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대한법률경제신문사 대표이사 등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가 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한가?”

죽산 조봉암 선생이 1959년 7월 31일 간첩누명을 쓰고 ‘사법살인’의 희생자로 억울한 죽음을 맞은 지 올해로 57주기를 맞았다.

죽산 선생은 1958년 1월 이중간첩과 접촉해 북한의 자금과 지령을 받는 등 간첩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1심 징역 5년, 2·3심 사형을 선고받고 1959년 7월 형장의 이슬로 억울하게 사라졌으나, 2011년 1월 20일 열린 대법원 재심 판결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으로부터 무죄로 판결을 받았다.

이는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봉암 사건에 대해 "정권에 위협이 되는 야당 정치인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표적수사를 해 사형에 처한 것으로, 민주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이다." 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결정을 근거로 조봉암 선생의 장녀 조호정씨가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청구한지 2년이 넘도록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재심 판결을 통해 무죄선거를 내린 것이다. '사법 살인'을 당하고,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52년이 걸렸다.

인천지역에서는 추모제를 기점으로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진보 정치가로서 선구적인 삶을 살았던 죽산 선생을 기리고, 사상과 업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죽산은 1899년 9월 25일 경기도(지금의 인천시) 강화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시기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하였으나,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죽산은 1899년 '개국의 땅' 강화에서 나서, 일본·중국·러시아에서 항일·사회주의 운동을 했으며, 해방 후엔 개항장 인천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만민 평등과 평화를 외쳤다.

국내외에서는 '혼란기 대한민국의 대통령감'으로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정권의 눈 밖에 났고, 1959년 급기야 부패 권력이 휘두른 철퇴를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철저히 묻히고 잊혔다.

2011년에 보는 죽산 조봉암의 호적(戶籍)에는 죽산과 관련해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호주 조봉암'을 설명하는 난에는 '1944년 혼인' 내용과 '1959년 사망' 내용이 한자(漢字)와 한글로 나란히 기재돼 있다.

나중에 한글로 가필했다는 얘기다. 누가 언제 고쳤는지도 표시가 안돼 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경우다. 우리 앞에 놓인 '죽산의 현주소'다.

(사)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는 "(죽산의 호적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다"면서 "누군가 호적 장부까지도 손을 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죽산이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했고,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라는 것은 대법원이 '무죄' 선고 때 못 박았다.

죽산 조봉암은 이제 명실상부한 '강화~인천~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대표 인물이 됐다. 암울했던 시절, 반쪽으로 갈렸던 죽산 정신을 하나로 묶고 곧추세우는 일이 우리에게 던져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강화를 포함하는 인천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죽산 기념 사업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어난 강화에서는 강화대로의 목소리가 있고, 정치적 기반을 쌓았던 인천에서는 인천대로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울에도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가 오래 전부터 조직돼 활동해 왔다.

'죽산 정신'을 올바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협의체'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치인들이 죽산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는다.

죽산을 더 이상 '정치적 성향'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죽산 선생은 단순히 강화나 인천만의 인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대한민국의 어른으로 여겨야 한다. 이를 위해 모두가 한 뜻으로 나서야 한다.

조봉암, 다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법살인의 기억 때문인가? 혹은 평화를 말하면 친북좌파가 되는 세상 때문인가? 아니면 진보 정치의 척박함 때문인가? 비운의 정치인 조봉암은 1959년 7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겨우 9개월 전이었다.

비극적 시차다. 조금만 일찍 이승만 독재가 무너졌다면, 또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광기의 마녀사냥을 중단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조봉암 같은 ‘실용적 진보’가 한국 정치사에 존재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진보당이 존재했다면, 색깔론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봉암은 색깔론이라는 마녀사냥으로 희생됐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색깔론은 탄압의 도구였다. 정적을 제거하는 데는 간첩 혐의를 씌우고,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됐다.

진보당이 다수파는 아니라도 한국 정당사의 한축을 차지했다면, 그렇게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냉전반공주의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색깔론을 활용한다.

논리가 부족하면 무조건 친북좌파란다. 맨 오른쪽에 서서,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좌파란다. 조봉암을 죽인 세력들이 아직도 새로운 희생자를 찾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21세기 한반도에서 아직도 색깔론이라는 유령이 배회하는 풍경은 언제쯤 끝날까?

죽산 조봉암 선생이 1959년 7월 31일 간첩누명을 쓰고 ‘사법살인’의 희생자로 억울한 죽음을 맞은 지 올해로 57주기를 맞았다.

죽산 조봉암. 일제강점기에는 공산주의자이면서 독립운동가로, 해방 직후엔 극적인 전향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활약했고, 이후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이승만 정권에 맞선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던 그가 1959년 7월 31일 전격적으로 사형을 당했다.

정권은 그를 간첩죄로 옭아맸다. 누구도 그 올가미를 벗겨주지 못했다. 사법부조차도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 푹푹 찌던 한여름 그의 주검은 문상조차 제대로 받지를 못했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시간인 지난 2011년, 죽산을 그렇게 보냈던 우리 대법원은 그의 간첩죄가 억울한 누명이었음을 자인했다.

인천과 조봉암은 인연이 깊다,

해방 이후 가족들과 함께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 244번길이 그의 집이다. 옛집 주변은 그저 썰렁하기만 했다. 죽산은 일제가 주택개량 사업으로 이 동네에 지은 부영(府營) 주택에 산 적이 있다. 지금으로 치면 ‘시영(市營) 아파트’ 정도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터를 다진 똑같은 양식의 집들이 5~6채가 죽 늘어서 있었다. 일제 시기 주택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골목이었다. 그런데 그 집들이 몇 채 남지 않았다.

한쪽 끝 집은 헐려 고추밭으로 변했고, 다른 쪽 끝은 빌라가 들어섰다. 가운데 세 채만이 남았는데, 한 곳은 빈집이었다. 죽산이 살던 집에는 그나마 다행히 누군가 여전히 살고 있었는데 이 집이 언제까지나 버티고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게 보였다. 이마저 헐린다면 죽산의 숨결을 떠올릴 몇 안 남은 기념물이 또 사라지게 된다.

죽산의 삶을 쫒다 보면 그는 우리를 여러 갈래로 안내한다. 독립운동사로, 공산주의 운동사로 이끌기도 하고, 정당 변화사를 들여다보게도 한다. 친일 논란에도 휩싸여 있기는 하지만 그는 분명 ‘과(過)’보다는 ‘공(功)’이 많은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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