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반전평화활동가 입국 거부 일본 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허영구 AWC한국위원회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반전평화 운동 AWC

▲ 허영구 AWC한국위원회 대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나는 ‘미‧일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공동행동(AWC) 연락회의 초청으로 2017년 11월 24일부터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2시 10분 오사카로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는 항공사 사정으로 30분 지연된 뒤 이륙했다. 지난 6월 일본 지역순회에 이은 5개월만의 일본 출장이었다.

AWC는 25년 전인 1992년 10월 일본(오사카와 도쿄)에서 개최된 ‘일미군사동맹과 일본군의 해외파병을 반대하는 10월 국제회의’가 모태가 됐다. 이 회의에는 아시아지역 12개 나라에서 민중단체들이 참가했고, ‘일미군사동맹과 자위대 해외파병을 반대하는 아시아 캠페인(약칭AWC)’ 설립을 결정했다.

3년 뒤인 1995년 교토에서 열린 2차 총회에서 현재 명칭으로 바꿨다. 한국에서는 전평 당시 철도노조 조합원이었던 민족정기수호협의회 이수갑 의장이 참가했고, AWC한국위원회 활동이 시작됐다. 나는 21년 전인 1996년 민주노총 초대 부위원장 시절 한국을 방문한 일본 AWC회원들을 만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2005년부터 한국위원회 대표를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와쿠니, 동아시아 최대 미해병대 기지

이와쿠니에 극동 최대 미해병대 기지 특히 비행장 활주로가 건설되고, 미군주택이 들어서 주민들은 소음과 생활환경파괴에 시달려 왔다. 미군주택들은 지하방공호까지 설치한 고가의 주택이지만, 일반 주민들은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면 알아서 대피하라는 말 뿐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한 때는 이와쿠니시 대다수 주민들의 반대로 미군기지 공사가 지연되고, 시나 시의회에서도 반대기류가 높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정부로부터의 특별예산지원 등 회유와 압박으로 미군기지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이와쿠니 미군기지는 한국과 300km 떨어져 있다. 한반도 전쟁 시 미군의 전진기지로 활용될 것이다. 이와쿠니 기지를 이륙한 미군과 자위대의 전투기는 히로시마 해안을 선회하며 비행훈련을 한다. 이와쿠니는 한반도와 비슷한 산악지대인데 미군전투기가 수시로 내륙지역을 저공비행훈련을 실시한다. 12월 4일 예정된 한미 양국군 연합공중훈련에는 항공기 230여 대가 참가하는 데 이 중 상당수 미군전투기들이 이와쿠니 기지에서 출격한다.

- 오사카 공항에서 입국 거부당하다

이번 방일 목적은 11월 25~26일 양일간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에서 강화되고 있는 미군기지 반대, 전쟁반대, 동아시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이와쿠니 행동 2017’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야마구치현의 작은 섬 이와이시마로 건너가 지난 30뇬 동안 추고쿠전력(中国電力)의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저지투쟁을 벌이는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도 계획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베에서 열릴 제39회 ‘아시아노동자 교류집회’에서 “긴박한 한반도 정세, 촛불혁명으로 1년, 한국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일반승객들과 함께 입국수속을 밟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당연히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별로로 불러 조사할 것이라 생각했다. 2008년 홋카이도에서 G7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민주노총과 전농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집회를 위해 입국하려 했으나, 일본 당국은 불허했다. 농민들은 하루 만에 돌아갔지만 민주노총은 3일 더 억류되었다가 강제추방 된 적이 있다.

그 이후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10차례 방문하면서, 입국할 때마다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당연히 통과사항이라 여기고 공항출입국관리 사무실로 이동했다. 출입국관리직원의 심문이 시작됐다. 그런데 질문 분위기가 달랐다. 이와쿠니에는 왜 가느냐, 거기서 집회나 시위를 할 것이냐는 등 구체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그러더니, 11년 전 한국에서 있었던 나의 집시법 위반 내역을 읊어대더니, 입국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06년 12월 초, 노무현 정부 당시 국회에서 비정규직악법 통과시도에 맞서 민주노총이 투쟁을 전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체포, 구속되었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난 6월 나와 함께 일본으로 향하던 회원이 국내에서 구속된 전력이 있어 강제 추방된 적이 있었는데 일본정부는 강제추방의 빌미를 샅샅이 뒤져온 것이다.

그는 일본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제5조 1항 4호에 규정된 “일본국 또는 일본 이외의 나라법에 위반하여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 상륙을 거부할 수 있다” 조항을 근거로 입국을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같은 조항에 있는 “정치범죄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고지해 주지 않았다.

이후 대응방법은 2가지였다. 하나는 즉각 강제퇴거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불복해 법무성에 이의신청을 하는 길이다. 나는 즉각 이의신청을 했다.

“...2008년 이전에도 수차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0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11년 전 한국에서 있던 노동자투쟁으로 금고형을 받은 것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서 책임을 진 것이고 국내 정치문제였다. 그 문제로 이제까지 일본을 오가는 데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국제관계는 상호 호혜적이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지만 한국의 출입국관리소에서 일본인의 자국에서의 전력을 문제 삼아 입국을 막지는 않는다.... 그 동안 일본입국 시 조사받을 때마다 법 준수를 요구했고 그대로 따랐다. 따라서 이번 입국불허조치는 매우 부당하기에 이의를 신청한다.”

