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전)노동당 정책위원

요즘은 인공지능이 대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서번역에서부터 시작해서 특정 주제에 대한 자료들의 취합과 적절한 요약과 보고서의 작성, 주문에 따른 그림 그리기, 작곡하기 등등 고등교육을 받은 직업인이 수행하는 기능을 인공지능이 거의 대부분 대신해 주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학습과 정보의 검색, 자료의 분석과 결론의 도출 같은 과정들의 요령을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논리적인 명령으로 번역해서 명령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컴퓨터에 지시하고 결과물의 만족도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 계속 만족도를 높여가도록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하면, 사람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 기계에게는 전기를 먹이로 주면 되고, 기계가 내부 구성성분의 피로도가 임계치에 도달하여 낡아서 성능이 떨어지게 되면 다른 것으로 교체하면 됩니다.

그러기 전에 처리하는 정보의 양과 처리 속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하드웨어가 금속가공 기술의 발달에 따라 더욱 순도가 높은 재료를 통해 계속 출현하기 때문에 성능이 떨어지는 시점에 도달하기 전에 새로운 하드웨어로 교체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지금까지 사무실에서 생각이 필요 없는 반복적인 작업에 종사해 온 사람일수록 이러한 인공지능에 의해 쉽게 대체되어 일자리를 상실하게 됩니다. 오너의 입맛에 맞는 영혼 없는 깔끔하고 무난한 시장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원도 머지않아 할 일이 없어집니다.

물론 당장에는 그 직원은 인공지능을 통해 초벌 보고서를 확보한 후에 여기에 “플러스 알파”라고 할 자신만의 독특한 직관이나 시각을 가미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이 기계의 내부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계에 매달려서 살다보면, 사람은 왜소해지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좋은 기계를 확보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기계를 잘 다룰 줄 아는 논리적 사고와 전체를 볼 줄 아는 통찰력. 그리고 성능 좋은 기계를 도입할 수 있는 넉넉한 자금 사정이 잘 들어맞을 때 경쟁력이 생깁니다.

인공지능의 성능은, 안정적인 전기에너지의 공급과 초고순도의 소재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 안정적인 원재료의 조달 가능성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이런 인공지능이 인간의 점점 더 환상적으로 커지는 욕망을 받아주는 그릇이 됩니다. 그 욕망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빨리 알아내고 더 똑똑하게 사안을 분석하여 정확한 언어로 설명할 줄 알고 그래서 매혹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죽고 사는 문제에서 생존하려는 욕구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허황된 수준의 욕망을 받아주는 그릇을 양산하기 위해 지구의 물질세계가 거덜 나게 될 지경입니다. 스마트 기기, 사물인터넷이 다 그런 허황된 욕망을 받아주고 만족을 주는 것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가운데 각광을 받아 가는 대중을 독자로 하는 철학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생각하고 의지를 갖고 감정을 가지는 주체가 아니고, 비인간적인 물질이나 물건의 세계에도 그 구성원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미세한 수준에서 지정의(知情意)를 지닐 수 있는 자유로운 주체일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들에 눈을 돌리는 신유물론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엄격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인간의 고유한 몸과 인간에게 보조수단이 되는 것들 전체를 아우른 집합에서 인간 개체의 새로운 외연과 내포의 개념규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포스트 휴머니즘 같은 것들입니다.

전통적인 휴머니즘에 대한 강력한 도전인 이런 사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실존적 두려움일 것인데, 인간이 계몽시대 이래 대상화하고 수단시한 지구 생태계가 조작과 관리과 개발의 대상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의 재앙으로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산물인 인공지능도 종류는 다르지만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해야만 할,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들의 출현에 따른 두려움인 것입니다.

둘째는, 휴머니즘의 전통적인 아성인 동서의 거대 종교와 이에 기초를 두는 문명에 대한 염증이 있습니다.

이 문명은 제국 문명, 가부장적 문명, 위계질서의 문명으로서 지구상의 전체 인류에게 휴머니즘이 통용되지 못하고, 제한된 인간집단 안에서의 휴머니즘이라는 모순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 대한 반작용인 듯합니다.

셋째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에서 계급투쟁의 전선이 전통적으로 노동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것이 이제 사용가치의 세계로 확장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휴머니즘의 전제가 흔들리면, 노동가치론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인간의 물질성과 비인간의 인간적 성격에 대한 관심의 증폭은, 계급투쟁의 전선이 형성되어 가는 자리를 가리켜 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의 물질성에 대한 질문, 비인간의 인간적 성격에 대한 질문은 조선시대의 유학(儒學)에서도 논쟁이 되었으며, 지금과는 다른 맥락에서 세계관과 정치 투쟁의 매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비인간인 물질을 대상으로 삼는 주체라는 생각보다는, 인간이 물(物)의 일종이면서 가장 높은 수준의 물이라는 생각은 유학의 기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과 물의 동류의식이 급진적인 생태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공지능은 물(物)이 아니라, 물을 남용하여 이를 통해 구축한 인간의 욕망을 받아주는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사물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 등의 인공지능을 이용한 문명의 이기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공략하는 것이 자본의 이해에 맞아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물(物)을 아끼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고가치, 고순도의 물(物)에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시도이지만, 자연에 속한 총체로서의 물에 대한 인정은 전혀 아닙니다.

인간이 가공한 물을 순도에 따라 차별하는 데 기초를 둔 것으로서, 물의 세계로까지 휴머니즘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더구나 아닙니다.

노자는, 그 이름으로 된 책의 59장에서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끼는 것 만한 것이 없다(治人事天，莫若嗇)고 했습니다. 사람을 아끼는 것과 자연과 만물을 아끼는 것을 같은 맥락에서 본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존중되어야 할 물(物)의 총아가 아니라, 물(物)을 남용하고 초고순도의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물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과정에 기초를 둔 거대한 기술사회 네트워크일 뿐입니다.

수많은 인간이 거기 매달려 있는 거대한 기술사회 네트워크이기에 개별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버겁고 두려운 존재이기는 합니다. 인간 자신이 물(物)의 종류라면, 물을 아껴야 하고, 물을 남용하는 체제에 저항해야 합니다.

물(物)을 순환하는 자연에서 빌려왔다면, 필요한 일에 잘 사용하고 다시 자연에 잘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과 물(物)은, 그 존엄성에서 전혀 다른 차원을 가집니다. 이것을 혼동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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