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시정 바래미야학 대표는 인천사람연대와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공동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말 바꾸기'로 원안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기초연금이 지급되고 있다. 이렇게 복지제도가 과거보다 확대되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는 등의 사건 보도를 수시로 접하면서 여전히 수많은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형편없는 복지제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작년 말과 올 1월,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문제로 많은 인민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사실상 증세"로 보는 여론에 맞서 증세가 아니라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정부. 결국, 증세에 대한 반발심만 더 키운 셈이 됐다. 이 틈에 새누리당은 보편복지를 축소하고 선별복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지만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좌우를 떠나,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것은 공통의 과제지만  ‘얼마나, 어떻게, 누구에게’ 걷어서 ‘얼마나, 어떻게,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보편-선별 논쟁'은 첨예하게 이어지며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Go try it"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한 말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교리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낙수효과 논리'와는 달리, 세계는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이를 통해 일반의 소비를 진작시켜 내수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이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기본소득제는 내수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보편성이다. 선별과 보편을 분류할 때, 보편의 맨 끝, 가장 보편적인 자리에 있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무엇보다 수급하기 위한 복잡한 원칙이 없다. 기본소득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모두 주자! 그냥 주자!” 그리고 "충분히 주자!"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재미있는 점은, 독일의 대형 생활용품전문 체인업체 창업자이며 독일 100대 부자 가운데 한 사람인 괴츠 베르너(Götz Werner)도 기본소득을 적극 지지한다.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에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사회적 비용을 덜어주자는 것인데,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을 위해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기업들은 기본소득이 '콤비임금'(Kombi-Lohn)이라는 핑계로 임금을 삭감하려 들 것이다. 즉, 내수는 늘이되 임금은 삭감하자는 기업가다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자유로운 개인을 꿈꾸게 하는 가능성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고민이 있다. 노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노동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노동자는 살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기본소득제 안에서 소득은 더 이상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에게만 실업급여를 주는 식의 노동과 복지를 연계한 모델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상품화해야 하는 노동자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삶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개인의 삶을 바꾸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충분한 기본소득은 '소비사회'라는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소득과 욕망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사회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이 주어지더라도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자본주의와 소비사회가 존속되는 한 기본소득도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대다수가 임금노동을 유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소비를 위한 용돈'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하는 '생태적 철학'을 배경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작동하는 자본주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논의되어야 한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두 가지 요소, 노동과 소비에 대해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생태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탈노동과 탈소비는 기본소득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기본소득으로 인해 탈노동과 탈소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탈노동과 탈소비 운동 속에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제도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전제이자 목적인 탈노동과 탈소비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리고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의 기본소득

일본의 극우정치인으로 분류되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1969년생) 오사카시장도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그는 공무원을 썩어빠진 조직으로 또는, 국가재정을 갉아먹는 흰개미와 같다며 비난한다. 그는 오사카 시장이 되자 기존의 사업을 정리하고 시민단체 지원금도 중단해 시 예산을 순식간에 흑자로 전환시킨 바 있다. 

하시모토 도루는 "각종 복지서비스 운영을 위해 공무원 조직이 불필요한 조직과 체계를 만들면서 일반에 돌아가야 할 예산을 더 많이 갉아먹으려 한다"며 "그 결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성토했다고 한다. 그는 또, "그런 불필요한 조직을 모두 쓸어버림으로써 극단적으로 '작은 정부'를 구성하고 모든 복지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하겠다"고도 말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낭비되던 예산을 모아 별도의 재원 없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실현하겠다고 주장한 셈이다.

관료주의가 지속될수록 비효율성은 커지고 누적된 관행의 벽은 점점 두터워진다. 복지정책은 복잡해지기만 하고 그 대상을 선별하기 위한 비용도 증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한 조직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많은 예산을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싹 쓸어버리고 단순화하고, 절감한 비용을 국민에게 다달이 지급하겠다고 하니 모두가 솔깃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작은 정부를 실현해 행정비용을 축소하겠다는 주장은 우파들의 공통된 주장일 뿐이다. 즉,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모든 걸 시장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 안에서 무한 경쟁을 유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체제를 의미한다. 혹독한 신자유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또, 행정비용(복지의 선별과정에 필요한 행정비용)을 절감해 기본소득을 실현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모두가 만족할 만한 기본소득의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 실현 위해 조세개혁 꼭 필요

'기본소득 운동'을 펼치는 강남훈 교수(한신대학교 경제학)는 우리나라 조세부담율 25%를 서구유럽 수준인 45%에 맞춘다면 모든 국민에게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법인세 등도 높이는 조세개혁도 필요하다. 또, 투명한 조세정책을 펼치면서 탈세 가능성도 없애는 노력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금 올린다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낄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다.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베르너나 하시모토 도루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노동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탈노동과 생태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기본소득은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게 주어진 가능성이고 무기다. 이것을 어떻게 갈고 다듬어서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다음 글로 미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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