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요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금 대통령 박근혜 씨의 피눈물 이야기가 화제다. 피눈물은 말 그대로 사무칠 정도의 처절한 감정만이 느껴지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현실은 물론 가상 매체에서도 이러한 처절함을 비유할 때 ‘피눈물’이란 요소를 활용하곤 한다.

실제로 피눈물이 나올 수 있는데, 보통 눈의 실핏줄이 터져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 그 이유다. 실핏줄이 터지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데, 격한 놀이기구나 오랫동안 뒤집혀 있거나, 머리에 힘을 주면 눈이 빨갛게 되는데 이것은 실핏줄이 터진 상태다. 즉, 현실에서 보는 피눈물은 어지간히 감정이 격해지거나, 눈병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사실 순수한 눈물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눈물에는 여러 빛깔이 있어 슬픔, 연민, 감동, 분노, 회한, 기쁨...... 그 모든 빛깔의 눈물은 순수한 감정의 결정체다. 다른 이의 슬픔과 아픔, 혹은 기쁨에 대한 온전한 공감의 반응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거짓과 꾸밈, 계산이 들어설 한 치의 여지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박근혜 씨가 자주 흘리는 정치적 눈물은 생뚱맞게 느껴진다. 박근혜 씨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청와대에서 가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 난다는 말을 알겠다”는 취지의 심경을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피눈물 운운할 자격이 되나?”, “피눈물이 진정 무엇인지 알기는 할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흘리는 피눈물의 십분의 일이라도 알런지?”, “그 말 듣는 국민들은 이가 갈린다”, “2년 넘게 진짜 피눈물 흘리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할 소린가!”, “자식을 눈 앞에서 잃는 세월호 부모들이 들으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일인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일침에 동참했다.

'화씨지벽(和氏之璧)' 고사의 주인공 변화(卞和)는 초나라 여왕에게 자신이 형산에서 발견한 옥돌을 헌상했지만 진짜 보석임을 믿어주지 않아서 왼발을 잘리고, 여왕 사후 즉위한 무왕에게 다시 헌상했으나, 이번에도 믿어주지 않아 오른발마저 잘린 뒤 무왕 사후 즉위한 문왕에게 또다시 헌상하고자 했지만, 두 발이 잘려 걸을 수 없게 되자 옥돌을 품에 안고 4일 밤낮을 통곡하다가 눈물까지 말라버려서 마침내 피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사연을 들은 문왕이 옥돌을 가져오게 해 다듬도록 하자 흠 없는 옥을 얻었으니, 그 옥이 바로 인상여가 완벽이라는 단어를 만들게 해준 ‘화씨지벽’이다. 하지만, 결국엔 진시황에게 넘어가 옥새로 깎이게 된다. 그래도 변화의 정성에 감복한 문왕이 그가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줬다.

참고로 피눈물이 나게 울었던 이유는 발이 잘려서가 아니라, 이 옥의 가치를 몰라줘서 그랬다고 한다.

피눈물은 단종실록에도 보인다. 금부도사가 시위하여 상왕을 영월 서강의 청령포에 모시어 안치하고, 금부진무 2인이 단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누구도 단종과 비밀히 연락할 수 없도록 하였다.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은 그 해 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자 처소를 관풍헌으로 옮겼다. 동헌 동쪽에 있는 누각을 자규루(子規樓)라 하는데, 이 누각은 세종 때 영월군수였던 신근권이 세워서 매죽루(梅竹樓)라고 했던 것을 단종이 이에 올라 '피를 토하듯 운다' 는 두견새(子規)의 한을 담은 시를 읊었다고 하여 그 시를 자규시라 하고, 이 누를 자규루라 부른다.

유배생활의 슬픔이 깃든 장릉지(莊陵誌)에 전하는 단종의 시

[자규사 子規詞]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月白夜蜀魂啾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어라 含愁情依樓頭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無爾聲無我愁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일으노니 寄語世苦榮人

부디 자규루에는 오르지 마오 愼莫登子規樓

[자규시 子規詩]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을 나온 후로 一自寃禽出帝宮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孤身隻影碧山中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假眠夜夜眠無假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어라 窮恨年年恨不窮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斷聲曉岑殘月白

피눈물 흘러서 지는 꽃이 붉구나 血流春谷落花紅

하늘도 저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天聾尙未聞哀訴

어찌 시름 젖은 내게만 들이는고 何奈愁人耳獨聽

박근혜 씨가 청와대 관저를 경계로 하는 유배형의 일종인 위리안치(圍籬安置)됐다고 보면 유배지의 피눈물이야기로 들릴 수는 있겠다. 위리안치는 유배지 내 죄인의 거처 주변을 가시나무로 빙 둘러 울타리를 쳐서 벗어날 수 없게 한 무거운 형벌이다.

눈물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게 악어의 눈물이다. 이집트 나일강(江)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보면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셰익스피어도‘햄릿’,‘오셀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 여러 작품에서 이 전설을 인용하고 있다. 이처럼 먹이를 잡아먹고 거짓으로 흘리는 악어의 눈물을 거짓눈물에 빗대어 쓰기 시작하면서 위선자의 거짓눈물, 교활한 위정자(爲政者)의 거짓눈물 등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특히, 선거에서 이긴 정치가가 패배한 정적(政敵) 앞에서 위선적인 눈물을 흘릴 때 많이 쓰며, 강자(强者)가 약자 앞에서 거짓으로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따위의 행위도 모두 악어의 눈물에 해당한다.

실제로도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슬퍼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보충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의학용어에도 얼굴신경 마비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악어(의) 눈물 증후군(crocodile tears syndrome)'이 있다. 환자들의 침샘과 눈물샘의 신경이 뒤얽혀 마치 악어가 먹이를 먹을 때처럼 침과 눈물을 함께 흘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의학혜택을 많이 받아 그런지, 아니면 거짓과 동정의 눈물인지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 동정심이 가지 않는다. 감정이 너무 메말라진 탓일까?

■ <개미뉴스>의 모든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개미뉴스>의 모든 기사는 「개미뉴스 편집가이드」를 따릅니다.
   ☞ 「개미뉴스 편집가이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