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의 내부 회계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 옳은가?

노조도 국가에서 지원받는 부분은, 이미 사용내역을 다 제출하고 있어

▲ 이장규

노동당 경남도당위원장

노동•정치•사람 운영위원

진해드림요양병원 원장

정부에서 지원받는 보조금은 지금도 이미 사용내역을 다 제출하는데도, 정부 지원을 핑계로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자율적인 내부 회계 즉 조합비 내역이나 조합원 명단까지 들여다보려는 게 하도 괘씸해서, 정 그렇게 하려면 정부 보조금 받는 모든 단체는 전체 회계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자고 했더니, 그걸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그런데, 제가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이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는 과연 믿을 만한가라는 문제가 있거든요.

정부 보조금을 일부 받는다는 이유로, 그 단체의 모든 내부 회계까지 전부 국가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면, 국가는 그걸 무기로 단체의 활동에 이런저런 간섭을 할 수 있습니다. 즉, 국가의 힘이 매우 강화되고 자율적인 사회의 힘은 약화 내지 국가에 종속되지요.

한국은 안 그래도 오랜 중앙집권국가의 전통이 있고, 관료들의 힘이 강한 상태 등 동아시아 전제국가적인 문화가 매우 강하며, 국가와 개인(가족)만이 주로 작동하고 자율적인 사회는 매우 취약한데, 정부 지원을 받는 모든 단체는 보조금 사용내역만이 아니라, 내부 회계까지 전부 공개하라는 건 이런 경향을 매우 심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각종 단체보다, 기업이나 학교 등에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이 훨씬 크고 기업이든 학교든 한국의 대부분의 조직은 이런저런 정부 지원금을 받는데, 그럼 그런 곳들도 모두 정부 지원받는 부분이 아니라, 자체 회계까지 전부 국가에 제출해야 합니까?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요?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개인도 이런저런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사람들 많습니다. 각종 복지혜택 아니라도, 국가장학금이나 근로장려금이며 정부가 이자 일부를 지원하는 대출 등등.

그럼 이런 개인들도 정부 지원 받으니까 개인적인 가계 회계를 전부 정부에 제출해야 하나요?

물론, 극단적인 예시입니다만, 정부가 그리 쉽게 각종 사회조직의 내부 회계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건, 정말 철저히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면 위험성이 더 큽니다.

물론, 국가의 지원을 받는 부분이야 당연히 그 사용내역을 철저히 제출해야지요.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국가에서 지원받는 부분이 아니라 회계 전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라는 건 사실은 매우 위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노조도 국가에서 지원받는 부분은 이미 사용내역을 다 제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노조의 내부 회계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당연히 그리 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그리 믿을 만하던가요?

오히려, 정부 지원을 받는데도 사용내역을 제출하지 않는 부분 가령 이른바 검찰 등의 특수활동비 등부터 제대로 사용내역을 공개하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이건 진짜 앞뒤가 안 맞거든요. 노조에는 지원 안 받는 내부회계까지 공개하라면서, 특수활동비 등은 정부가 직접 주는데 왜 사용내역조차 공개 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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