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상 :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맘때 백령도에 점박이물범이 찾아온다. 여름철이면 충청도 가로림만으로 이동해 머물다 바다가 차가워지면 발해만으로 이동해 겨울철 유빙에 새끼를 낳는다는데, 이듬해 유빙이 녹아 사라지면 백령도 인근에 모인다고 한다. 오랜 세월 우리 서해를 회유하는 점박이물범은 요즘 살아가기 무척 어려워졌다.

심청이 빠졌다는 인당수는 예로부터 물고기가 많고 물살이 거셌다. 요즘도 그렇다는데, 선은 없다. 남북이 경계하는 해역에 어떤 배가 접근할 수 있으랴. 하지만 점박이물범은 관계없다. 여름 전까지 신나게 사냥에 나설 텐데, 쉴 자리가 필요하다. 다행히 백령도 해안에 ‘물개바위’가 있지만 만조에 물속으로 잠긴다. 인천시는 새로운 바위를 더 넓게 만들었는데, 시멘트 냄새가 싫었을까? 한동안 외면했다고 한다.

황하강은 주변 공장에 바다 같던 강물을 용수를 내주면서 요즘 건천일 때가 많고, 공장 인근 배수구에서 정화 처리 부족한 오염수가 발해만에 마구 쏟아지면서 흔전만전하던 물고기가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남획도 한몫했을 텐데, 문제는 겨울에 유빙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염과 온난화 탓이리라. 유빙에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된 점박이물범은 발해만 인근을 헤맸을 텐데, 요즘은 백령도 인근에서 새끼를 낳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새끼가 해안에 죽은 채 밀려오는 모양이다.

백령도 인근에서 까나리를 즐겨 먹던 점박이물범은 가로림만을 찾는데,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가로림만은 조력발전소 예정지였다. 발전소로 터전을 잃을 뻔했는데, 어민과 환경단체 덕분에 막았으니 다행이다. 한데 까나리를 양식하는 어민은 점박이물범이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양식장 그물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라는데, 점박이물범을 앞세우며 관광객 유치에 나서는 인천시에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문화재청과 논의해 어민에게 적절하게 보상할 수 있으리라.

한때 8천 마리를 넘나들던 점박이물범은 얼마나 남았을까?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짐작하겠는데, 환경운동가는 대폭 줄어서 천 마리 안팎으로 추정한다. 왜 사라진 걸까? 물고기 남획을 의심할 수 있지만 온난화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바다로 막대하게 들어가는 폐비닐과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도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와 북한에서 나가는 쓰레기도 많지만, 중국이 엄청나다. 썩지 않은 채 매우 작게 부서지는 쓰레기는 먹이사슬을 따라 점박이물범의 번식과 생존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 보상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나? 책임을 따질 수 있나?

사람은 자신의 손해를 명징하게 조사해 원인 제공자에게 손해를 청구하는데, 점박이물범은 그런 자격이 없다. 소송에 참여하는 법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점박이물범을 사냥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기업은 손해를 청구할 수 있다. 기업은 법인격(法人格)을 갖기 때문이란다. 점박이물범은 오직 인간 탓에 삶터 잃으며 사라지는데, 인간이 만든 법은 차갑게 외면하기만 한다.

최근 제주도 해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을 주자는 사회운동이 벌어진다. 법 추이가 바뀐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점박이물범도 자격을 획득할 대상이 된다. 그뿐인가? 우리가 보전하고 싶은 동식물을 포함해 자연물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 인간의 이기적 탐욕으로 돌이키기 어렵게 훼손된 자연에서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사라져가는 ‘비인간동물’의 권리를 이제라도 법으로 보호하고 그들의 터전을 보전하자는 당연한 상식으로 다가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여전히 완강하게 외면한다. 자연물만이 아니다. 안타깝게 새만금 개발을 반대하던 2000년 ‘미래세대 환경소송’을 우리 법원은 기각했다. 미성년자의 법인격도 인정하지 않는다.

천성산의 꼬리치레도롱뇽을 대신한 승려의 고발을 기각한 법원은 설악산 산양을 대리하는 소송 역시 기각했지만, 구태의연하다. 최근 세계의 법리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흐름으로 바뀐다. 훼손되어 사라질 동식물이 그 자리에 머물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자주 등장하더니 아예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하는 국가도 있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극히 일부의 법학자의 논의에서 그친다.

장차 자연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인정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일찍이 간디는 동물이 존중되는 지역일수록 도덕성이 높다고 말했다던데, 미래세대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풍요로워질까?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을 안기겠지만 생태계 파괴는 생존 자체를 걱정하게 만들 것이다. 자연의 권리는 미래세대의 권리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당연한 법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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