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에서 죽어간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의 한 맺힌 죽음

▲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한파경보가 발효됐던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서 30대 캄보디아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 활동을 하는 단체들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숨진 여성과 함께 지냈던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주말을 앞둔 지난 18일, 숙소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는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낸 숙소는 비닐하우스다. 비닐하우스 안에 칸막이를 이용해, 방 3개를 만들어 놓은 숙소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는 "난방 공급이 안 된 상태에서 동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숙소로 쓰는 비닐하우스 주거 형태는, 농촌 지역에서 아주 흔한데 불법시설물이기 때문에 즉각 철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주노동자들과 대화해 보면, 한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얼마나 무신경해질 수 있는지를 안다. 2003년 강제추방에 대한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리랑카인 다라카 씨의 장례식을 진행할 때, 지나가며 냉담하게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 이어진 자살들에 대해 이주인권단체들이 제도 개선 동참을 호소하자, 많은 이들로부터 '살다 살다 외국 놈들 데모까지 본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 인간의 고통을 멀리 서서 방관하는 사람들은 '내 코가 석 자'라는 말로, 남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려 든다.

성탄을 앞두고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자던 한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설마'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인들도 돈 벌러 외국에 나갔다.

문제의 본질이 열악한 주거 환경이다.

이런 열악한 곳을 기숙사라고 20만 원~30만 원씩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의 50개 정도 되는 이주노동자 권익보호 단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속헹 씨 사망 사건에 대해 대처하기로 했다.

한국은 위기 때 법적 조건에서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책임이 제일 크다.

고용노동부가 정한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안내지침'에 따르면,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 다세대 주택 또는 이에 준하는 시설은 숙소만 제공하는 경우, 월 통상임금의 15%를 공제할 수 있고,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비닐하우스 등)의 경우 월 통상임금의 8%까지 공제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 지침은, 농업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주거시설을 제공하면서 과도한 비용을 공제하는 사례가 이주인권 단체들에 의해 누차 지적되자, 이주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해 근로계약서에 명시하도록 고용노동부가 2017년에 정한 법적 내용이다.

단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는 구호를 내걸고, 지침 전면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주노동자 열악한 주거환경을 외면하고 고용주 이익만 대변하며 농지법과 근로기준법 등을 위반하는 근로계약 중개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고용노동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선진국 흉내는 다 내고 돈 많은 선진국인척 하지만, 이런 분야는 나 몰라라 한다. 노동이나 인권 선진국을 따라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상식과 법적 조건을 구분하지 못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런데 위기 때 이 조건이 유불리를 만든다.

예를 들면, 결혼을 하면 둘이 살면 결혼이겠지, 또는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면 결혼이겠지 한다. 법적 결혼은 혼인신고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일을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종속적 관계를 근로계약서를 통해 맺고, 일정한 장소로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맡겨진 업무를 처리하는 해야 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산다고 모두 집이 아니다. 집이 되기 위해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적정한 휴식·취침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적으로 보장이 돼야 한다.

비닐하우스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비닐하우스는 원예를 위해, 플라스틱 비닐이나 필름 등으로 감싼 온실을 말한다. 겨울철에 딸기·토마토·오이 등과 같은 채소, 장미·백합과 같은 화훼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은 비닐하우스 덕분이다.

여기에서 ‘하우스’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재배시설이라는 뜻이다. 하우스토마토, 하우스딸기가 말해주듯 비닐하우스는 ‘토마토 집’ ‘딸기 집’일 뿐이다.

서울 인근 그린벨트나 농촌 이주 노동자들 숙소는 비닐하우스에 마련되기도 한다. 대개 물류창고나 작업장으로 쓰이지만, 종종 집 없는 도시 빈민의 주거시설로도 활용되는 것이다.

건축허가가 필요 없고, 철골 구조물만으로 쉽게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비닐하우스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로 이용되곤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주 지원단체는 비닐하우스 거주 이주노동자를 수천 명으로 추산한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숙소로 제공되는 비닐하우스는 냉난방 시설은 물론, 부엌이나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침실이나 욕실에 잠금장치가 없어 성범죄 등 인권침해에도 취약하다.

한국은 선진국 흉내는 다 내고 돈 많은 선진국인척 하지만, 이런 분야는 나 몰라라 한다. 노동이나 인권 선진국을 따라하지 않는다.

미국과 캐나다가 취침·생활 공간 분리, 충분한 냉·온수 공급, 화장실·욕실의 잠금장치 설치 등 이주노동자 숙소 기준을 엄격히 제시하고 있는 것과 거리가 멀다.

'하우스'가 집이라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영어다. 그렇다고 해서 비닐하우스가 사람이 사는 집일 수 없다. 비닐하우스는 식물을 위한 공간이지,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은 결코 아니다.

이주노동자 주거 문제는, 지난 8월 수해 이주민의 80%가 비닐하우스와 그 안에 설치된 컨테이너 숙소를 이용하는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극명하게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3천 개 사업장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하여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장의 기숙사 시설 등에 대해 관리하고 있다'며 지난해 7월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라,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의 임시가옥이 기숙사로 허용되는 결과였다. 비닐하우스 안에 패널로 임시건물을 만들면 기숙사로 인정받는 것이다.

올해 1~6월 사업장 변경 사례 2만 1681건 중 기숙사 문제로 사업장 변경을 한 이주노동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은, 개정된 기숙사 조항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란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불법건축물, 불법 용도변경 등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농지 가운데 설치한 농막을 빙자한 임시가옥이 기숙사로 사용되는 것을 알고도 묵인해 왔다.

그 결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입국하고 4년 넘게 성실하게 일해 왔던 한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는 내년 1월이면 근로계약 만기로 귀국했다가 재입국하기로 돼 있었다.

죽음을 애도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한다. 종교도 정치행위만 하지 말고, 이런 악질적 제도 개선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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