- 난민 대기실에 강제 억류당하다

이의신청서를 내고나니, 출입국관리 직원이 나를 세관으로 보냈다. 서너 명의 세관직원이 조그만 사무실로 데려가더니, 강압적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일본어나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고는 마약이나 총기를 소지하고 있느냐고 다그쳤다.

손으로 온 전신을 더듬어댔다. 가방 하나밖에 없었는데, 속옷 등 물건을 다 끄집어내어 들춰보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날 것이고, 어디에서 숙박할 것이냐는 반복적으로 물었다. 세관의 범위를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난민 대기실로 이동했다. 공항에 내린 시각이 오후 4시쯤이었는데, 이 곳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됐다. 다행히 나 혼자 있게 됐다. 조그만 사무실 같은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간이침대 2개가 놓여 있었다. 입구에는 출입국 직원이 지키고 있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하기야 여권을 빼앗긴 상태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항공사 직원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해서도시락 2개와 생수 2병을 주문했다.

밥은 괜찮았지만 ,소시지나 고기튀김 같은 느끼한 반찬이 담긴 전형적인 일본 ‘밴또’였다. 단무지가 들어있기는 한 데 정말 몇 조작에 불과했다. 마침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받은 고추장을 주머니에 넣어 온 탓에 밥에다 발라 먹을 수 있었다.

전화 통화는 안 됐지만,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는 있었다. 공항 바깥에서 기다리던 AWC 일본 동지는 다음 날 이와쿠니 행사준비로 떠난다는 연락이 왔다. 조사받은 내용, 임국거부, 이의신청, 난민대기실 이동 등에 대해 한국과 일본 AWC에 그 내용을 송고했다.

오사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 외교부가 후쿠시마 원전 30km이내나 다중이 모이는 테러가능성이 있는 곳은 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항 바깥에도 못 나갔는데 무슨.

나의 강제억류 소식을 들은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가 외교부에 전화를 걸어, 오사카 영사관을 통해 석방조치 등을 요청했다고 전해 왔다. 그러나 영사관 직원은 연락조차 없었다. 마침 가져간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 책을 읽으며, 자정을 넘겨 잠이 들었다.

전 날 사다 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다. 오전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점심 역시 항공사 직원에게 부탁해 간단히 해결했다. 물론 돈은 본인 부담이었다.

- 강제 출국당하다

오후 2시, 출입국관리 직원이 찾아왔다. 이의신청이 기각됐다고 통보해 주었다. 서류에 확인 서명을 한 뒤 항공사 직원과 함께 출국장으로 향했다. 물론 여권은 건네주지 않았다. 귀국할 비행기에 탑승할 게이트 앞에서 기다렸다. 비행기는 40분 연착됐다. 탑승이 시작됐지만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모든 승객의 탑승이 완료된 후 나는 항공사 직원의 안내로 좌석표만 받아 탑승할 수 있었다.

비행기 맨 끝자리였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오사카 공항과 오사카 도심의 불빛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1시간 40분 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역시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기내 승무원이 내 여권 봉투(IMPORTANT)를 공항 직원에게 건네준다. 그 직원을 따라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조사를 받는다.

출입국 직원 : “왜 입국이 거절됐나요?”

나 : “반전평화운동 하러 왔다고 하니 아베 정부가 거절하더군요, 전쟁하러 왔다고 했으면 들여보내 줬을지 모르겠네요.”

조사가 끝나고서야 여권을 돌려받았다. 여권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한국에서의 출‧입국 스템프가 찍히지 않은 것은 제도가 바뀐 탓이지만, 여권에 일본 입국이나 출국도장은 찍히지 않은 것은 1박 2일 동안 공항 내에만 머물렀을 뿐, 일본에 입국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사카공항에 억류된 난민이었던 셈이다.

- 입국 거부한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하다

내가 강제 출국 당하던 날인 11월 25일 AWC 일본연락회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AWC한국위원회 대표인 허영구 씨의 입국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강제 송환했다. 아시아공동행동일본연락회의는 이번 입국 거부와 반전 반기지 운동에 대한 방해를 단호히 규탄한다....이와쿠니행동 2017를 성공시키고, 이와쿠니를 한반도에 대한 출격 기지로 하지 말도록 투쟁한다. 우리는 다시한번 이번 입국 거부 강제송환을 규탄한다....”

11월 28일 평등노동자회와 AWC한국위원회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반전평화활동가 입국 거부 일본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경자 노동당 부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매년 일본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온 반전평화활동가의 일본 입국이 느닷없이 거부되었다. 일본당국이 제시한 이유도 너무나 황당하다. 2006년 집시법 위반 전력을 들이 댄 것이다. 어떻게든 입국거부 사유를 찾고 싶은 마음이 무려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모양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인권 탄압이다....우리는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 더불어 한국 국민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 일본정부의 방해가 계속되더라도 전쟁반대와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일본 민중들의 연대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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