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호텔 은하수 주방장 출신으로 18년째 근무하고 있는 한인선씨와 최애란 동네부엌 ‘정’ 대표(참좋은두레생협 이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1966년 12월 20일 개관한 세종호텔의 한식뷔페 ‘은하수’ 이야기다. 세종호텔은 이제 곧 50주년을 맞는다.

▲ 최애란 ; 동네부엌 '정' 대표 참좋은두레생협 이사

최애란 - 조리사들에게 호텔에서 근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한인선 ; 선망의 대상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것보다 좋은 근무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애란 - 좋은 근무환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한인선 ; 한식으로 보면 죽, 밥, 전, 찜 등 한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호텔이 급여가 많고, 일이 쉬운 건 아니다.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오는 곳이고, 한식에서 세종호텔 은하수가 만들어 낸 것은 한국에서는 드물게 훌륭했다.

최애란 - 세종호텔 은하수를 검색해보니 “어르신을 대접하기에 좋다. 일하는 분들의 나이가 많아서 더 편안했다.” 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것도 드믄 경우인가요?

한인선 ; 은하수는 내가 7년차였을 때 이미 20년차 이상의 선배들도 꽤 있었다. 그만큼 선배들의 위치가 안정적이었다. 2009년 주명건 회장이 오자마자 “호텔에 누가 죽을 먹으로 오냐”며 팥죽, 호박죽의 재료를 바꿨다. 나이 지긋한 단골손님들은 대번에 맛이 틀렸다며 발걸음을 끊었다. 예전에는 계약농가에서 재료를 직접 가져왔다. 늙은 호박이 산더미처럼 들어오면, 모든 조리사들이 나가서 껍질을 벗겨 냉동실에 보관하며 호박죽을 냈다. 김치도 직접 담았고, 장도 직접 담아 호텔옥상에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인원도 21명에서 14명으로 줄었고, 경력직조리사도 7년차가 최고참이고 은하수 출신은 1명이다. 반제품도 들여다 놓는 것 같고, 조미료도 사용하는 것 같다. 사람이 줄면 그만큼 정신없이 바쁜데, 누가 있어 예전대로 하겠나? 한식당 은하수의 총책도 양식에서 올렸다.

최애란 - 세종호텔 한식은 은하수뿐이었나요?

한인선 ; ‘한가람’이라는 한정식이 있었다. 처음에 첩상을 차려 한상에 다 내다가 코스로 내는 곳이었고, 은하수는 곁음식, 반찬으로는 아까운 다양한 요리들을 뷔페로 차려낸 최초의 한식뷔페였다. 지금은 큰 쇼핑몰에도 한식뷔페집들이 더러 생겨서 성행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우나 안에 식당이 있었는데, 거기도 한식조리부였다. 주로 탕이 나갔다.

최애란 - 특급호텔의 한식당들과 세종호텔이 달랐던 것이 뭘까요?

한인선 ; 우리는 한식을 모두 다뤘다. 죽에서부터 김치까지 한식의 조리법을 모두 사용했고, 정월에는 떡잔치를 하고 여름에는 팔도음식한마당처럼 절기마다 한식을 알리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절정기에 있었던 은하수 총책임이었던 사람들이나 주방장 출신들이 지금 다 대학 교수들로 나가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역할을 기대 할 수 없다.

최애란 - ‘엘리제’로 바뀌고 얼린홍시 대신 홍시스무디가 나오고 제과류가 늘었다는 평이 있던데요?

▲ 한인선 세종호텔 은하수 주방장 출신 (세종호텔에서 18년째 근무)

한인선 ; 제과제빵도 이제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온다. 주명건 회장은 창업주였던 부친과 경영권을 두고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부친이 만들어온 ‘은하수’ 이미지를 없애고 싶었을 수도 있고, 40년 가까이 이어온 한식조리사들의 조직력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주명건 회장은 ‘은하수’의 명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최애란 - 요즘 미르재단이 거론되면서 거기서 빠져나간 한식세계화 사업비에 말들이 많은데 ‘한식세계화’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시나?

한인선 ; 웃기는 말이다. 이 나라에서 배출되는 조리사들 중 한식조리사를 보세요. 한식조리사는 고사하고, 우후죽순 쏟아지는 조리사들의 현실부터 봐야한다. 각종 요리프로그램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로 현혹시키지 말고, 그들이 일 할 수 있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딴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요즘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서 2년 버텨도 무기계약직이다. 들어오는 조리사들의 스펙은 예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현장은 배우고 가르칠 시간이 없고, 그들은 학교와 다른 현장에 실망한다.

연회부에서 한 2년 동안 지켜보니, 들고나는 조리사가 60여 명이었다. 일자리는 6~7개였다. 바쁘다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한식, 일식, 중식 뛰어 다니니 여러 가지 해봐서 좋다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 배워 가지고는 그냥 디딤돌도 못 밟아 보는 거다. 한 달도 못 견디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한식의 세계화는 무슨...... 요리하는 사람들이 참 자존심이 없다. 자존심이 없으니 이렇게 당하는 거다.

최애란 -은하수로 입사하셔서 지금 18년째 근무하신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일을 하시나요?

한인선 ; 조리지원팀이다. 다른 호텔 어디에도 없다. 연회부와 출장팀 어디든 가서 짐을 나르는 것부터 천막설치까지 허드렛일을 하고, 요리를 하긴 하지만 어디든 비는 곳을 채우는 일을 한다. 한식조리사로 내가(한인선) 있고, 일식조리사로 고진수가 있고, 양식조리사로 박광순이 있다. 세 명 모두 거리농성을 진행하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주명건 회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고 있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해고자 포함 15명이고, 모두 강제전보와 임금삭감으로 현실적인 해고와 맞서고 있다. 주명건 회장 이전에는 단일노조였는데 2011년 주명건 회장이 노동조합을 하나 더 만들어 노조를 탄압했다. 노동자들 간의 갈등은 심각하지 않다.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건 모두가 안다.

▲ 한인선씨가 세종호텔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요리사들이 자존심이 너무 없다.” 한인선씨의 마지막 말은 정말 쓸쓸했다.

그는 얼마 전 구완와사가 와서 한 달 동안 한쪽 얼굴을 쓰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거리에서 집회를 한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부가 날려버린 한식세계화 비용이 무엇이었는지,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한인선씨의 손은 조리사의 손이라고 하기에도 정말 일을 많이 한 손이었다. 세종호텔 한식조리사 중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조리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리지원팀에 있다. 그 팀에는 단 세 명의 직원이 있다. 근속 15년차 고진수씨와 18년차 한인선씨, 25년차의 박광순씨다.

그들은 출장요리이든 연회부든 짐을 나르는 허드렛일부터 일식이든 중식이든 한식이든 정해진 일없이 이일저일 떠다니고 있다. 30% 임금삭감에 경력직 조리사로의 자부심도 깔아뭉개는 실직적인 해고에 맞서고 있는 중이다. 매일 세종호텔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매주 목요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에 맞서 집회를 한지 3년이 지났지만 주명건 회장은 묵묵부답이다.

우리나라 호텔음식에서, 한식에서 세종호텔 ‘은하수’는 없어졌다. ‘은하수’의 이름을 ‘엘리제’로 바꾸었다고, ‘엘리제’의 전통이 40년이라고 세종호텔은 홍보하고 있지만 거기에 그걸 지킨 사람들은 없다. 사라진 것은 ‘은하수’라는 이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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