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광주여

▲ 이은탁

데모당 당수

‘불온한 상상’ 저자

88년 5월 ‘광주학살, 부정비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울지역 민주투쟁연합(서민투련)’이 발족했다. 이부영 씨가 의장을 맡았다. 하루는 한양대에서 서민투련 집회를 열고 영등포에서 가투(거리시위)를 벌였는데, 그날 난 이부영 의장의 가드(사수조)였다. 가투는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싱겁게 끝났다.

아쉬움을 달래려 우린 광주에 다녀왔다. 88년 2월 평민당사 점거농성에서 처음 만난 선배가 광주 원정단 지휘책임자였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 선배의 글을 읽으며 감동적이었던 그날의 기억을 되새긴다.

1988년 광주 그리고 세 가지 기억

광주항쟁 이후 처음으로 광주에 간 게 대학 4학년 때인 1988년이다. 당시 서민투련이라고 88년 13대 총선이 끝나고 서울지역 민주단체들의 합의체를 만든 적이 있었다. 이부영 전 의원이 의장이었다. 난 ‘서울지역대학생총연합 건설추진위원회 산하 5공 비리 및 광주학살 책임자 처단을 위한 투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다소 긴 직책을 맡고 있어 광주 망월동 가는 길에 학생책임자로 가게 되었다.

첫 번째 기억

전남대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광주공원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마 전남대 후문 쪽에서 버스를 탄 듯하다. 학생들이 우루루 버스를 탔는데 우리 말투가 서울 말씨라 버스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어디 서울에서 온 모양이네?”

“네!”

“어디들 가나?”

“광주공원에 집회가 있다고 해서 갑니다.”

그러자 이 기사분이 다른 승객들에게 통보(?)했다.

“서울에서 온 학생들이랍니다. 광주공원 집회에 간답니다. 좀 늦었답니다. 광주공원까지 그냥 갑니다!”

두 번째 기억

그렇게 광주공원까지 논스톱으로 달려 도착했다. 잘못된 정보였는지 현장에는 집회가 없었다. 그냥 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일단 확성기를 잡고 시위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 하는 식으로 잔뜩 긴장하고 거리로 뛰어들었다. 서울서 가투(거리시위)를 하면 5분을 넘기기도 어렵고 학생들만 시위하다 해산당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웬걸 거리에 있던 광주시민들이 합세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아주머니, 아저씨, 아들 손을 잡고 따라오는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서울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고 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대열이 커졌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마침 전남대를 다니다 온 친구가 옆에 있어서,

“야, 이거 어떡해야 하냐?”

“뭐 어째 시민들 말대로 도청으로 가야지.”

우리 100여명 학생들이 그야말로 달릴(연행) 각오를 하고 시작했는데 대열은 어느 새 2천여 명을 훌쩍 넘어 도청으로 향했다.

세 번째 기억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길에 광주 관광버스에 의지하게 됐다. 예산이 빠듯해서 겨우겨우 현지 업체의 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밥인들 제대로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일을 보고 버스에 승차하자 안내원이 빵과 우유를 하나씩 나눠줬다. 우린 고생한 것도 없는데 서울 학생들 고생하고 올라간다고 기사들과 안내원 누님들이 산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데, 안내원 누님이 마이크를 잡더니,

“정말이지 학생들 밥이라도 한 끼 해 줘야 하는데 이렇게밖에 못 해줘서 미안합니다. 우리 광주는 살인마들이 처단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겁니다. 이렇게 서울에서 내려와 주셔서 너무 고맙고 미안합니다.”

김준태 시인의 말만큼 광주를 잘 표현한 것도 없을 것이다. ‘광주여! 무등산이여! 민족의 십자가여!’ ‘불온한 상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