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 이우재 언론협동조합 개미뉴스 이사장

벌써 1년이 지났다.

세월호 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국민 누구나 배 안의 승객들이 모두 구조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고, 또 일부 언론에서는 전원 구조되었다고 실제 보도하기도 하였다. 누구도 이것이 이렇게 큰 사건으로 비화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OECD 회원국에 국민소득 3만불에 육박하는 높은 소득 수준을 자랑하는 이 위대한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린 학생들을 구조하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나 자신도 다 구출하겠거니 하고 믿고 관심 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경이 될 줄이야. 차라리 TV로 생중계나 하지 말지, 바로 눈앞에서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는 데, 이 위대한 선진조국의 대통령이라는 여자는, 몇 년 전 국민 한 사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되었을 때 국민을 구하지 못한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자기 세 치 혀로 분명 내뱉어 놓고는, 막상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기가 통치하는 이 위대한 선진조국의 영토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7시간 동안 어디 가서 뭐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국민들에게 그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는 잔인한 광경을 생중계해 주었으니...... 대통령이 그 모양이었으니, 그 밑의 사람들을 나무래 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결국 꽃다운 어린 학생 300명은 한 번 펴보지도 못하고 저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고, 아직도 9명은 저 차디찬 물 속에서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1년 넘게 만나보지도 못한 채, 언젠가 꺼내 줄 그날만을, 엄마, 아빠 품에 안길 그날만을 기다리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헤매고 있다.

이 위대한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자신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몸을 담으면서, 비록 아직도 갈 길은 멀었지만, 그래도 우리 이 위대한 선진 조국이 이만큼 민주화된 데는 나의 노력도 눈꼽만큼은 있으리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그래 그 잘난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 고작 이런 나라였으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위대한 선진 조국 대한민국이 저 아프리카 예멘이나 나이지리아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좌나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우나 그래 기껏 고생하며 만든 나라가 그래 제 나라 학생 죽어가는 데, 구조는 안하고 구경만 시켜주는 그런 나라였단 말인가? 기성세대로서 이 나라를 고작 요따위 수준의 나라로밖에 만들지 못한 데 대해 어린 학생들에게 실로 미안하기 짝이 없었고, 그 미안함에 소주잔도 많이 기울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그 1년 동안 세월호와 관련하여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것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이제껏 배워왔고, 알아왔던 그 모든 것들이 하나씩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첫 번째는 교황이 방문하였을 때였다. 온 국민의 시선이 교황과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대통령이라는 여자는 세월호 가족들의 그 애절한 시선에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것도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채. 순간 나는 저 옛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누구의 딸인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민족조차 서슴없이 버린 사람이 박정희인데, 그 피가 어디 가겠나 싶었다. 다 쇼였지. 언제든지 만나주겠다고 하고, 눈물까지 흘린 것이 그렇지 다 쇼였지. 그렇지만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태연자약하게 저럴 수 있지? 자기가 한 말을 자기가 잊었단 말인가? 어쩌면 저렇게 안면을 몰수할 수 있지? 맹자는 수오지심(羞惡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쩌면 사람이 저럴 수 있지? 맹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인가?

두 번째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장에 일베 회원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몰려와 통닭을 처 먹는 것을 볼 때였다. 그것은 정말 처먹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식들의 억울한 죽음에 피눈물을 흘리며 굶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통닭을 돼지새끼들처럼 처먹을 수 있는지? 아이히만이 낮에 유대인들을 수백 명씩 가스실에 몰아넣어 죽이고서는 저녁에는 집에 와 우아하게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가족들과 저녁을 즐겼다고 하더니 정말 그 꼴이었다.

분명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모두 차마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지금 만일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본다면 모두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요, 마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나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도 아니다. 이로부터 살펴보건대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맹자』「공손추상」)

측은해 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 맹자는 말했는데, 그럼 저들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답은 둘 중의 하나다. 맹자가 틀렸던가, 아니면 맞았던가. 맹자가 틀렸다면 근 20년 공자, 맹자를 읽으며 살아온 나의 지난 세월이 모두 허송세월이었단 말인지? 맞다면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는 저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지금 우리 지구에는, 아니 이 위대한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는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두 종의 생물학적 종이 있는 것인지? 정말 영화 “맨 인 블랙”에서처럼 외계인이나 아니면 다른 종족이 인간의 탈을 쓰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 그러면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인간이 아닌지? 나는 인간일까? 아니면 인간의 탈을 쓴 다른 종족일까? 정말 헷갈리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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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 loj4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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