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영 이학박사(분자생물학), 부산 좋은문화병원 근무(전)

감기,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메르스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감기에 대해 짚어보겠다.

일반적 감기(common cold)와 독감(flu)의 차이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감은 흔히 플루라 불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에 의한 감염이고, 일반적 감기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다른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유발된다.

일반적 감기는 호흡기관의 위쪽(상기도, upper respiratory tract)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다. 이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바이러스는 리노바이러스 (rhinovirus, 30–80%)이며 그 외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약 15%),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 10–15%),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es, 5%),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parainfluenza viruses), 호흡기합포체바이러스(RSV: respiratory syncytial virus), 엔테로바이러스(enterovirus), 메타뉴모바이러스(metapneumovirus) 등이 있다.

이처럼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균에만 작용하는 항생제는 감기 발병 초기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럼에도 감기에 항생제 처방이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항생제 남용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독감과 달리 일반적 감기는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이 없다. 따라서 가장 좋은 처방은 휴식이다. 

감기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메르스를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위에서 언급한 코로나바이러스이고, 따라서 초기 증상이 감기와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 동물 내에서 다양한 질환을 유발한다. 이에는 복막염, 간염, 장염, 신장염, 뇌염 등이 있다. 몇 해 전, 세간을 시끌벅적하게 했던 ‘사스’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주범이었고, 따라서 표기는 ‘SARS-CoV’라고 한다. 사실, 바이러스는 숙주(사람, 동물, 식물 등)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런 생명활동이 없어 먼지와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배웠듯 종-속-과-문-강-문-계의 방식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핵산(DNA 또는 RNA)의 종류와 복제 방식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즉, 디엔에이바이러스(DNA virus), 알엔에이바이러스(RNA virus)로 구분하는 방식이 그렇다. 대개 인간에게 심각한 질환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알엔에이바이러스가 많다. 에이즈, 메르스, 사스, 조류독감, 신종플루 등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특징은 디엔에이바이러스에 비해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월등히 크다는 점이다. 메르스와 사스는 같은 코로나바이러스과(coronaviridae)에 속한다. 코로나란 이름은 바이러스의 외곽 모양이 마치 태양의 코로나를 연상시켜 유래한 것이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그럼, 이제 메르스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① 발병 및 치사율

메르스의 정식명칭은 중동호흡기증후군(영어명칭은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이며 MERS-CoV라고 표기)이고, 바이러스의 일종인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메르스나 사스는 일반적 감기와 달리 호흡기관의 아래쪽(하기도, lower respiratory tract)의 감염에 의해 발병한다. 

최초 발병은 2012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인 제다(Jeddah)에서 60대 남성 환자에게서 확인되었다. 이후 1차 감염(primary infection) 환자는 사우디 외에 카타르, 요르단, 오만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확인되었고, 영국과 튀니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이집트, 미국에서 환자가 확인되었다.

2012년 6월부터 2014년 7월까지 834명이 발병해서 28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돼 치사율은 34.5%을 보이고 있다. 이는 8,098명이 발병해 774명의 사망을 기록한 사스의 치사율(10%)에 비해 약 3.5배나 높다. 메르스의 치사율은 사람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12세 이하 아동, 65세 이상 고령자, 만성질환자(심장질환, 신장질환, 호흡기질환, 당뇨 등),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 암환자 및 임부의 경우는 50% 이상의 높은 치사율을 보여 고위험군에 속한다. 고위험군을 제외한 환자의 치사율은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② 감염경로, 잠복기, 전파 및 제어수단

메르스의 1차 감염은 낙타와 직접 접촉하거나 낙타의 우유를 제대로 살균하지 않은 채 섭취해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자연 상태에서 낙타는 박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감염경로는 현재 박쥐→낙타→사람 순일 것으로 짐작한다. 사스의 경우도 최초 박쥐로부터 사향고양이나 너구리 등 다른 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들어가더라도, 즉 감염되더라도 일정기간 동안은 전혀 증상이 없는데, 이 기간을 잠복기라 한다. 메르스의 평균 잠복기는 5일 정도로 알려져 있고 최대 잠복기는 15일 정도다(잠복기간 1.9~14.7일). 이 기간에는 메르스가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우려는 없다. 메르스가 활동을 시작하면 초기 증상은 감기와 유사하지만(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를 유발하는 대표적 바이러스다) 빠르게 폐렴으로 진행되고 신부전,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을 통해 사망에까지 이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메르스가 전파되는 방식은 감기와 비슷하게 눈물, 콧물 및 환자의 기침을 통해 나오는 점성의 부유물(비말감염, droplet infection)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파 효율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즉, 현재까지 환자의 가족이나 병원의 의료진과 같이 가까이서 지속적으로 접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감염이 보고된 사례가 없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는 메르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 ▲낙타와 접촉을 피할 것, ▲손의 위생관리에 신경 쓸 것, ▲낙타에서 유래한 날것의 우유나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음식을 섭취하지 말 것, ▲환자의 가족이나 의료진의 경우는 추가적으로 마스크, 장갑, 눈 보호 안경을 착용할 것, ▲환자는 격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메르스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적절한 대응을 통해 제어할 수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은 미흡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은 지금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치 메르스가 공기 중을 떠다니며 전파될 수 있는 것처럼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될 듯하다. 

또한 사스 이후, 약 10년 만에 새로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인 메르스가 출현한 것처럼, 새로운 변종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변이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미래엔 사스나 메르스보다 더 지독한 놈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지연시키거나 방지하는 몫 또한 인간이다. 

20세기 초, 항생제의 발견으로 인간은 세균에 의한 감염질환을 정복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항생제의 남용으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세균(슈퍼박테리아)이 나타났다. 이처럼 신종 혹은 변종의 바이러스 또한,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훼손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연의 심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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