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과 한국의 전국여성노동자대회 유래

1857년 미국 뉴욕 여성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권리 쟁취를 위한 시위 벌여 이근선l승인2018.03.07l수정2018.03.0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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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3월 8일은 110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다.

민주노총은 3월 8일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오후 3시에는 3시 스탑(STOP) 조기퇴근 시위 및 행진을 할 예정이다.

한편, 인천에서는 ‘3.8 여성의 날’ 행사로 오늘(7일) 오전 11시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에서 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인천지부·민주노총인천본부 공동주관으로 ‘여성노동자 저임금·성별임금격차 해소, 일터의 성폭력·성희롱 out 3.8 세계 여성의 날 맞이 인천여성노동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인천지역 여성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이인화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을 비롯해, 김응호 정의당 인천시장 예비후보, 임병구 인천교육감 촛불교육감 후보(경선 중), 전종순 노동당 인천시당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 오늘(7일) 오전 11시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에서 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인천지부·민주노총인천본부 공동주관으로 ‘여성노동자 저임금·성별임금격차 해소, 일터의 성폭력·성희롱 out 3.8 세계 여성의 날 맞이 인천여성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임병구 인천교육감 촛불교육감 후보(경선 중) 페이스북 갈무리

 

▲ 오늘(7일) 오전 11시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에서 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인천지부·민주노총인천본부 공동주관으로 ‘여성노동자 저임금·성별임금격차 해소, 일터의 성폭력·성희롱 out 3.8 세계 여성의 날 맞이 인천여성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임병구 인천교육감 촛불교육감 후보(경선 중) 페이스북 갈무리
▲ 오늘(7일) 오전 11시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에서 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인천지부·민주노총인천본부 공동주관으로 ‘여성노동자 저임금·성별임금격차 해소, 일터의 성폭력·성희롱 out 3.8 세계 여성의 날 맞이 인천여성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임병구 인천교육감 촛불교육감 후보(경선 중) 페이스북 갈무리
▲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철폐, 성별임금격차 해소, 일터의 성폭력과 성희롱 등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노동당 인천시당
▲ 오늘(7일) 오전 11시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사거리에서 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조인천지부·민주노총인천본부 공동주관으로 ‘여성노동자 저임금·성별임금격차 해소, 일터의 성폭력·성희롱 out 3.8 세계 여성의 날 맞이 인천여성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노동당 인천시당

내일(3월 8일) 오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주안공단(주안 국가산업단역), 부평공단(갈산역 우림라이온스벨리 주변), 남동공단(동춘역 2번 출구), 인천공항 등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장미꽃과 홍보물을 배포할 예정이다.

이런 3.8 여성의 날 행사는 인천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110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3.8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 등을 알아본다.

 

3.8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남성들의 노동에 비해, 저평가 되어 왔다. 남성노동자는 생계부양자라는 인식이 만연하여, 임금체계는 남성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부불노동으로, 여성과 아동의 임금 노동은 저임금을 유지하는 부차적인 노동으로 여겨왔다. 여성들의 노동은 자본주의 시작부터 부불 가사노동과 지극히 제한된 저숙련 산업의 저임금 노동, 다시 말해 이중노동과 저임금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마침내,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857년 여성노동자들은 미국 뉴욕에서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벗어나고,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당시의 투쟁과 요구는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이후, 여성들의 사회권과 정치권,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Bread for all, and Roses, too!"

우리에게 빵(생종권)과 장미(권리)를 달라!

그로부터 50년.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또 다시 1908년 3월 8일 대규모 시위대가 세계 최대의 도시 미국 뉴욕 도심을 가로 지른다.

1만 5천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도시 한복판에 서서 외친 것은 "하루 10시간 노동 준수, 임금인상, 여성참정권 쟁취"였다.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외쳤다.

“여성도 인간이다, 살인적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는 살 수가 없다, 여성도 시민이다, 정치적인 권리가 박탈당한 채 살 수는 없다”고 외치며, 용감하게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동시적으로 발생한 경제공황 속에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빵 대신 먼지를 마시며 쉬지 않고 일을 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그러나 그녀들은 정작 인간이자,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대륙에서도 빈번한 것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오르자 주부들의 봉기가 점점 빈번해졌고,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졌다.

