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지부장의 직권조인은, 업무방해행위다”, 500만원 벌금 판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가 16일 오전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기 위해, 노조지부장이 직권조인한 것에 대해 ‘단체협약,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에 관한 업무 방해행위’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밝혔다.

서울동부지방법원(판사 양철한)는, 지난 11월 26일 보훈병원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부장이 조합원 몰래 ‘성과연봉제 확대 노사합의서’를 체결한 직권조인에 대해, “위계로써 보훈병원지부의 단체협약,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에 관한 업무를 방해했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노조는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조합원의 의사에 반하여, 직권조인·밀실합의한 당사자에게 형사 처벌한 최초의 사례로서, 비민주적 직권조인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소중한 판결이며, 노동조합 내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의미있는 판결”이라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 판결은, 직권조인·밀실합의를 업무방해행위로 단죄하는 최초의 판결이다. 그간 법원은, 노조대표자가 직권조인한 경우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으로 판결을 해 기 조인한 것을 인정했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보건의료노조 뿐 아니라, 다른 노조들에게도 노조 대표자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사측과 불법부당한 직권조인 등의 행태를 벌이는 것이 더 이상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판결로, 노사 모두에게 중요한 판결로 남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권 시절이던 2016년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4급 직원들에게까지 확대하려는 보훈복지의료공단 측에 맞서 노조 측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하고, 2016년 11월 10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당시, 김 모 보건의료노조 보훈병원지부장은 11월 9일 밤샘교섭에서 성과연봉제확대도입안을 제외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발표하여 파업을 무산시킨 뒤, 11월 10일 오후 2시경 모 갈비집에서 사측과 비밀리에 만나, 성과연봉제 확대 노사합의서를 작성했고, 2017년 1월 3일까지 조합원들에게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김 모 보훈병원지부장은 성과연봉제 직권조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11월 30일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가결시켰고, 자신의 지부장 임기가 끝난 2016년 12월 31일까지 성과연봉제 직권조인 사실을 숨겨왔으나, 새로 선출된 신임 보훈병원지부장에 의해 2017년 1월 3일에서야 직권조인으로 성과연봉제 확대를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당시 단체교섭에서 중요한 쟁점이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노조원들이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피고인이 독단적으로 이에 대하여 동의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조합원들은 피고인의 월권행위로 인해, 자신들의 의사를 단체협약에 반영하고, 사용자 측과의 협의결과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노동자로서의 단체협약 및 쟁의행위에 관한 권리행사를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업무가 방해되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한 “노조 지부장으로서 단체교섭에서 노동자 측을 대표함에 있어 위임받은 것과 다른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조합원 등 근로자들의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와 관련된 업무를 방해하고, 노사관계에도 큰 혼란을 끼친 점 등에 비추어보면, 피고인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5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은 직권조인이 조합원들의 위임 범위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정당한 법적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명백한 업무방해행위임을 확인해 줬다”며, “조합원들의 동의없이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합의를 한 직권조인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밝혔다.

▲ 보건의료노조 전경

민사상 범죄행위 판결에 이어, 형사상 범죄행위임을 확인

이번 판결은, 지난 6월 1일 보훈병원 성과연봉제 밀실합의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재판부가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직권조인·밀실합의를 조합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며,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린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서울북부지방법원(판사 신성철)은, 2016년 보훈병원이 성과연봉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부장이 노동조합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밀실 합의한 행위에 대해, 조합원 60명이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노동조합 규약에서 정한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합의를 한 행위는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들에게 1인당 30만원씩 1,8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결국,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노조 지부장의 독단적인 직권조인·밀실합의는 노조활동에 관한 조합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로서, 민사상·형사상 처벌대상이라는 점이 명확히 확인된 것이다.