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수처의 모델, 거의 50년 빠른 홍콩 반부패기구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자신 보호하고 자기 진영 보호하려고 만든 공수처라면, 지금이라도 없애라 김흥순l승인2021.01.29l수정2021.02.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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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부패척결이 국가경쟁력이다.

자신 보호하고 자기 진영 보호하려고 만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면, 지금이라도 없애라. 하려면 홍콩 염정공서처럼 철저하고 야무지게 하라.

한국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한국 같은 부패국가에서 태어난 것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홍콩이었으면 그 정도 자리에 갈수도 없을 것이고, 벌써 탄핵됐거나 사회적 생명을 다했을 것이다.

홍콩이 발전한 배경에는 염정공서가 있다.

1950~60년대 홍콩의 부패상!

1950~60년대, 영국 식민지 홍콩은 겉보기에는 일본과 함께 경제성장을 이루어 발전한 부유한 도시였으나, 내부로는 총독부 관료부터 하급관리와 민간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썩은 최악의 부패도시였다.

같은 홍콩이지만, 빅토리아 섬을 건너면, 바다 건너 구룡반도와 신계 등지는,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때 피난 온 중국 대륙의 광동 성 주민들과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인 피난민들이, 배 위에서 살면서 그 질긴 삶을 어렵게들 이어나가고 있었고, 홍콩 섬의 '사치, 향락, 번영'은 완전히 남의 나라 일이었다.

이렇게 사회 자체가 아주 불합리했으니, 부패는 당연했다.

​홍콩인들은 '차 값을 낸다' 는 말을, 뇌물의 은어로 사용한다.(한국에서의 떡값과 비슷한 말 이다) 당시 '홍콩의 경찰서장'은, 소위 차 값(뇌물)만으로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다.

​이렇게 당시 홍콩 경찰은 마작을 하는 도박장의 일명 '삥'을 뜯어 돈을 벌었다. 다른 홍콩 관공서도 비슷해서, 소방서에선 무전무수(無錢無水. 돈이 없으면 물도 없다)라며 뒷돈을 안 주면 소방호스를 안 열어 줄 정도였고, 구조작업 등을 했을 때는 당연히 수고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방서의 구급대도, 소위 기름 값을 챙겼다.

​민간병원도 마찬가지여서, 뒷돈을 찔러줘야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해 주고, 입원실이나 수술 등을 할 수 있었다. 민간 기업도 채용 시, 당연히 면접관에게 찻값(뇌물)을 건네야 합격이 되었고, 차 값을 내지 않으면 합격해도 발령을 내지 않았었다.(이거 한국의 세도정치 시가와 똑같다)

​학교 선생들도, 중국계는 당연하고, 영국인 선생님도 당연스럽게 아니 반드시 촌지를 챙겼다.

사법부는 더 심각해서, 재판 역시 뇌물만 있으면, 무죄가 될 만큼 부패해 있었다. 홍콩의 판사들은 영국인, 중국인 할 거 없이 모두 다 썩었었다.​

홍콩의 빅토리아 섬에는, 롤스로이스를 택시로 사용하였고, '란콰이퐁이나 완차이‘ 등의 고급 클럽에는 여전히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 라는 현판을 내 걸고, 식민지의 특권층인 영국인들과 일부 친영 홍콩인들만이 '문란한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홍콩 재벌들은 공산당을 피해서, 본토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을 하인 아니 노예 부리 듯, 큰소리를 치며 사치를 일삼고 있었다.

그렇게 부패가 쌓일대로 쌓였을 때, 1973년 영국출신의 홍콩 경찰 간부였던 '피터 고드버'(葛柏)라는 작자가, 무려 430만 홍콩 달러(현 가치 80억 정도)를 수뢰 및 횡령한 후, 홍콩 당국의 출국금지를 무시하고, 영국으로 도망간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분노한 홍콩 시민들은 일제히 시위를 벌이며, 영국과 홍콩 총독부에 '고드버'를 당장 홍콩으로 재송환 하라고 들고 일어난다.