여성노동자들은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거나, 사악한 상인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계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14시간씩 일을 했고, 남성노동자들보다 임금을 차별받았고, 선거권과 노도조합 결성 등의 자유도 보장되지 못하는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의 참정권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나아가,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의견은,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인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에 의해 제출된 것인데, 이는 즉흥적으로 제안된 것이 결코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분출하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내어, 더욱 힘찬 운동으로 만들어나가고자 한 유럽의 사회주의여성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준비된 것이었다.

즉, 세계여성의 날은 20세기 산업국가에서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분노하여, 거리에 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이러한 저항을 기억하고,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도모하고자 했던 여성운동진영의 의식적인 노력을 배경으로 했던 것이다.

이후, 3월 8일 투쟁을 계승하며 세계 곳곳에서 분출하던 여성들의 투쟁을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내는 운동으로 만들어나가고, 3.8 세계여성의 날은 제안되고 준비 되었다.

클라라체트킨은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사회주의자회의에서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하자고 제안하였고, 100명의 사회주의자들이 만장일치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하였다.

다음해인 1911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날’이 준비되었고, 이 날의 계획은 입에서 입으로 대회가 알려지고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작은 도시 곳곳에서 회의가 열렸고, 마을의 강당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거리 곳곳에서 시위가 열렸고, 대규모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들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다양한 기사가 정부와 사회에서의 여성의 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모든 기사들이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여 의회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적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던 여성들도 여성의 날을 위한 회의와 시위, 포스터와 팜플렛, 신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여성의 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바다를 이루었다.

남성들은 변화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렀고, 그들의 아내들, 포로였던 주부들은 거리로 나섰다.

여성노동자들은 “이 날은 우리의 날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축제일이다”라고 외치면서 서둘러 회의와 시위가 열리는 곳을 향했다.

작은 도시 곳곳에서 회의가 열렸고, 마을의 강당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노동자들(남성)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거리 곳곳에서 시위가 열렸고, 대규모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들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빵과 장미의 파업

1912년 미국의 메사추세츠 로렌스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저항하며 파업을 벌였다. 가난한 이민자가 많았던 그 곳에서 외친 것은 ‘빵과 장미’ 였다.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한 행진. 빵과 장미의 투쟁은 수개월간 진행되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투쟁하느라 돌볼 수 없었던 아이들은 배고픔과 질병에 노출되었다.

이에, 파업 중인 노동자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위탁 가정운동이 전개되어 돌봄으로 파업을 옹호하는 연대를 하기도 하였다. 빵과 장미의 투쟁 또한 경찰과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여성노동자들의 존엄을 위한 투쟁을 계승하기 위한 투쟁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으며,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꼭 기억하는 날이 되었다. 이 날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주의당과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즉,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싸움에 있어서 여성의 날은 필수적인 날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UN은 뒤늦게 1975년,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 110주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 민주노총 포스터

전국여성노동자대회

한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3.8 여성의 날 대회를 치렀으나, 일제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85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의 날 투쟁이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여성단체들은 계급문제나 민주화에 가려져있던 여성들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여대생 성추행 대응 활동, 톰보이 부당해고 반대 불매운동, 결혼퇴직제 반대운동, 25세 여성조기정년제 반대운동, 금융권의 여행원제 폐지운동 등의 활동을 펼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공동 활동을 진행했다.

제조업과 사무직 여성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상황에서, 1985년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는 ‘민족·민주·민중과 함께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각계 기층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투쟁을 결집했던 대회였다.

또한, 이때의 세계여성의 날 대회는 진보적인 여성단체들과 여성노동자 투쟁이 결합되어 여성문제를 폭로하고 투쟁 결의를 다지는 계기였다.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그해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알리고, 한 해 동안의 실천과제를 결의하는 여성노동자대회가 시작된 것은 1988년부터이다.

1988년 서울지역노동자협의회 여성국과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여성노동자 큰잔치’를 시작으로 민주노총이 건설되기 이전인 94년까지 매년 평등 노동권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이상 103주년 여성노동자대회 교안 중)

1997년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진 이듬해, 1998년 3월 8일에는 양대 노총과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였으며, 이후 민주노총 전국여성노동자대회는 당해 년도 여성노동자의 투쟁요구를 천명하는 투쟁의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성노동자들에게 3월 8일은 기념일이 아닌, 투쟁의 날이다.

* 자료 제공 ;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2017. 3. 8 세계 여성의 날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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