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의 정신승리법’에 빠진 한국 기득권

▲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아큐정전은, 100여년 전 청말(淸末)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중국 민중의 혁명 허구성을 비판한 루쉰의 중편소설이다.

아큐는 농촌 날품팔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와중에서, 자존심만 강했던 중국 민족의 약점과 병폐를 고발했다.

민족적 계몽을 촉구하는 주제가 강하게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지금 한국 기득권은 자신들만 잘 낫고 자신들은 청정무구하다고 외친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누가 말하면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욕한다.

너희들은 똥도 안 싸고 사냐고 말하면, 깨끗해서 똥도 안 싼다고 설친다.

루쉰이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큐는 인물은 성도 이름도 없고, 고향도 어딘지 분명치 않은 떠돌이 날품팔이다.

아큐는, 시골의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하며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아간다. 천성이 비굴해 지주나 힘센 동네 건달에게는 꼼짝 못하지만,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무작정 괴롭히는 양아치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영웅주의와 패배의식이다.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아첨하는 비굴함을 보여 준다.

다만, 하는 짓하고 달리 자존심은 강해 자기의 결점에 굴하지 않고, 노름에서 돈을 잃거나 남에게 얻어맞아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혁명당이 마을로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나, 아큐는 혁명당이 자기의 편이라고 자위하고 우쭐했다. 어느 날 도둑의 누명을 쓰고 혁명당에 잡혀 총살형을 당한다.

루쉰은, 아큐라는 인물을 통해 5000년 탄탄한 역사와 철학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중국 민족이, 실질적으로는 무기력한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현실적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기만으로 현실을 호도(糊塗)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모습은 한국에도 넘쳐난다.

작가는, 민족적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중국 지식인과 백성들의 노예근성을 고발하고 있다.

한국의 기득권들도 이 모양 이 꼴이다.

최근 우리 사회도 정치인·관료·지식인·언론들의 온갖 술수와 왜곡을 목격한다.

자기가 가진 자산이나 직위·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둥 뒤에 숨어 자신을 은신한다.

그리고, 자기가 깨끗한 영웅이라 설친다. 반대자는 고소고발로 윽박지르고 법으로 하자고 하면 자신을 겁준다고 왜곡한다.

루쉰은,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주인공 아큐를 통해 자신이 굴욕적 패배를 당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자신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보여준다.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그려지는 “정신승리법”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정신승리법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자기가 처하게 된 불이익이나 폭력적 상황을 합리화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자기를 위안하고 넘어가면 어떤 모순도 다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아큐는 돈이 생길 때마다 도박을 한다.

늘 잃고 있다가 어느 날 큰돈을 딴다. 그러나 그 돈을 강도에게 빼앗기고 무자비한 폭력까지 당한다. 아큐는 그 순간 내가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지렁이였다면 사람이 지렁이를 밟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생각을 하고, 따라서 자신의 처지가 슬프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시켜버린다.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맞서봐야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개인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렇게 합리화 시키지 않으면 살수 없는 것이 민초들의 인생이므로, 그저 순응하고 긍정하면서 자기를 달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처절한 살아남기다.

권력과 자기 패거리들의 지지를 받는 도둑은 진짜 한심하다. 법과 헌법을 유린해도 분노할 줄 모른다. 사익을 위해 정의와 공정을 심각하게 훼손해도 못 본 체한다.

국민들의 이러한 모습은 '아큐(阿Q)'다.

기득권을 확보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유와 인권, 불공정에 대한 저항 의식은 없다. 제 자신과 제 가족만 잘 먹고 살면 된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스스로 자위한다.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남의 잘못은 비판하는 내로남불이 대표적 아큐 모습이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 내면과 사회에 대한 루쉰의 통찰력은 100년이 지난 현대에도 배울 점이 있다.

루쉰은 "중국인들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을 개·돼지로 취급해도 입 다무는 데 능숙하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무능과 적폐를 도와주는 자양분이다.

권력과 억압적 분위기에 굴종하는 우리는, 아큐(阿Q)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