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를 품은 청년, 김의기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투신 자결 이근선l승인2019.06.18l수정2019.06.1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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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은 김의기 열사의 기일이었다. 올해는 제39주기였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될 때, 국내 언론은 계엄당국의 사전 검열로 이를 보도하지 못했다. 광주의 진실이 은폐되고 있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해 서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몸을 던진 학생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를 보았던 김의기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상경해 이를 알리기 위해 투신 자결한 것이다. 이것이 김의기 투신자결(金宜基投身自決)사건이다.

김의기 열사는, 1959년 4월 20일 출생해 1980년 5월 30일 5시경 기독교회관(종로5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뿌린 뒤 떨어져,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서강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이었다.

김의기 열사가 투신자결하기 전 뿌렸던 유인물(동포에게 드리는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기어 놓으려 하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 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피를 뜨거운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 동안 살벌한 총검 아래 갖은 압제와 만행을 자행하던 박 유신정권은 그 수괴가 피를 뿌리고 쓰러졌으나 그 잔당들에 의해 더욱 가혹한 탄압과 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동안 허위적 통계 숫자와 사이비 경제이론으로 민중의 생활을 도탄에 몰아넣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 일부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제외한 온 민중이 받는 생존권의 위협이라는 것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유신잔당들은 이제 그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자유시민으로서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 것인가? 

또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 것인가?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 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 유신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동포여! 내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 바쳐 싸우자. 동포여!

1980년 5월 30일  김 의 기

 

▲ 김의기 열사가 작성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오월 광주를 품은 청년, 김의기

► 삼엄한 언론 통제에 가려진 ‘1980년 오월 광주’

▲ 5.17계엄지역 확대조치 및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지침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될 때 국내 언론은 계엄당국의 사전 검열로 이를 보도하지 못했다.

10.26 직후부터 시행된 언론통제는 ‘서울의 봄’ 과 함께 그 지침이 강화되었고, 계엄당국은 외신기자들이 송고하는 원고까지 검열했다.

계엄군이 광주항쟁이 시작되고 보도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전국 곳곳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21일 보도금지가 해제되면서 언론은 ‘광주’를 언급했지만 삼엄한 언론통제 속에서 광주의 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5공화국 전 기간에 걸쳐서 공권력과 제도 언론은 광주항쟁을 '혼란' 또는 ‘사태’로 폄하하고 왜곡했다.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외신에서 광주의 참상을 보도했지만, 이 또한 소수의 사람들만 알았을 뿐 대부분의 시민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 동포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김의기 열사의 생전의 모습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광주의 진실이 은폐되고 있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해 서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몸을 던진 학생이 있다. 1980년 5월을 보았던 김의기이다.

김의기는 1959년 경상북도 영주의 농촌에서 4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리했던 그는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해 배명중학교, 배명고등학교를 나와 1976년 서강대 무역학과에 진학했던 집안의 자랑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교내에서 근대사 연구모임을 주도했고, 1979년 2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청년회 전국연합회 농촌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80년 2월, 그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 농촌분과위원장이 되어 전남지방의 농촌과 서울을 왕래하며 농촌문제를 정리하고 농촌 활동 자료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 형제교회 청년회에서 발간한 제3주기 김의기 열사 추모 자료집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그가 대학에 들어와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농촌이었다. 매년 여름과 겨울만 되면 농촌 봉사를 떠나 농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발굴하기 위해 힘썼고 이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주 그는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어야겠다고 했으며..”(중략)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던 그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광주시민 학살을 접하고도 침묵해야 하는 시대의 비극에 항의했다.

1980년 5월 30일 오후 5시 10분, 김의기는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옥상에서 떨어졌다. 당시 기독교회관 주변은 ‘5.17비상계엄’으로 무장군인 수송차 2대가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무장군인들이 회관 앞에 상주하고 있었다. 김의기는 바로 그 수송차 사이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그가 유인물을 뿌리다가 경찰에 밀려 떨어졌다는 설과 유인물을 작성만 하고 실제로 뿌리지는 못하고, 5월 30일 어느 교회의  사람에게 준  후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는 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죽음까지 각오하고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하여 많은 시민들에게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 김의기를 추모하다

▲ 김의기 명예졸업식에서 오열하는 모친 권채봉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1980년 6월 2일 서울대학병원 영결식장에서 김의기의 영결 예배가 거행되었고, 그의 시신은 경기도 일산 기독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리고, 2000년 정부로부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인정받아, 그 해 5월 5.18묘역으로 이장되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하면서까지  밝히고자 했던 광주의 진실은  많은 시민들을 거리에 나서게 했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되어 마침내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1988년 5월 30일 서강대 교내 로욜라동상 앞 의기촌에서 '김의기열사 8주기 추모식 및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고 서강대는 1990년 2월 故김의기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매년 5월 '의기제'를 개최하여 김의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 제39주기 의기제 광주기행 웹자보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제39주기 의기제 광주기행 웹자보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제39주기 의기제 광주기행 웹자보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제39주기 의기제 광주기행 웹자보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제39주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은, 생존한다면 김의기 열사가 회갑이 되는 올해, 5월 15일 추모 미사(이냐시오), 강원국 작가 강연회(의기촌 옆 로욜라 동산), 추모 제사(의기촌), 가수 안예은 씨와 학생단체들의 공연(청년광장), 본판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5월 25일(토)에는 광주를 방문하여, 1980년대의 광주와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 제39주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이 김의기 열사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제39주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이 김의기 열사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제39주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이 김의기 열사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아래는, 제39주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이 김의기 열사에 대해 알리기 위해 만든 카드다.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사진 출처 ;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

 

* 기사의 사진, 자료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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