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전) 중앙대 교수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 (현) 문화/과학 발행인 (현) 참세상 이사장

영국에서 총선이 치러져 보수당의 14년 장기 집권이 막을 내렸다.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가 보수당으로서는 20세기 초 이후 최악의 대참패인 것으로,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가 선거를 지휘한 1997년 총선 이후 최대 규모의 압승인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양당이 차지한 의석수로 놓고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

노동당은 전체 650석 가운데 과반인 326석을 훨씬 더 뛰어넘는 412석을 얻었고, 보수당은 겨우 12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제3당은 71석을 얻은 자민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은 이전보다 무려 251석을 잃었고 노동당은 215석을 더 얻었다고 한다. 의석수만 놓고 보면 노동당의 대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좀 자세히 살펴보면 영국 총선의 결과는 아주 복잡한 속내를 지니고 있다. 우선 쓰나미 같은 결과를 가져온 선거치고는 투표율이 지나치게 낮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60%로 2001년에 59%였던 것을 제외하면 1885년 이래 두 번째로 낮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적었다는 말일 것이다.

선거 전에 노동당의 압승이 이미 확실해서 투표장을 찾은 사람이 적었다는 분석도 있으나, 투표율이 역사상 최하 수준이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노동당에도 보수당에도 강렬한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징표라고 여겨진다.

노동당의 승리 내용도 따지고 보면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 제러미 코빈이 당수직을 맡고 있던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비록 42.3%를 얻은 보수당에 밀리기는 했어도 40.0%라는 상당히 높은 득표율을 얻은 바 있다. 당시 노동당은 보수당의 1,363.7만 표보다 75.9만 표가 적은 1,287.8만 표를 얻었다. 코빈 당수의 지휘로 다시 선거를 치른 2019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참패한다.

노동당은 득표율 32.2%, 득표수 1,029.6만 표로 보수당의 득표율 43.6%, 득표수 1,396.7만 표에 한참 밀렸다.

하지만 당시 노동당의 참패는 좌파 계열 당수인 코빈을 지지하지 않는 당내 우파들의 비협조에 원인이 있었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올해 선거에서 노동당은 당수 키어 스타머의 지휘로 선거를 치렀고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득표율 34%도 2019년에 코빈 지휘하에 치러 참패한 선거보다 그렇게 높지 않고, 심지어 득표수는 970.4만 표로 1,029.6만 표보다 60만 표 가까이 더 적기까지 하다.

초라한 득표율과 초라한 득표수로 노동당이 절대다수의 의석수를 차지한 것은 영국 선거제도의 맹점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우파 정당인 ‘개혁 영국’은 득표율 14.3%, 득표수 411.7만 표나 얻었는데도 5개의 의석밖에 확보하지 못한 데 비해서 자민당은 득표율 12.2%, 득표수 351.9만 표로 무려 72석을 챙겼다.

영국의 정치를 잘 모르기는 해도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투표제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이번 총선으로 ‘압승’을 거둔 노동당은 영국 의회에서 여당이 되었고, 당수 키어 스타머는 총리가 되었다.

지난 15년 집권한 보수당에서 야당인 노동당으로 집권당이 바뀌었으니 영국 사회, 영국의 문화정치경제는 얼마나 바뀔까?

영국은 우파 포퓰리즘의 횡행 속에 2016년에 브렉시트를 결정했지만, 이후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수당의 전임 총리 보리스 존슨이나 이번에 ‘개혁 영국’을 만들어 다시 정계에 복귀한 나이젤 패라지 등의 장밋빛 약속과는 달리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장기침체에 들어간 상태다.

이제 노동당이 오랜만에 정권을 잡았으니 그동안 보수당이 해온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생기고, 정치경제적인 대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노동당의 집권으로 영국 사회가 중대한 변화를 맞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보수당과 노동당 사이에 정책상 실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총리가 된 키어 스타머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승리로 총리가 된 스타머는 노동당의 전임 당수인 제러미 코빈을 당에서 축출한 경력도 있다. 당내 우파인 스타머는 코빈이 2019년의 총선에서 패배한 책임으로 당수직에서 물러난 뒤의 당내 경선에서 당수가 되었는데, 이후 노동당의 우경화에 앞장서 왔다.

전임 당수 코빈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과 학살을 비판한 것으로 반유대주의자로 당내에서 조사 대상이 되었을 때도 그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코빈의 의회 내 당원권을 정지하기까지 한다. 이번 선거에서 코빈은 수십 년 몸담아온 노동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로 나와 큰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스타머와 노동당은 대외 정책에서도 보수당과 전혀 다른 점이 없다. 영국은 지금 우크라이나에 38억 달러의 군사 지원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신임 정부에서도 그 지원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당은 정강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국의 군사적, 재정적, 외교적, 정치적 지원은 확고부동할 것”이라는 방침을 표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노동당의 집권으로 그동안 보수당 집권하의 영국이 보여온 우크라이나 정책에 별로 의미 있는 변동은 없다는 말인 셈이다.

서아시아 정책에서도 노동당은 보수당과 큰 차이가 없다. 스타머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그런 움직임은 평화 과정의 적절한 시점에 나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아울러 그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태도다. 이스라엘이 자기의 자위권을 내세우며 가자의 인민을 학살하는 것을 놓고 보면 스타머와 노동당은 집권 후에 가자에서의 학살에 대해 보수당이 보여온 용인의 태도와 그리 다른 태도를 보일 가망이 없다. 영국은 지금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과 함께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가 총리가 된 영국에서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생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마 스타머가 이번에 참패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보리스 존슨, 리시 수낵 등의 전철을 밟으며 계속해 실정을 거듭하면 몇 년 후 노동당 역시 참패한 뒤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러려면 물론 시간이 더 걸릴 것이고, 세계인은 영국인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친나치 세력 지원, 나토의 군사력 강화, 팔레스타인에서 집단 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 지원 등 영국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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