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냐, 멸종이냐

▲ 이승무

노동당 정책위원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관념과 이로부터 체계적으로 지어진 경제학 이론이 현실의 자본주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게 해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관념을 집어넣어 주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여 경제활동을 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원래 이름은 ‘정치경제학 비판(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었습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은, 투하노동량이 교환가치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대전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엄밀한 과학적 공리라기보다는 경제사상에 속하는 것인데, 이 대전제를 고수하고 이로부터 여러 가지 결과들을 도출하여 경제현상들을 설명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잘못된 경제관념과 경제학이 제시하는 설명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여러 가지 다른 물건들이나 토지, 물적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들 중에 속하는 하나의 생산요소로 취급하면서, 거래의 대상인 단순한 객체인 것으로 치환하여 바라보는 경제관념이 통용되고 주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제관념이 지배한 결과 임금노동을 통해 노동자들은 고대 사회에 존재했던 노예와 같은 존재로 점차 전락하고 부림짐승(역축)과 같은 비인격적인 존재로 취급되면서, 기업에서의 생산에 대한 출자는 점차 노동이란 생산요소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발달해 갔습니다.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 배치되어 엄격한 작업방식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제 역할이 별로 인간의 역할로 보이지 않고 기계장치의 보조물처럼 보이게 되고, 그런 가운데 생산현장은 더욱 자동화되어 그나마 존재하던 현장 인력마저 더욱 최소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기업활동은 예측할 수도 없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되며 원료조달, 자연적인 변수, 그 외에도 시장 상황 등 온갖 불확실한 요인들 가운데서 생산 활동이 영위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나오며 세세한 작업 공정 내에서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습니다.

이에 대한 대처는 모두 사람이 판단해야 가능한 것이고, 인공지능이 이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즉, 노동자들의 지위가 낮아지고 이들의 움직임이 매뉴얼화되고 거의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순간 순간의 판단과 대처로 변칙적인 환경과 생산조건에 끊임없이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작업이 중단되거나 물자가 버려지거나 시설이 망가지거나 큰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항상 있습니다.

이런 측면들을 외면하는 것이 시장에서 통용되는 경제관념과 경제학이고, 노동자들 자신도 이런 관념을 계속 주입받으면 이에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노동자라는 인간의 특성은, 가변적인 상황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대처하는 가변성이라는 능력이고, 마르크스도 산업 사회의 임금 노동자와 노예와의 차이가 이런 데 있음을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측면이 있음을 외면하거나 간과한 경제관념이 생산수단의 물적 팽창을 가져오고, 다량의 에너지와 물자를 투입하여 거대한 생산규모를 달성함을 통해 자본투자의 채산성을 맞추는 방향으로 산업문명이 진화해 왔습니다.

이는 제국주의라는 세계적인 착취구조를 가져왔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일으키게 된 커다란 흐름입니다.

잘못된 경제관념에 속지 말고, 실제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보자는 마르크스가 노동이 교환가치를 창출하고 결정한다는 대전제를 기초로 삼은 것은, 이러한 철학적이고 시대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많은 마르크스의 노선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노동 가치의 측면에서 눈을 돌려, 국가에 의한 능동적인 시장개입을 주창한 케인스 경제학의 메시지를 더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유효수요의 창출을 통한 고용문제의 해결이 정책적으로 실행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생산수단의 물적 비대화와 물량공세의 근원적 문제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헨리크 그로스만과 같은 정치적으로나 학계에서나 고립된 학자가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론을 고수하고, 이로부터 자본주의체제의 축적의 위기와 붕괴라는 결론을 도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비웃고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영속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없어지고, 이 체제가 경착륙으로 붕괴하여 혼란에 빠질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본주의 산업문명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테드 리스(Ted Reese)라는 사람은, «사회주의냐 멸종이냐 최종적 자본주의 붕괴에서의 기후, 자동화, 전쟁» (SOCIALISM OR EXTINCTION CLIMATE, AUTOMATION AND WAR IN THE FINAL CAPITALIST BREAKDOWN)(2019)라는 책을 써서 헨리크 그로스만의 경제사상을 기초로 현실의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의 문제를 분석하고, 자본주의의 붕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진단하면서 사회주의냐 멸종이냐의 선택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통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의 입장에서도 토지와 자연생태계가 가지는 능동적이고 가변적이고 물질대사적인 측면을 제대로 조명하지는 못했고, 인간 노동과 함께 이런 측면이 이론적으로 규명이 되어야 지금의 문제를 더 잘 풀어갈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누가 무슨 주의자냐 어느 학파에 속했느냐 하는 것은, 유치한 관심이고 잘못된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현실과 현존의 문제가 있고, 이를 위해 먼저 관심을 가졌던 선현들의 사상을 당연히 참고하여 길을 찾아가는 것이지, 나는 무슨 파에 속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무슨 파에 속한다 하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위기와 변화의 시대에 종교의 차원에서도, 정치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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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무 sngmoo@cycleconom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