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빛이 되는 순간을 위하여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 제작에 나선 정재영 씨 박병학 콩나물신문 기자l승인2015.05.20l수정2018.02.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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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표정과 자세를 요구하자 정재영 씨는 순식간에 이렇게 변신(?)했다.

앞을 보지 못하거나 시력이 약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을 세상은 ‘시각장애인’이라 부른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은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오직 안마사로 먹고 살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시각장애인은 타인의 몸을 주무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거기에 의문을 품고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치는 ‘무모한’ 사람이 있다.

“19년 전 야학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안마사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날마다 집에 있다 보면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요.’ 그 말을 듣고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능력이 된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어요.”

‘착한밴드 이든’의 기타 연주자이자 부천의 ‘콰가컬쳐레이블’ 대표인 정재영 씨는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에서 4년 동안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타를 가르쳐 왔다. 시각장애인들이 기타 연주를? 언뜻 들으면 터무니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정재영 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처음엔 시각장애인들이니 다르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냥 비장애인들과 똑같았어요. 그분들은 눈이 잘 안 보인다는 불편함만 있을 뿐 우리와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기타 배우며 농땡이 치려는 것도 똑같고. (웃음) 비장애인들 가르칠 때와 진도도 비슷하게 나갔어요.”

▲ 정재영 씨와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하는 기타 수업 (사진 : 자바르떼)
▲ 기타 연주에 열중하는 시각장애인들 (사진 : 자바르떼)

4년 동안 시각장애인 100여 명에게 기타를 가르친 정재영 씨도 처음엔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무척 막막했다고 한다.

“비장애인들 대상으로는 15년쯤 기타 강습을 했어요. 그런데 자바르떼에서 비로소 옛날에 꿈꾸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처음엔 정말 막막했어요. 많이 와 봤자 다섯을 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려 스무 명이 넘게 신청을 했거든요.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악기를 향한 엄청난 욕구가 있었던 거예요. 기타를 가르칠 때도 전부 다 말로 설명했어요. ‘피크는 손가락을 편 뒤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잡습니다.’, ‘팔을 몸통에 얹어 힘을 빼시고 중력의 힘으로 떨어뜨리세요.’ 그런 식으로 이해를 시켜 드리는 게 참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계속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조금씩 노하우도 생기고요. 정말 보람 있었죠.”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노하우가 뭔지 궁금했다.

“일단 끈기가 있어야 해요. 그분들이 제대로 이해하실 때까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죠. 그리고 대체 어떻게 하면 그분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저 스스로부터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저도 눈 감고 기타 치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분들이 기타를 치며 뭘 제일 힘들어 하실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눈 감고서도 한두 곡 칠 수 있게 되니 그제야 시각장애인들에게도 기타를 가르치는 게 가능하겠다는 믿음이 생겼죠. 실제로 다들 수업을 잘 따라오셨고요.”

정재영 씨는 자신에게 기타를 배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2013년 ‘소리빛’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소리빛은 제가 대학 다닐 때 몸담았던 통기타 동아리 이름이기도 했어요. 묘한 인연이죠. (웃음) 멤버가 저까지 다섯이었는데요. 그분들 중 한 분은 저한테 기타를 배운 다른 시각장애인 분과 함께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하셨어요. ‘블랙 앤 화이트’라는 듀엣으로 활동하고 계시죠. 정말 뿌듯했어요.”

▲ '소리빛'의 공연 모습 (사진 : 자바르떼)

정재영 씨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타 수업에 그치지 않고, 전국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타 교재를 제작 중이다.

“그분들과 기타 수업을 하면서부터 언젠가는 교재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전국에 시각장애인이 20만 명이 넘어요. 근데 제가 아무리 뛰어다닌들 1년에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 20여 명 정도밖에 안 돼요. 그래서 작년에는 ‘시각장애인 매개자 교육’이란 것도 해 봤어요. 저한테 기타를 배운 시각장애인들이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치는 거죠.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재를 만들기로 올해 초부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교재를 읽을 수 없거나 읽기 힘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재라면 과연 어떻게 만들지, 또 배포는 어떻게 할 계획인지 궁금했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시력을 모두 잃은 분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돋보기로 보거나 아주 가까이 봐야 보이는 분들도 굉장히 많죠. 근데 기존의 교재들은 크기도 작고 깨알 같은 음표 중심으로 돼 있어서 그런 분들이 학습하기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B4 크기로 만들어 활자도 아주 크게 키우고, 연주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동영상도 만들고, 음악을 하나도 몰라도 배울 수 있도록 악보와 음표 대신 기타 코드와 설명 중심으로 갈 거예요. 점자책도 만들 거고요. 책, 오디오북, CD, DVD, 동영상 파일로도 배포할 생각이에요. 근데 시각장애인들이 실제로 점자책으로 배우는 게 불가능해요. 교재가 한 200쪽 정도 될 텐데 점자책으로 만들면 600쪽이 넘거든요. 점자책 교재가 필요하신 분들은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서 쓰시는 쪽으로 하려고 해요.”

