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에 대한 사과의 법칙

썩은 사과를 하는 것은, 안하는 것만 못하다 김흥순l승인2020.07.20l수정2020.07.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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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궁금했다. 피해자나 희생자들은 왜 항상 보복이 아닌 ‘사과’를 요구할까?

힘없는 ‘사과’가 뭐가 대수일까?

사과를 해도 비판이 잇따른다.

‘오빤 그게 문제야. 뭘 잘못한지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하면 그게 사과야?’라는 노랫말처럼 ‘제대로 사과하기’란 더 어렵다.

사과를 하면 사람들은 그 말의 ‘진정성’을 따지지만, 그걸 확인할 방법은 마땅찮다.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도 천 갈래의 마음일 테니 뭐가 진짜인지 모른다. 게다가 이 무도하고 염치없는 세상에서 계산 없는 사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일이다.

차라리 사과의 적절성을 따지자. 그걸 알려면 사과의 성립 조건을 따지는 게 좋다. 약속과 다짐은 미래와 관련되지만, 사과는 ‘과거’와 관련된다. 사과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문제 삼을 때 성립한다.

과거를 집중 사과한 모범 사례 중 하나인, 호주 이야기를 보자.

오스트레일리아 전직 총리 케빈 러드는 원주민 아동 강제분리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하면서 ‘반성한다’를 5회, ‘미안하다’를 9회, ‘사과한다’를 18회나 했다.

그가 세 번 연속 ‘아이 앰 소리’(미안합니다)를 외치자, 그 나라 전체가 울었다. 사과가 성립하려면 자신의 행위가 듣는 이에게 좋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듣는 이에게 미안함이나 책임감을 표현해야 한다.

피해자의 체면을 세워주고,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려야 한다.

아이 때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빌면 화를 면할 수 있지만, 어른은 두 말 사이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기입해야 사과가 된다. 그럴 때라야 힘없는 사과가 새로운 관계맺기의 출발점이 된다.

지금 피해자를 가지고 피해호소인, 피해고소인 등 이상한 말을 만들어 사과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람과 집단이 많아지고 있다.

인간이나 조직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과를 잘못해 더 많은 분노와 파멸을 가져온다. 한국과 일본의 문제도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사과에 그 원인이 있다.

소비자들의 불만이나 의혹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에서, 종사자 및 사업 주체들의 위기관리는 필수 요소다. 그중 사과문은 이미 벌어진 위기에 대한 가장 직접인 형태의 대응이다.

잘 쓴 사과문이 잘못을 축소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잘못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실망감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사과의 주체가 적어도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 중이라는 신뢰를 줄 수는 있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만 봐도 사과를 잘못한 인기인들의 더 많은 분노의 사과문은 사과를 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꼼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해볼 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경험이 올 2월 14일에도 있었다.

초유의 ‘칼럼 고발’을 취하했으나, 사태 수습 과정에서 칼럼 필자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으며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고발을 취하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보인 오만한 태도에 후폭풍은 잦아들지 않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사과 없이 침묵했다. 이에 민주당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씌웠던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 문구는 해시태그(#·검색용 꼬리표)를 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광범위하게 확산됐었다.

이날로 21대 총선을 61일 앞두고 자초한 악재에 여권은 위기감에 휩싸였고, 가뜩이나 이탈 조짐을 보이는 중도층 민심이 더 차갑게 식을 것이라는 우려가 번졌었다.

민주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칼럼 필자인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을 상대로 한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이 “우리 당을 떨어뜨리려는 선거 운동으로 보인다”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냈었다. ‘촛불정권을 자임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열망을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 만큼, 총선에서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칼럼 취지였다.

칼럼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당이 고발까지 하는 것은 과했다. 확대간부회의 등에서 공개 사과한 지도부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임 교수의 정치 경력을 꼬투리 잡아 칼럼에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의 정당성’을 강변한 것이다. 임 교수가 참여한 ‘정책 네트워크 내일’은 원로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단체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도한 장하성 주중대사(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한 때 참여했었다.

민주당 논리를 적용하면, 장 대사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문자 메시지에 ‘안철수’를 적시한 것이 논란을 부르자, 민주당은 10여분 뒤 ‘특정 정치인’으로 수정해 다시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도 임 교수 흠집 내기에 가세했다. 임 교수가 1998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원에 출마한 이력 등이 SNS에서 무차별 유포됐다. ‘민주’를 표방한 여당이 언론ㆍ표현의 자유를 탄압했다는 본질을 가리기 위한 물 타기 공세였다.

민주당의 거친 대응에 SNS에는 종일 ‘민주당만 빼고’, ‘나도 고발하라’ 등의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신호였지만, 당 지도부는 내내 침묵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민심에 무딘 지도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사과의 기본은 즉시 사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본인의 잘못을 제대로 인지하고 명시하는 사과다.

구체적이지 않은 사과는, 시간이 흐른 이후 얼마든지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얍삽한 사과다.

실패한 사과문은 공통적으로 잘못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보단 최대한 추상화한다. 이러한 추상화를 위해 육하원칙의 특정 요소를 슬쩍 지우는 문법적 꼼수가 등장한다.

사과가 소통적 행위라면, 추상화된 사과는 의도적으로 소통을 왜곡시키는 행위다.

이러한 왜곡 안에서 침통한 어조의 사과문은 있어도 잘못한 일과 잘못한 사람은 사라지는 마술이 벌어진다. 사실 빤하고 조잡한 마술이다. 여전히 이런 트릭이 통할 거라 믿지 않길 바란다.

사이후이(死而後已)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진정한 반성과 뼈를 깍는 반성이 돼야한다. 일본인들의 천황처럼, 식민지 사과를 하랬더니 '통석의 염'이니 ‘뭐니’ 하며 납득이 안가는 사과를 하고, 또 죄를 짓는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사이후이(死而後已)의 유래를 보자.

제갈공명은 마음이 급했다. 이미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자신을 속세로 끌어낸 유비와 관우, 장비는 유명을 달리했다.

유비에 이어 왕권을 물려받은 유선은 유약해 촉나라의 앞날이 풍전등화와 같았다. 또 신묘한 점괘로 길흉화복을 짚어보니 자신의 남은 생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공명이 할 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유비와 함께 꿈꿨던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는 것 뿐 이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삼국 가운데 위세를 떨치고 있는 위나라를 꺾는 게 급선무였다.

앞서 유비는 숨을 거두며 공명에게 유언을 남겼다. 아들인 유선이 무능하면 대신 왕위에 올라서라도 대업을 이루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천하통일은 유비와 공명을 하나로 묶는 창업정신이었고, 죽음을 넘어서는 시대적 소명이었다.

공명은 마지막이 될 위나라 정벌에 나서며 유선에게 출사의 뜻을 밝힌다. 이것이 유명한 ‘후(後) 출사표(出師表)’이다.

공명은 “한나라의 위업은 익주(촉)같은 변경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위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고 왕업을 중원에 확립해야 합니다. 신은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죽고 나서야 그만둔다(死而後已)는 각오로 출정합니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여기서 유래된 사이후이는 원래 ‘국궁진췌(麴窮盡膵), 사이후이(死而後已)’로 댓구를 달아야 뜻이 통한다. 온 몸이 부서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정성을 다한다는 말이다.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피력이다.

말 뜻 그대로 사이후이(死而後已)를 기대하는 이유다.

썩은 사과를 하는 것은, 안하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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