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입은 신사가 매 맞는 이유

▲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1943년 발표한 한복남의 가요, <빈대떡 신사>는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 맞는 이유를 단정한다. “돈이 없어서”라고.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 다 말아먹고, 돈 한 푼 없이 요릿집에 으스대며 들어갔다 매를 맞는다며 원로가수는 “우하하하” 웃어댔는데, 매 맞는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이어지는 가사를 보면 알량한 재산을 바친 단골일지 모른다. 기생 거느리는 요릿집에서 단골에게 폭력을 앞세웠을까? 무일푼 주제에 허구한 날 으스대는 꼴이 가당치 않았던 거 아닐까?

담배를 오래 피우면 폐에 문제가 생길까?

30년 넘게 담배 피우다 폐암에 걸린 환자의 소송을 우리 법원은 기각했다. 오로지 흡연으로 폐암이 생겼다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30년이 아니라 60년을 피워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 담배 피우지 않아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우리나 세계 여느 국가나, 자본 규모가 막대한 담배회사를 상대로 여러 차례 고발해왔지만, 소송 당사자가 이긴 적 없다. 인과관계가 당연해 보이더라도 개개의 소비자는 이기지 못한다. 따져야 할 원인이 한두 가지 아닌 탓이다.

한 가지 원인이라고 확신할지언정, 자본 대상으로 소송하기 쉽지 않다.

1995년 원유 운반하던 시프린스호를 삼성중공업의 바지선이 들이받아 막대한 원유가 태안 앞바다에 쏟아졌고 주민은 재산과 건강을 잃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소송에 이겨 납득할 보상받은 주민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어떤 로펌보다 강력한 삼성의 법리를 이길 주민은 없는데, 삼성만이 아니다. 1984년 인도 보팔시 수만 명을 사상케 한 당시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사도 마찬가지였고 비슷한 목록은 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지만, 장마철에 점심으로 먹은 김밥이 상했는지 모른다.

세포막을 통과하는 초미세먼지가 세계보건기구 기준치를 자주 초과한다. 한바탕 장맛비가 내려도 초미세먼지 수치가 인천에 특히 높은 이유는 영흥화력발전소 때문일까? 비 내릴 때, 모아둔 폐수를 한꺼번에 버린 공장이 과거에 많았는데, 영흥화전 측은 요즘 화석연료를 마구 태우는 건 아닐까?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영업비밀이다. 가족에 없던 천식이 거듭 발생해도 소용없다. 인과관계를 증명할 자신이 있는가?

1995년 《복합오염》 제목의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리포트 형식으로 쓴 일본 소설가는 피할 수 없는 오염원 실태를 고발했다. 음식, 약품, 옷과 가구에서 피부와 호흡기로 몸에 들어오는 오염물질은 수천 가지가 넘는다. 오염물질이 한두 가지 슬며시 추가되더라도 그 영향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두 가지 이상이 동시에 들어오면 몸에 어떤 상승효과가 생기는지 개인이 어떻게 알겠는가?

지금은 복합오염 시대다. 늘어나는 오염물질로 인한 몸의 이상 현상은 인과관계로 증명할 수 없다. 오염물질 하나를 대기와 바다에 슬그머니 더 버린들 누가 알리오? 책임질 일 거의 없다.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포화하자 엘니뇨가 심해지고 최악의 장마로 50여 명이 희생되었다. 100% 인재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6차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인류가 원인을 제공한다고 단정했으니 틀림없겠는데,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

제방을 높이려고 모래 끌어올린 굴착기 기사의 책임은 미미하지만, 가장 가슴 아플지 모른다. 책임회피에 나선 사람 사이에 경중을 따져보자. 굴착기를 보낸 공사 책임자? 민원을 끈질기게 외면한 공직자? 탄소배출을 부추긴 정치와 행정? 누구 책임이 가장 큰가?

일본은 핵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데 우리 정부는 일본을 두둔한다. 마시겠다는 이는 희한하게 우리나라에 많다. 마셔서 탈이 나면 인과관계가 명확해질까?

실제로 발전소 폭발 초기, 오염수를 마신 일본의 몇 정치인과 연예인이 사망했다. 핵오염수 때문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수족관 해수를 맛본 우리 정치인과 별개로,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이후, 일본과 우리, 그리고 세계의 소비자, 또한 해양생태계의 숱한 생물에 이상이 생겨도 그 인과관계는 단정할 수 없다.

일본은 오염수 방류를 중단하지 않을 테지만, 미래세대와 생태계는 매를 맞겠지.

* 이글은, 인천환경운동연합 ‘갯벌과 물떼새 제355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양복 입은 신사가 매 맞는 이유 | 인천환경운동연합 (e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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