사실 '고드버' 한명 잡자고 시작한 시위가, 커지고 커지면서 급기야 홍콩시민들의 그간의 총독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다.​

그간 불합리하던 홍콩사회의 부패와, 억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까지 커져 버리는 데, 이 운동을 시작으로 현 '홍콩시민'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 저항운동은, 훗날 홍콩을 아시아 최고(The best of Asia)라는 소리를 듣는 곳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자 현재, '반 중국 민주 홍콩 시위'를 가져온 시발점이 된다.(한국의 4.19 혁명 쯤 되는 사건)

결국, 홍콩인의 엄청난 저항에 굴복한, 영국은 홍콩 총독 산하에 '독자적인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를 세운다. 이후 염정공서의 서슬 시퍼런 부패단속과 지속적인 대국민 홍보로 인해, 1980년이 되면 홍콩의 부패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홍콩은 '부패제거와 높은 경제자유도'를 토대로, 영국병을 앓으며 몰락하는 영국보다도 더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국제도시가 된다.

최악의 부패 도시국가 홍콩의 부패는 매우 심각했다.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힌 부패의 심각성을 참지 못한 홍콩시민들의 시위로 여론은 더욱 악화되면서 결국, 영국은 강력한 부패조사기관을 설립하게 된다.

1973년~1974년을 사이에 두고 홍콩의 '부패방지 3륜법과 염정공서' 등 반부패와 관련된 밥과 제도들이 생겨났고, 영국 식민지라는 이점으로 경제적인 번영은 누렸으나, 내부는 후진적이고 부패로 얼룩졌던 당시 홍콩을 진정한 선진도시로 바꾸었다.​

이 당시에 '반부패 운동과 함께 홍콩을 청결하게 하는 클린 홍콩 운동' 까지 벌어졌으며, 경찰의 경우 부패한 경찰은 해고되고, 젊은 건강한 경찰관이 새로 채용되었다.​

반부패 정책에 있어서는 외국 전문가를 초빙하는 등의 노력도 벌였고, 그 노력은 1980년이 되자 결실을 맺었다. 비로서 우리가 아는 그런 홍콩이 된 것이다.

1974년 2월 15일 염정공서법, 뇌물방지법, 선거부정 및 불법행위방지법 등 이른바 부패방지 삼륜법의 뒷받침으로 염정공서(廉政公署:ICAC,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가 탄생했다.

물론 염정공서 도입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부패 경찰 해고에 대해, 홍콩경찰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실제 1977년 10월 28일에는 경찰관들이 '염정공서 건물'에 난입해, 유리창을 부수고 직원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속칭 경렴충돌(警廉衝突)이라 한다.

이후 경찰과 염정공서와의 충돌은 2002년, 2010년에도 있었다. 홍콩의 '부정부패 쇄신 프로젝트'는 염정공서 출범 10년 만에 최악의 부패도시에서 최고의 청렴도시로 환골탈태 한다. ​

염정공서는, 이외에도 부패방지 확산을 위한 포스터와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으며, TVB와 합작해서 드라마도 제작하는 일도 하고 있다. ​

그 드라마가 1994년부터 2016년까지 2년마다 7개의 시리즈로 제작한 염정행동 시리즈가 있다.

염정공서(廉政公署)

(1) 홍콩시민들의 절대적 신임과 지지

(2) 부패척결위한 막강한 권한

(3) 부패혐의자 영장 없이 체포하여 48시간동안 구금

(4) 부패혐의자 계좌 추적권

(5) 수사기간 중 용의자의 출국 금지

(6) 수사와 관련된 정보요구권

(7) 염정공서가 요청한 정보 제공하지 않은 공무원 구속권한

 

공무원이 자신의 재산형성 과정을 입증하지 못하면, 증식된 재산은 뇌물로 간주하여 재산을 몰수하고 처벌한다.

내부고발자 혹은 부패행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 요청하거나,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경우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염정공서는 1,300여명의 직원이, 6억9천9백만 홍콩달러(한화 1,131억, 2001년 말 기준)의 예산을 사용하며, 염정공서 직원 1인당 5,000여명의 홍콩시민에 대한 부패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염정공서의 활약으로, 홍콩은 200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는 10점 만점에 8.3으로 조사대상 159개국 중에서 15위를 기록했고, 뇌물과 부패로 원성이 심각했던 홍콩이,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부패 없는 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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