교재는 어떻게 판매할 생각이냐는 어리석은 물음을 던졌다. 정재영 씨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판매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요. 전부 다 무료 배포예요. 전국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해서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만들려고 처음부터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교재지만 아마 비장애인들이 보셔도 되긴 할 거예요. (웃음) 처음에 나온 결과물이 완벽하리라곤 생각지 않아요.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 가면 나중엔 더 좋은 교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단순히 책으로만 펴내는 작업이 아니니 비용이 적지 않게 들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 제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으로 선정돼서 다행히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나 지원금만으로는 교재 제작이 힘들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소리빛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펀딩(모금)이다.

“지원금이 모자라기도 하고, 이런 교재가 나온다는 걸 널리 알라고 싶기도 해서 펀딩을 시작했어요. 근데 쉽지가 않네요. (웃음) 사람들도 공감은 해 주는데 막상 펀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진 않더라고요.”

▲ 현재 진행 중인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 모금.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40대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쉽지 않은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정재영 씨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을까?

“음악에 처음 흥미를 느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때 리코더로 만화 주제가들을 막 연주하고 다녔어요. 작곡을 처음 한 건 고3 때였죠. 그러다 대학 들어가서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고. 대학 축제 같은 데 나가서 상도 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은 취미였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요. 둘이 ‘듀엣 데자부’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카페를 돌며 공연을 했죠. 레퍼토리가 1,000곡쯤 됐어요. (웃음) 그렇게 4년쯤 하다가 2004년에 아내와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어요. 아내를 ‘나M’이라는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고 저는 연주자로 빠졌죠. 앨범도 몇 장 냈어요. 공중파 음악 프로인 ‘콘서트 7080’에 운 좋게 두 번쯤 나가기도 했죠. (웃음) 아내랑 계속 앨범을 제작하면서 배운 것들이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의 자양분이 됐어요.”

▲ 4인조 밴드 '착한밴드 이든' (사진 : 미러볼뮤직)

앞서 말했듯 정재영 씨는 부천의 ‘콰가컬쳐레이블’이라는 인디 레이블의 대표이자 ‘착한밴드 이든’의 기타 연주자이다. 그 길로는 또 어떻게 접어들게 됐는지 물었다.

“2013년에 부천문화재단과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을 같이 하면서 콰가컬쳐레이블을 만들었어요. 착한밴드 이든은 2011년에 자바르떼에 있던 음악팀 친구들과 ‘행복하면서도 따뜻한 음악을 한 번 해보자’고 뜻을 모아 결성했어요. 여기저기 공연도 다니다 보니 광주에서 하는 사직창작포크콘테스트에서 상도 받았죠. (웃음) 그리고 작년 초부터 준비한 음반이 얼마 전에 발매되기도 했어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타 선생님, 인디 레이블 대표, 착한밴드 이든의 기타 연주자, 게다가 이제는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 제작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지만 정재영 씨의 이런 다양한 활동들이 왠지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저는 원래 꿈이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다 놀라죠. (웃음) 언뜻 보면 제가 지금 하는 일들과 애니 감독은 완전히 다른 일 같은데, 알고 보면 다 하나로 모아져요. 제가 음악 프로듀서 공부를 하는데 그게 알고 보면 애니 감독이 하는 일이랑 비슷해요. 시각장애인들과 기타 수업한 것도, 교재 만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애니를 만들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제가 뭘 하든 결국 다 제 삶인 거예요. 그런 것들이 동떨어져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제 삶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하니 뭐든 즐겁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꿈이 꼭 하나일 필요가 있나요? 시각장애인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싶다는 것도 제 오랜 꿈이었으니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정재영 씨는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꿈은 자기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빛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기타 연주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선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에게 다른 의미의 ‘빛’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소리빛’이라는 이름이야말로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 제작을 위한 모금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소리도 얼마든지 빛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안마사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세상의 시선이 그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정재영 씨와 시각장애인들은 음악으로, 소리로, 열정으로 보여 주고 있다.

▲ 정재영 씨와 함께 기타를 배우는 시각장애인들 (사진 : 자바르떼)

※ 모금은 5월 28일까지 진행된다. 목표 금액이 100% 모아지지 않으면 모금은 실패로 끝나고 그간 모인 금액마저 전부 환불된다. 세계 최초 사례로 기록될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 제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으면 한다.  모금에 동참하기 : http://www.wadiz.kr/Campaign/Details/985

※이 기사는 개미뉴스와 업무협약을 맺은 <콩나물신문>(http://www.kongnews.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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