전 검토를 받으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저토록 무능할 수 있을까?’, ‘저러자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여기에 "세월호 7시간동안 프로포플 대리 처방이 사실이 아니냐"는 의혹이 넝쿨처럼 이어지고 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게 되어 있다."라는 말에 횃불은 물론 LED촛불과 핸드폰의 「앱 촛불」이 등장하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춘천 사무실 앞은 춘천시민의 「저항광장」이 되었다.

구중궁궐 청와대나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무실에서 촛불집회를 TV로 본들 대통령이나 친박계 의원들은 나라걱정에 평화적 시위를 하는 국민의 진정성을 알 리 없다.

집회에 참석한 70대 어르신은 "칠십 평생 데모를 숱하게 봐 왔는데 오늘 같은 시위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국민 의식은 세계최고라 할 만큼 으뜸인데, 대통령은 세계 최악이고, 정치권은 대권구도 계산에 계산이 제각각 다르다.

국민이 광장으로 몰려나오는 것은 그만큼 제도권정치가 실종하고 있다는 반증을 여의도 정치인들은 알기나 할까? 광화문광장을 찾아올 때마다 몸을 상하면서까지 만기친람(萬機親覽)을 행하신 세종대왕과 죽음으로써 누란의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 장군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이 생긴다. 대왕과 장군은 작금의 이 나라를 보시면서 무엇이라 하실까?

미국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일자리 창출과 보호무역으로 빠른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반면, 한반도는 탄핵정국의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은 "이게 나라냐?"하며 분노하다 지쳐 마음마저 아프지만, 개혁과 변화를 끊임없이 갈구했던 광화문광장의 정기(精氣)를 비폭력과 문화축제로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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